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둘째 딸을 출산하던 날, 그날은 공교롭게도 첫째 딸의 새 학기 첫 등교일이었습니다. 갑작스레 진통을 느껴 남편과 함께 허겁지겁 병원에 갔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한국인 이웃에게 “우리 딸아이 좀 유치원에서 데려와 달라”고 급히 부탁을 했습니다.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 하지만 그 이웃은 1시간 넘게 유치원에서 딸을 데리고 올 수 없었습니다. 딸의 등하교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등록된 부모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급한 사정을 아무리 설명해봐도 요지부동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부모인 우리가 그 유치원의 유일한 한국인 교사에게 전화로 사정을 설명하고, 그 한국인 교사가 안전에 대한 책임과 보증을 서는 조건으로, 딸아이는 무사히(?) 이웃에게 인계되었습니다. 우리 시각에서 보면 이렇게 불편하고 어이없는 제도가 없습니다. 원칙만 고집하는 불친절한 곳이라고 욕하고 홈페이지에 항의 글을 올리는 학부모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선 편리함이나 불가피한 상황 논리보다 ‘아이들의 안전’을 가장 중요시합니다. 이런 디테일을 볼 때마다, ‘선진국의 저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 적이 많았습니다. 토요일 오전, 신문을 읽다 펑펑 울었습니다. 사설 해병대캠프를 찾았다 사망한 공주사대부고 학생들 사연 때문입니다. ‘사람’을 최우선에 두는 사회. 선진국이 되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 변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해외 성공모델이나 제도를 벤치마킹해와도 소용없습니다. 스피릿(spirit·정신)이 없는 껍데기는 오히려 독이 됩니다. 얼마 전 만난 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님은 “지자체장들이 자신들의 치적 사업으로 몇 억원을 들여 사회복지관을 세워놓고, 그걸 운용할 사람과 프로그램에 쓸 돈이 없어 텅 빈 곳이 많다. 하드웨어만 생각하고, 소프트웨어는 뒷전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