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패션’은 내게 무척이나 험난한 영역이었다. 편하게 입는 것만 추구하던 내게 ‘전체적인 색상 톤은 통일하고 신발 같은 아이템으로 포인트를 줘야 한다’ ‘질 좋은 소재의 운동복으로 캐주얼하면서도 럭셔리한 느낌을 연출하라’ 등의 조언은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옷장을 갈아엎으며 진지하게 패션의 변화를 시도할 만큼 요즘 세상에서 ‘패션’이 갖는 위상은 전과 비교할 수 없다. 시장에 쏟아져나오는 신상품과 새로운 브랜드들, 그리고 그걸 선도적으로 골라내 멋진 스타일로 보여주는 SNS의 인플루언서들, 그들과 긴밀하게 협업하는 패션 커머스들은 ‘모두가 패션 리더’가 되는 유례없는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트렌드를 일 단위로 읽어내 생산-유통-판매에 반영하는 유니클로, 자라, H&M 등의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의 폭발적인 성장과, 항상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고 수집욕을 자극하는 샤넬이나 LVMH 같은 기존 패션 왕국들의 끊임없는 변화는 ‘자산에 대한 투자’보다 ‘본인을 위한 소비’를 선호하는 밀레니얼과 Z 제너레이션의 성향과 맞물려 2019년 전 세계 총 규모 6723억달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시장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뱀이 독성이 강한 것처럼, 우리 모두를 아름답고 멋지게 만들어주는 패션 산업은 인류와 지구에 강력한 독성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패션 산업은 인류 탄소 배출량의 10%를 차지하며, 매년 930억 큐빅미터라는 어마어마한 담수 자원을 소모한다. UN인권위에서 최소한의 인권을 위해 인당 연간 20큐빅미터 정도 물이 필요하다고 했던 걸 생각해보면, 우리는 패션업의 수자원 소모만 조금 줄여도 만성적인 물 부족에 시달리는 11억명을 단숨에 구할 수 있는 셈이다. 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