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1일(토)
시상식 없는 LG의인상… ‘숨은 영웅’ 169명 발굴했다

무료 진료, 빵 나눔, 전 재산 기부… “남 도울 때 가장 행복해요”

1967년 6월 1일. 경남 창원에서 가장 오래된 예식장인 ‘신신예식장’이 문을 열었다. 예식장 주인인 백낙삼(90)씨는 개업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형편이 어려운 부부들에게 무료로 결혼식을 올려주고 있다. 지난 54년간 이곳에서 1만4000쌍이 예식을 치렀다. 백씨는 이들을 위해 예식장 대관부터 신랑·신부 예복, 메이크업까지 기념사진 비용만 받고 지원해왔다. 직접 주례도 맡는다. 이 같은 사회봉사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9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고, 지난달 30일에는 LG복지재단이 선정하는 ‘LG의인상(義人賞)’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백씨는 지난 16일 더나은미래와 한 통화에서 “마산에서 길거리 사진사로 시작해서 돈을 제법 모으게 됐고, 2층 건물을 사들인 뒤 그곳에 사진관과 무료 예식장을 열었다”고 했다. 그는 “아내와 결혼할 때만 해도 돈이 없어서 예식도 못 올리고 고생 많이 했다”면서 “나처럼 돈이 없어 결혼식도 못 하고 애태우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 보람되고 기쁘다”고 했다. 백씨는 지난 2005년 대장암 진단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남을 돕는 일이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이고 그 덕에 나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100살까지는 무료 예식장을 운영해야죠.”

지난달 30일 LG의인상을 받은 백낙삼(왼쪽)씨는 지난 54년간 부부 1만4000쌍에게 무료 예식을 지원했다.
지난달 30일 LG의인상을 받은 백낙삼(왼쪽)씨는 지난 54년간 부부 1만4000쌍에게 무료 예식을 지원했다. /LG복지재단 제공

의인 169명 선정… 장기 봉사자 발굴 확대

조용히 선행을 베푸는 의인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있다. LG복지재단은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한다”는 고(故) 구본무 LG 회장의 뜻을 이어 2015년 LG의인상을 제정해 시상해왔다. 첫해 3명 시상을 시작으로 매년 30명가량 선정해 지금까지 의인 총 169명을 발굴했다.

LG의인상은 초기 인명 구조와 사고 방지 등의 활동을 한 시민을 주로 선정해왔다. 이 때문에 경찰관, 소방관, 군인 등 이른바 ‘제복 의인’이 많았다. 구광모 LG 회장 취임 이듬해인 2019년부터는 묵묵한 선행과 봉사로 본보기가 된 장기 선행이나 봉사자들로 수상 범위를 확대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민의 선한 영향력을 널리 확산하고 있다.

장기 선행 분야 수상자는 지금까지 19명이다. 2019년 이후 선정된 전체 수상자(79명)의 약 24% 수준이다. LG복지재단 관계자는 “재난 상황에서 인명을 구조한 의인들도 꾸준히 챙기는 동시에 우리 사회 이웃을 위해 긴 시간 선행을 베푸는 시민도 적극적으로 발굴해 그 비율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했다.

장기 선행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 평범한 소시민이다. 지난 10월 의인상을 받은 고(故) 이영곤 원장은 1996년부터 25년간 경남 진주 중앙시장 인근에서 ‘이영곤내과의원’을 운영하면서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에게는 치료비와 약값을 받지 않았다. 1998년부터는 매주 3회씩 점심때를 쪼개 교도소를 방문해 재소자를 진료했다.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 ‘진주시 슈바이처’로 불리기도 했다. 이 원장은 지난 9월 남해고속도로 진주 나들목(IC) 인근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사고 차량 운전자를 돕다가 빗길에 미끄러진 다른 차량에 치여 숨졌다. LG복지재단은 “지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평소에도 자신이 받은 만큼 사회에 도움을 주겠다는 일념이 강했다고 한다”며 “오로지 주변의 어려운 이웃과 환자의 안녕만을 위해 의술을 베풀었다는 점에서 의인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김밥 장사로 평생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한 박춘자씨.
김밥 장사로 평생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한 박춘자씨. /LG복지재단 제공

