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일(토)

받는 곳도 꺼리는 천덕꾸러기, 기부보험을 아십니까

기부보험 도입 10년의 공과
2001년 처음 도입된 보험금 기부하는 기부보험
2010년 가입 1만3041건… 현재는 가입자 거의 없어
보험사, 실익 적어 추천 않고 기부 받기까지 오래 걸려 비영리단체서도 홍보 안 해

미상_그래픽_기부_깨진돼지저금통_2014

지난 2011년 7월, 서울대 졸업생의 ‘통 큰’ 기부 소식이 화제가 됐다. 기부금은 무려 7억원. 주인공은 ‘공부의 신’으로 알려진 유명 인터넷 강사 배인호(31)씨다. 개인 기부자로는 최연소이자 최고액이었던 그는 어떻게 그렇게 큰 금액을 기부할 수 있었을까. 비결은 다름아닌 ‘기부보험’이었다. 월 110만원씩 20년간 보험료를 납입하기로 삼성생명과 약정하고, 이후 배씨의 사망보험금 7억원이 서울대 앞으로 기부되도록 지정한 것이다. 20년간 꼬박 납입하면 총 금액은 2억6400만원이지만, 3배 가까운 금액이 기부되는 방식이다.

기부보험은 보험 수익자를 가족이 아닌, 학교나 사회복지단체, 종교법인 등 비영리단체로 지정하는 보험이다. 종신보험을 통해 사망한 이후 보험금 전액을 기부할 수도 있고, 보험금의 일부만 기부할 수도 있다. 가령 삼성생명 통합유니버셜종신보험에 ‘기부형’으로 가입할 경우, 30세 남성이 매월 2만7400원씩 10년 동안 납부하면 1000만원의 사망보험금을 기부한다. 매월 같은 금액을 10년 동안 기부할 때, 총 기부금액은 약 328만원. 보험 성격상 똑같은 돈으로 3배에 달하는 금액을 기부하는 것이다.

◇기부보험 도입 13년… ‘천덕꾸러기’로 전락

2001년, ING생명의 ‘사랑의보험금’을 필두로 국내 보험사들에서 다양한 ‘기부보험’을 내놓은 지 13년째. 하지만 가입자 수는 점차 줄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9년 8296건이던 총 가입 건수는 2010년에는 1만3041건으로 증가했다가 2011년에는 5930건으로 전년 대비 50% 이상 줄었다. A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시작한 지 4년쯤 되었는데 가입 건수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다른 B 생명보험사 관계자 역시 “2000년대 중반 사회적인 이슈가 됐을 때 가입 건수와 비교하면 지금은 조용한 분위기”라며 “실적을 공개하기는 곤란하다”고 했다.

기부보험은 파는 보험사에서도, 받는 공익단체에서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생명보험지점 재무설계사는 “애초에 기부에 뜻이 없는 고객에게 보험을 권유할 때 기부하라고 추천할 수 있겠느냐”며 “기부보험은 어디까지나 기부에 대한 개인 인식에 달렸다”고 했다. 보험금 기부를 아예 모르거나, 알아도 이를 실행하는 성숙한 기부문화까지 이르기엔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보험회사와 보험 판매 담당자 간에 인센티브가 다른 것도 한계로 지적됐다. 오준석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기부보험’으로 적립된 연간 기부금 총액으로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지만, 실제 보험을 판매하고 관리하는 재무설계사나 펀드매니저 입장에서는 실익은 적고 관리 비용만 많이 든다”고 했다.

기부를 받는 비영리단체 입장에서도 ‘기부보험’은 받기도, 거절하기도 어정쩡한 존재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기부보험금 수령만을 기다리기엔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발전기금 담당자는 “2008년부터 기부보험을 통해 기부금을 조성해왔는데, 조성된 금액도 워낙 소액이었고 가입 후 2년 이내 해약률도 높은 편이어서 작년부터 신규는 받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대 발전기금조성 담당자는 “어떤 식으로든 기부가 활성화되는 것은 좋지만 ‘기부보험’ 자체를 일부러 홍보하거나 제안하지는 않는다”며 “보통 몇십년은 지나야 받을까 말까 하다 보니 장학이나 연구기금 등 목적사업으로 바로 받는 기부를 선호하게 된다”고 했다.

미상_그래픽_기부_기부보험상품종류_2014

◇기부보험 관련 법적, 제도적 정비 필요해

기부금 처리 과정의 제도적인 문제점도 있다. 전현경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실장은 “개인이 매월 기부보험에 납입하는 기부금에 대해 단체에서는 ‘기부금영수증’을 끊어주는데, 중간에 해약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들어온 적도 없는 돈에 대해 ‘허위 기부금영수증’을 발급한 것처럼 되고 내부 자산 회계에서는 손실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계획에 기반을 둔 나눔문화가 확산된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선 기부보험을 비롯하여 금융상품을 통한 기부가 1960~1970년대부터 보편화됐다. 개개인의 자산규모나 수입, 관심사 등을 고려해 어디에 얼마까지 기부할지를 계획한 뒤, 보험이나 신탁, 연금 등과 같은 다양한 금융상품을 통해 최저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 기부가 이뤄지는 것. 오준석 숙명여대 교수는 “계획기부를 활성화하고 기부 스펙트럼을 다양화하는 방안으로 ‘기부보험’과 같은 금융상품이 순기능을 하도록 제도적인 정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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