[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복지정책이 살펴야 할 개인의 삶

제가 아는 어떤 아이는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자, 할아버지·할머니의 주민등록에 이름을 올린 ‘조손가정’입니다. 시골에 사는 조부모는 팔리지도 않는 땅과 차량 등이 있기에, 아이는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이나 국가의 복지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합니다. 그나마 주변 친인척 등의 도움이 마지막 사회안전망입니다. 제 고향 시골에 사는 어떤 초등학생 아이는 술만 먹으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자랍니다. 엄마는 가출했고, 아들 삼형제는 학교에서 유명한 학교 폭력 아동입니다. 아버지가 있는 상태에서, 이 아이들을 보육원으로 보내는 문제도 쉽지 않습니다. 보육원이 과연 최선의 선택인지도 의문입니다. 저 또한 시골에서 도시로 처음 나와 홀로 가난과 외로움에 맞서 싸운 경험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제가 살던 자취방엔 소외 계층투성이였습니다. 세무대학에 가서 집안을 일으키겠다던 고학생, 밤마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가장이 있던 가족, 곤로에 밥을 해먹어가며 좁은 방에서 자취하던 여고생 둘…. 어느 날 밤, 제 자취방에 침입하려던 도둑이 문을 따려는 소리를 듣고 저와 제 친구는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날 이후 그 방에 들어가기 너무 무서웠지만, 제 주변엔 도와줄 어른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방법도 몰랐습니다. 일주일 남짓 친구의 하숙집 신세를 지다가 두려움에 떨면서 그 방에 다시 들어가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얼마 전,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살던 세 모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동반 자살한 사건 때문에 나라가 들썩들썩합니다. 과연 이들이 주민센터에 찾아갔더라도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복지부나 지자체는 ‘대책 마련’을 일회성으로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사회와 이상의 괴리감 저는 오늘도 흔들립니다

현대해상과 더나은미래,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가 함께하는 ‘청년, 세상을 만나다’ 프로젝트에 응모한 이들의 경쟁률이 9대1을 넘었습니다. 스펙으로 가득한 이력서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습니다. ‘더 이상 봉사활동도 차별화가 안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도대체 이 많은 스펙을 쌓기 위해 이들은 24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외계인도 아닐 텐데, 93년도에 대학을 다녔던 저는 ‘이게 과연 가능한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변변한 스펙이 없는 학생을 보면 ‘그동안 뭘 한 건가’ 싶었습니다. 면접관의 눈높이가 이미 상향평준화돼버린 탓이겠지요. 게다가 이력서 속에 담긴 비정규직의 아픔이 읽히자, 말문이 턱 막혔습니다. 특목고를 졸업하고 SKY 대학까지 졸업했으나, 한번 계약직에 몸을 담근 후 2년마다 계약직을 전전한 채 20대 후반이 된 학생들. 이들은 신입도 경력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가 돼버린 듯 보였습니다. ‘딸 둘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까지 생겨났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딸아이 주변에는 영어, 수학학원을 안 다니는 아이가 거의 없습니다. 어떤 반 친구는 벌써 학원 숙제 하느라 새벽 1시에 잔다고 하더군요.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제 딸은 세 자릿수 곱셈이 느려, 모둠활동에서 민폐를 많이 끼치는 존재입니다. 봄방학을 맞아 아이를 돌봐줄 곳이 마땅치 않아 시골 할머니 댁에 보냈는데, 아이는 “너무 재밌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아이도 어른과 비슷한 모양입니다. 여유 있게 하늘도 보고, 바람 맞으며 산책도 하고, 하릴없이 뒹구는 그 시간이 좋은 게 말입니다. ‘어차피'(피 터지게 공부하느라 고생해봤자 SKY 나와도 좋은 직장 구하기 힘든 세상인데)와 ‘그래도'(좋은 대학이라도 가지 않으면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비영리 시장, 탄탄한 길이 필요하다

