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모니터링으로 위기 예방… 문제 생기면 정확한 정보부터 공개하라”

비영리단체 위기관리 5대 전략

① 소통 창구의 단일화
② 사건 직후 2시간 내 즉시 대응
③ 철저한 사실관계 확인
④ 사후 경과를 투명하게 공개
⑤ 위기 가상체험으로 대응력 높여야

기부금을 불법으로 모금했다며 고발당한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가 4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지난 13일 서울중앙지검은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이하 기부금품법)을 위반했다며 한 보수 단체가 고발한 사건에 대해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에서 일했던 박원순 시장 등 62명 전원을 불기소 처분했다. 사전에 등록하지 않고 모금을 했지만 등록 대상을 오인하는 바람에 절차를 어긴 측면이 있고, 모금의 목적이 공익적이고 기부금 전액을 당초 목적대로 사용한 점을 근거로 삼은 것이다. 이 과정을 지켜본 비영리단체들은 “상처뿐인 승리”라고 입을 모은다. 신뢰를 잃은 기부자들이 다시 돌아오기엔 4년이란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 영리기업보다 가혹한 잣대로 투명성을 평가받는 비영리단체야말로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더나은미래’는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박일준 KCMG 한국갈등관리본부 대표, 이영훈 KPR 상무 등 위기관리 전문가 3인에게 ‘비영리 위기관리 전략’을 들었다.

◇채널 단일화로 정확한 정보 전달, 소통 창구 만들어 신뢰 높여라

전문가들은 ▲채널 단일화 및 소통 창구 마련 ▲사건이 터진 후 2~3시간 내 즉각 대응 ▲철저한 ‘팩트 파인딩(Fact finding·사실관계 확인)’ 등을 3요소로 꼽았다. 이영훈 KPR 상무는 “대다수 국제 항공사가 비행기 사고가 나면 즉시 웹페이지를 따로 만들어 승객의 생사 여부, 사건 브리핑, 사과문을 지속적으로 게재하고 피드백을 듣는다”면서 “정보가 실시간 제공되면서 대중이 하소연·화풀이할 창구가 마련돼야 더 나쁜 이슈가 다른 곳으로 확대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또한 “보도 직후 기부자·대중·언론 등 대상별 전략과 창구를 따로 마련하지 말고, 모두 잠재적 기부자로서 동일하게 대응해야 신뢰를 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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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도 중요하다. 박일준 한국갈등관리본부 대표는 “단순히 물리적 피해 수치뿐만 아니라 대중의 정서적·심리적 분위기를 함께 파악하고, 사과문을 발표할 때도 객관적·정서적 피해에 대한 사과를 나눠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사건 직후 2시간 내에 첫 번째 대응을 해야 하는데, 비록 훌륭한 대책이 준비되지 않았더라도 부담을 갖지 말고 ‘진상 파악 중’이란 이야길 하라”고 조언했다.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보상’을 말하지 말고, 정확한 정보부터 구체적으로 전달해줘야 반감을 줄일 수 있다”는 당부도 전했다. 1980년대 해열제에서 독극물이 발견돼 7명이 연달아 사망했던 존슨앤드존슨은 사건 직후 유통 과정을 조사한 뒤 전국에 ‘타이레놀을 먹지 말라’는 언론 기자회견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존슨앤드존슨은 3년 만에 매출이 2배로 뛰어올랐고 이후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지 않았다.

◇선제적인 투명한 공개, 위기를 기회로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는 “비영리단체 내부에서 문제가 발견된 경우, 이를 먼저 공개하고 향후 피드백을 지속 보도하는 것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한 수”라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1980년대 미국 육사 교장은 훈련 과정에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자 즉시 워싱턴포스트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해당 사건에 대해 특종을 줄 테니 최대한 자세히 보도하되, 육사의 입장을 반영해달라’는 제안이었다. 관련 육사 생도들을 모두 징계하고, 향후 개선 방안을 적극 알리는 모습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기회로 작용했다.

사후 대응도 중요하다. 2006년 자살을 암시하는 아버지 전화를 받은 딸이 급히 소방본부에 휴대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가 ‘법규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당해 끝내 아버지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소방방재청이 죽인 것과 다름없단 여론이 퍼진 것. 박 대표는 “소방방재청은 즉시 관련 법 충돌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위치 추적으로 사람을 살린 사례를 후속 보도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상무는 “미국 최대 모금 기관인 유나이티드웨이가 1992년 회장의 횡령 사건으로 도마 위에 올랐을 때 임금 보상 체계, 모금 배분 과정과 결과, 사업 성과 등 모든 정보를 웹사이트에 투명하게 공개해 믿음을 준 바 있다”고 했다.

◇질문하는 조직엔 사고가 없다… 매뉴얼 대신 정기적인 ‘모니터링팀’ 가동하라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비영리단체의 위기관리는 전략보다는 태도가, 사후 대응보다는 예방이 중요하다”면서 큰 비용 없이도 바로 시도할 수 있는 위기관리 예방팁을 전했다. 박 대표는 “우리 조직에서 발생할 수 있는 100가지 이슈를 열거한 뒤, 그중 중요도를 판단해 상위 30개를 골라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고 체험해보라”면서 “대응 전략을 미리 꾸려두면 실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향후 30가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확률도 높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 역시 “다른 비영리단체에서 문제가 터질 경우 해당 이슈를 누가, 어떻게, 어떤 순서로 대응할지 토론해보는 것만으로도 위기를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CEO가 먼저 조직의 사건을 공론화해서 의견을 수렴하고, 과거의 문제를 되돌아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 상무는 “질문하는 조직은 사고가 없다(유문무환·有問無患)”면서 “단체 이사장이 주도해 적어도 1년에 한 번씩 조직 내부에서 위기관리 워크숍을 하고, 외부 전문가 등 제3자가 우리 단체의 문제를 조언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건강한 조직 관리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정유진 기자

권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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