설 명절 전후로 흉흉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한 비영리단체에서는 차기 회장 선임을 둘러싸고 이사장과 전임 회장을 따르던 이들이 갈등을 빚고, 이사장이 아예 일부 반대파 직원을 지방으로 발령 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단체에서는 후원액이 줄어들어 사업을 계속하기 어렵다며, 오래 몸담아온 직원을 구조 조정했다고 합니다. 반면 옥스팜 같은 해외의 유명 국제구호 NGO들은 한국을 두고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이라며 속속 국내 상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린피스는 거리 모금 활동가를 무려 10명씩 뽑기 위해 채용공고를 지난달 냈고 취업설명회까지 열 예정입니다. 펀드레이저(fundraiser·모금가)라는 직업군이 모여 설립한 ‘한국모금가협회’도 2월 말 창립 기념행사를 연다고 합니다. 올 한 해 비영리 시장이 얼마나 격동적으로 움직일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반이 튼튼한 비영리단체는 굳건하게 성장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자칫 사업을 접어야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때로 이렇게 불붙는 비영리 모금 시장이 약간 불안합니다. 개인과 기업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기부를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테크닉(기술)이 너무 앞서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영리단체를 위한 싱크탱크는커녕 제대로 된 통계자료조차 아직 구하기 어렵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선 정보를 공유하고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모금시장 격화로 일부에선 폐쇄적 태도를 보입니다. S단체, C단체 등 일부 큰 단체는 중소단체를 위해 노하우를 공유하거나 함께 연대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비영리 영역이 커지고 성장하려면, 가야 할 길이 첩첩산중입니다. 불투명한 비영리단체 한 곳의 비리 문제로 모금 시장 전체가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우선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작은 NGO에게도 단비가 내려야 할 때

‘더나은미래’는 지난 2011년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가 수여하는 ‘제5회 지속가능경영언론상’ 대상을 받았습니다. 언론사에 몸담고 있으면, 이처럼 외부로부터 상을 받거나 지원을 받는 기회가 있습니다. 삼성언론재단, LG상남언론재단, 한국언론진흥재단, 관훈클럽 등 많은 곳에서 기자들의 국내외 대학원 진학 지원, 해외연수 지원, 저술지원, 언론상 시상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숨 가쁜 일상에 지친 기자들에게 이런 외부지원은 역량 강화와 자기계발을 위해 ‘단비’ 같은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비영리단체·복지기관·사회적기업 등 공익분야 종사자들을 위한 외부지원은 많지 않았습니다. 복지기관 종사자 해외연수 프로그램이나 모금·홍보·국제개발협력 등에 관한 교육 등이 일부 있지만, 매우 부족해 보입니다. 지난해부터 저에겐 가끔 “내부 직원들에게 홍보와 글쓰기 전반에 대해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옵니다. 연초부터 몇몇 단체의 지인으로부터 “유능한 홍보담당자 좀 찾아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비영리단체 중간관리자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 괜찮은 것 없느냐”는 문의도 받았습니다. 비영리단체에서 이처럼 적극적으로 직원 역량강화에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경쟁이 그만큼 심해졌기 때문이지요. 이번호 ‘더나은미래’ 지면에서 보듯, 해외 유명 NGO들은 ‘노하우’와 ‘자금’을 갖춘 채 본격 모금활동을 벌일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수십만명의 개인후원자들을 보유한 대형 NGO들은 보다 세련된 후원자 관리 시스템과 홍보전략으로 ‘집토끼 잡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사회공헌을 통해 함께 사업을 해오던 기업은 점점 ‘전략적 사회공헌’을 강조하면서, 사회공헌팀이 직접 사업을 하거나 가시적인 임팩트(Impact)를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약 중소 NGO 대표라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외부의 충격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NGO들도 전문성 있고 역량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과분한 격려받은 지난 2년… 올해도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이른 새벽 반짝이는 이슬은 하늘을 향하여 불평했습니다. 하나님, 이 차가운 새벽 저를 이렇게 추위에 떨게 하십니까? 진정 저를 사랑하여 만드신 것입니까? 제게 따뜻한 햇볕을 내려 주십시오. 그 소원대로 따뜻한 햇살이 내리비쳤습니다. 그러자 이슬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산마루서신에서) ‘존재의 긴장이 사라지면 존재 자체도 사라진다’. 이른 새벽, 묵상을 위해 이 글을 읽고 여운이 오래 남았습니다. 지난 2년간 더나은미래 편집장 자리를 돌아봤습니다. 고민하고 분투했으며, 때로 안주하고 교만했습니다. 2013년 결산보고서를 쓰느라 한 해 더나은미래 발자취를 들여다보니, 걸어온 자리가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4월 창간 3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를 시작으로 6차례 콘퍼런스를 열었습니다. 공익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네트워킹의 장을 마련하려는 시도였는데, 분에 넘치는 격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굿네이버스·하트하트재단·코이카·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아름다운가게·초록우산어린이재단·한국사회투자 등 외부 파트너들과 공익캠페인을 벌였습니다. 특히 지난해 8월부터 아산나눔재단과 함께 ‘아산미래포럼’을 발족한 것은 매우 뜻깊었습니다. 탈북·장애·미혼모·비행·가정외보호 청소년의 자립과 성장을 위해 35인의 현장전문가들과 함께 25번의 좌담회를 갖고, 솔루션을 모색해 보았습니다. 청년 소셜벤처인 위즈돔과 함께 6월부터 7개월 동안 ‘청년, 기업 사회공헌을 만나다’ 행사를 통해, 13곳의 국내 대표 사회공헌 우수 기업을 초청했습니다. 2주에 한 번 지면을 메우기에도 헉헉대는데,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요. 삼성꿈장학재단 손병두 이사장 대담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소명의식’ 때문입니다. ‘더나은미래는 왜 존재하는가’, 누군가 물을 때, 그 답을 좀더 잘 하고 싶어서입니다. 중국 베이징으로 떠날 일정이 막혀 계속 더나은미래 편집장을 하게 된 것도 ‘보이지 않는 손’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4년에도 더나은미래팀은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모두

[기고] 우리의 나눔이 방글라데시의 삶을 바꾸고 있다

황현이 아름다운가게 나눔사업팀장 차와 릭샤로 가득 찬 도로, 양 손 가득 선물을 들고 있는 사람들. 지금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는 국가적인 축제 인 ‘이드’를 앞두고 들썩이는 분위기다. 불과 6개월 전인 지난 4월 24일, 이곳에서는 8층 높이 건물이 무너져 내리면서 공식적으로만 ‘1127명 사망, 2300여 명 부상, 300명 실종’이라는 피해가 발생했다. 건물 잔해에 깔리거나 튀어나온 철근 등에 찔린 피해자는 대부분 의류공장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오전 8시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고 40달러 남짓한 월급을 받았다. 아름다운가게는 사고 직후 피해자 100가구에 긴급의료비와 생계비를 지원했다. 이후 심리치료와 자립을 위한 기술훈련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피해자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위해 다시 이곳을 찾았다. 로지나 악터(25세)는 척추가 부러지고 신장이 파열되고 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고통과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이제 부축을 받아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했다. 특히 심리치료 프로그램에서 다른 피해자들을 만나는 것이 그에게 큰 위로가 됐다. 사고의 충격으로 입을 닫고 지냈던 리나(18세)는 재봉기술 교육을 받고 있다. 그는 사고 후유증으로 심각한 단기 기억상실증을 겪고 있다. 교육 담당자가 “엊그제 옷 본뜨는 거 연습했잖아. 기억 안 나?”라고 묻자, 한참을 망설이다 “그랬던 것 같다”고 답했다. 그래도 리나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 빨리 일을 시작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 교육 과정을 마치면 공장에 돌아가지 않고 양장점에 취업할 수 있을 것이다. 화려한 보상계획을 발표했던 방글라데시 의류제조·수출협회는 “어떠한

[기고] 장애인 스포츠는 ‘박지성’ 같은 스타를 기다립니다

‘운동’이란 사전에 ‘장애’란 단어는 없어 ‘패럴림픽’ 참가 선수 열정적 경기모습에 관중도 열렬히 응원 국민적 관심으로 장애인 스타 키워야 공식 사진가 자격으로 참여한 지난 런던 패럴림픽을 비롯해 3번 패럴림픽에 참여하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세계 최고 선수들의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낸 것뿐 아니라, 그의 가족과 경기 심판, IPC(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 운영진, 자원봉사자들을 직접 만나서 장애인 스포츠에 대해 공감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시민사회와 언론, 정부 등의 열렬한 응원과 후원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경기장에서 느끼는 장애 선수들에 대한 환호의 순간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나도 선수가 되어 트랙과 레인을 마구 달리고 싶을 정도다. 운동에 장애라는 단어는 애초에 없다. 오직 자부심과 자신의 한계에 대한 도전과 극복만이 있을 뿐이다. 사이클 경기처럼 기구를 이용한 비장애인 경기가 있듯이, 휠체어를 탈 줄 알아야만 할 수 있는 장애인 경기도 있다. 휠체어 럭비나 휠체어 농구는 정말 재미있어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 한시도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시민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장애인 스포츠 재미에 푹 빠져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구경하러 왔지, 격려하러 오는 자리가 아니었다. 당연히 모든 경기장의 입장권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신기하게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고 구분되는 단어의 차이를 경기장에서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열렬한 응원 속 화려한 게임을 펼치는 선수들의 휠체어나 의족 등은 이 사진가의 눈에는 더 이상 장애의 상징이 아니었다. 오히려 멋진 패션으로만 보였다. 장애를 극복하며 건강한 삶을 사는 방법은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한국 사회 멍들게 하는 3가지 ‘구멍’

더나은미래와 아산나눔재단이 함께 연 공동 기획 포럼 ‘아산미래포럼’의 분과별 회의에 참석해보니 놀라울 정도로 문제의 현상과 본질이 비슷했습니다. 각 분과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이라서 겪는 어려움 외에도 장애, 탈북, 미혼모, 비행, 가정 외 보호 등 또 다른 장벽을 하나씩 지니고 있는 이들의 문제를 다룹니다. 분과별 문제의 공통점을 세 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제도나 정책 자체만을 보면 사각지대가 없을 정도로 ‘해외의 좋은 사례’를 잘 벤치마킹해놓았습니다. 마치 정책 쇼핑이라도 한 듯 말입니다. 하지만 그 모델만 베꼈을 뿐 이를 국내에 적용시키는 전달 체계에 대한 사후 모니터링은 부족합니다.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교육부, 법무부, 통일부 등 부처별로 각각 좋은 모델을 들여온 후 각 부처 산하에 ‘○○센터’나 ‘○○재단’을 두고 사업이나 지원을 쪼개주는 형태가 많습니다. 좋은 제도라도 결국 이를 적용할 곳은 지역사회(Community)이지만 개별 부처별로 쪼개지는 톱 투 다운(Top to Down) 방식의 정책으로 인해 재원이 많이 낭비되는 건 아닐까 우려스러웠습니다. 복지 서비스든 정책 시행이든 이를 뒷받침할 지역사회의 촘촘한 전달 체계에 대한 고민이 매우 시급합니다. 둘째, 학교의 문제입니다. 장애, 탈북, 미혼모, 비행, 가정 외 보호 청소년들은 결국 사회에서 함께 섞여 살 구성원입니다. 하지만 학교 안에서는 이들을 위한 통합이나 배려가 없습니다. 이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상처받고 대안학교를 택하거나 거리로 나옵니다. ‘학교’라는 마지막 소속 집단이 없어지고 나면 이들을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다시 진입시키는 데는 두세 배, 아니 몇십 배의 사회적 비용이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훌륭한 제도라도 ‘사람’이 빠지면 허점투성이

미국에서 둘째 딸을 출산하던 날, 그날은 공교롭게도 첫째 딸의 새 학기 첫 등교일이었습니다. 갑작스레 진통을 느껴 남편과 함께 허겁지겁 병원에 갔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한국인 이웃에게 “우리 딸아이 좀 유치원에서 데려와 달라”고 급히 부탁을 했습니다.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 하지만 그 이웃은 1시간 넘게 유치원에서 딸을 데리고 올 수 없었습니다. 딸의 등하교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등록된 부모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급한 사정을 아무리 설명해봐도 요지부동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부모인 우리가 그 유치원의 유일한 한국인 교사에게 전화로 사정을 설명하고, 그 한국인 교사가 안전에 대한 책임과 보증을 서는 조건으로, 딸아이는 무사히(?) 이웃에게 인계되었습니다. 우리 시각에서 보면 이렇게 불편하고 어이없는 제도가 없습니다. 원칙만 고집하는 불친절한 곳이라고 욕하고 홈페이지에 항의 글을 올리는 학부모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선 편리함이나 불가피한 상황 논리보다 ‘아이들의 안전’을 가장 중요시합니다. 이런 디테일을 볼 때마다, ‘선진국의 저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 적이 많았습니다. 토요일 오전, 신문을 읽다 펑펑 울었습니다. 사설 해병대캠프를 찾았다 사망한 공주사대부고 학생들 사연 때문입니다. ‘사람’을 최우선에 두는 사회. 선진국이 되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 변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해외 성공모델이나 제도를 벤치마킹해와도 소용없습니다. 스피릿(spirit·정신)이 없는 껍데기는 오히려 독이 됩니다. 얼마 전 만난 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님은 “지자체장들이 자신들의 치적 사업으로 몇 억원을 들여 사회복지관을 세워놓고, 그걸 운용할 사람과 프로그램에 쓸 돈이 없어 텅 빈 곳이 많다. 하드웨어만 생각하고, 소프트웨어는 뒷전이다”라고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왜’라는 질문이 필요한 이유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은 참 오래도록 가슴에 남은 책입니다. 2차대전 당시 강제수용소에 갇힌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 박사의 자전적 이야기입니다. 수면 부족, 배고픔, 구타, 언제 끌려갈지 모르는 극한적 공포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붙잡고 살아갈까요. 빅터 프랭클 박사는 “강제수용소에서도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시련과 죽음을 통해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만큼은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니체가 한 말을 인용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왜’라는 질문이 많은 사회는 건강한 사회입니다. 나는 왜 살아야 하고, 기업은 왜 존재해야 하고, 국가는 왜 존재해야 하는지 묻고 또 묻고 물어야 합니다. 이 질문을 열어놓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에만 집중하면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방향을 잃은 채 질주하게 됩니다. ‘더나은미래’와 한국기업공헌평가원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기업의 국가·사회공헌도를 분석한 이유는 바로 ‘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에서 보듯,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 구조는 전 세계적으로 시장과 기업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오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 민주화 관련 입법, 공정위·검찰·국세청 조사까지 이어지면서 ‘기업이 마치 준범죄집단 같다’는 기업인들의 자괴 섞인 목소리도 나옵니다. 기업은 왜 존재할까요.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 고(故)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처음 기업을 세운 취지는 바로 ‘사업보국(事業報國)’이었습니다. ‘데이터를 통해 기업이 국가와 사회에 얼마나 공헌하는지 말해보자’는 취지로, 우리는 매출액과

[기고] 모금회 사업 신청절차가 더 가벼워집니다

김석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외협력본부장 5월 28일자 ‘더나은미래’의 사회복지사 관련 특집은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 자살사건을 계기로 짚어본 적절한 기획이었다. 복지가 국가적 화두가 된 요즘에도 여전히 열악한 민간 사회복지사들의 근무 여건을 전했다. 개인적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복지의 일선 현장을 지키는 그들의 의욕이 꺾인다면 그 손실과 피해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몫이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들이 얘기한 애로점 가운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관련된 부분이 있어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공동모금회에 관한 지적은 한마디로 ‘사회복지기관·시설들이 공동모금회에 배분 신청을 하는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다’는 것으로, 그동안 현장에서 종종 제기돼온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동모금회는 이러한 현장의 불편을 덜기 위해 절차 간소화 작업에 들어가 있다. 신청 기관과 사업 내용에 대한 사전 심사, 그리고 사후 평가 과정에서 제출 서류 등을 줄여 행정적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대신 현장 실사와 다면평가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럼에도 일선 현장의 어느 정도 수고가 불가피하다는 점은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 국민의 소중한 성금이 투명·공정하게 배분되기 위해선 세밀한 검증 장치가 함께 가동되어야 한다. 허위 기재나 지원금 부당 사용 등 소수의 일탈 사례로 인해 선의의 많은 시설이 피해를 보아선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모금회에 지원 신청을 할 여력이 부족한 소규모 시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공동모금회는 이들의 취약한 행정 여력을 감안해 지난해 소규모 시설만을 대상으로 22억원을 별도 배정했고, 올해는 두 배로 늘려 45억원을 전국 16개 시·도 지회를 통해 배분한다. 많은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좋은 일’이 정말 좋은 일이 되려면

지난 17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나의 꿈, 사진(My Dream, photo) 개막식에서 조세현 사진작가를 만나 얘기를 나눴습니다. 조 작가는 지난 1년 동안 삼성의 후원을 받아 소외 계층 청소년을 위한 사진 교육 프로그램 ‘조세현의 그린프레임’을 통해 200명의 아이를 만났습니다. 조 작가는 개막식 인사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고 말했습니다. 내막을 들어봤습니다. 조세현 작가는 삼성의 지정기탁금으로 이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조세현 작가는 “아이들에게 사진을 교육시키려면 좋은 카메라도 사야 하고 찍은 사진을 맘껏 프린트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야 하는데, 모금회는 아직도 아이들 빵 사주고 학용품 사주는 것만 복지인 줄 알고 있어서 이런 부분을 일일이 설득하기가 힘들었다”며 “유명 사진작가인 내가 이 정도인데, 이름도 없는 복지기관은 오죽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생산자나 소비자보다는 이 둘을 이어주는 ‘유통’이 권력이 되고 있습니다. 콘텐츠 생산자인 종이신문은 갈수록 사정이 어려운데, 온라인 콘텐츠 유통망을 쥔 네이버는 승승장구하듯이 말입니다. 복지 분야로 눈을 돌려봐도 비슷합니다. 개인·기업의 기부금을 많이 거둬, 꼭 필요한 복지 현장에 이 기부금이 잘 쓰이도록 도와야 할 모금회는 어느새 복지 유통망의 ‘갑(甲)’이 돼버린 것 같습니다. ‘을(乙)’인 복지기관은 어떻게 하면 모금회 규정에 따라 사업을 잘 평가받아서 다음 연도 사업이 잘리지 않게 눈치 보느라 ‘할 말’을 못합니다. 자체 모금액이 수백억이 넘는 대형 NGO에선 “모금회 사업하려면 너무 피곤해서 아예 제안서를 내지 않는다”며 배짱을 부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풀뿌리 소규모 NGO는 ‘울며 겨자 먹기’로 비현실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