50여 년간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한 박춘자(92)씨는 지난 9월 의인상을 받았다. 박씨는 매일 남한산성 길목에서 등산객들에게 김밥을 팔아 모은 6억3000만원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꺼이 내놨고, 사망 후 남을 재산마저도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내용의 유언을 녹화 영상으로 남겼다. 또 40년간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 활동을 하고, 60대에 접어들어 김밥 장사를 그만둔 뒤에는 지적장애인 11명을 집으로 데려와 20년 넘게 돌봤다. 지난 5월에는 월세 보증금 일부인 2000만원마저 기부한 뒤 복지 시설로 거처를 옮겼다. 박씨는 “남을 도울 때 가장 즐겁고, 장애인들 도울 땐 있던 걱정도 싹 사라진다”고 했다.

경남 남해에서 매일 아침 등굣길 아이들에게 무료로 빵을 나눠줘 온 제빵사 김쌍식씨.
경남 남해에서 매일 아침 등굣길 아이들에게 무료로 빵을 나눠줘 온 제빵사 김쌍식씨. /LG복지재단 제공

경남 남해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김쌍식(47)씨는 ‘빵식이 아재’로 통한다. 김씨는 매일 아침 등굣길 아이들에게 무료로 빵과 요구르트를 나눠온 제빵사다. 지역사회 10여 장애인 복지 시설과 자활 센터에도 매주 빵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8월 의인상을 받은 김씨는 “어릴 때 힘들게 살아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이 나처럼 배고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빵 봉사를 시작했다”며 “혼자 살아 큰돈 들어가는 데도 없어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계속 빵을 나눠주고 싶다”고 말했다.

48년간 무료 진료 봉사의 길을 걸어온 고영초 건국대 교수.
48년간 무료 진료 봉사의 길을 걸어온 고영초 건국대 교수. /LG복지재단 제공

이 밖에 지난 5월 의인상을 받은 고영초(68) 건국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의대 본과 재학 중이던 1973년부터 지금까지 48년간 무료 진료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그는 뇌종양, 뇌하수체종양 진단·수술과 같이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이 치료받기 쉽지 않은 중증 질환을 치료하는 데 힘을 쓰고 있다. 그간 고 교수에게 무료 진료를 받은 환자는 1만5000명이 넘는다. 또 무료 반찬 나눔을 각각 36년, 24년을 해온 우영순(73)·이상기(60)씨, 55년간 무료 진료와 무료 급식 봉사를 펼친 박종수(80) 사랑의식당 대표이사, 17년간 한국 응급 의료 발전을 위해 헌신하다 순직한 고(故)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 등도 의인상에 이름을 올렸다.

의인 5명 중 1명, 받은 상금 다시 기부해

수상자의 나이를 살펴보면 10대부터 90대까지 전 연령대에 걸쳐 있다. 수상 당시 나이를 기준으로 30대가 45명으로 가장 많았고 40대(40명), 50대(31명), 20대(26명) 순이었다. 10대 의인은 7명이었다.

이들을 위한 시상식은 따로 없다. 재단 관계자가 직접 방문해 상장과 상금을 전달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초기 수상자들의 사진 자료도 많이 남아있지 않다. LG 관계자는 “별도의 행사를 진행하지 않기 때문에 초기 수상자들은 증명사진 정도만 보관돼 있다”면서 “최근에는 상을 전달하면서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고 했다.

사업 기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사례 발굴 때마다 심의위원회를 열어 포상 여부를 결정한다. 상금은 내부 지급 기준에 따라 수상자의 선행 내용과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정한다.

의인상 수상자 5명 중 1명은 상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상금을 기부한 재기부자는 LG복지재단이 확인한 사례만 34건(20.1%)이다. 해양경찰 업무를 수행하며 25년간 매달 헌혈해 받은 헌혈증을 백혈병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한 공로로 지난 10월 의인상을 받은 권재준(42) 중앙해양특수구조단 경위는 상금 전액을 기부했다. 상금은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광주지회에 일부 전달됐고, 소아암이나 혈액암을 앓는 해양경찰 동료의 자녀 치료를 위해 쓰였다.

지난 36년간 입양 예정 영유아 119명을 돌본 전옥례씨.
지난 36년간 입양 예정 영유아 119명을 돌본 전옥례씨. /LG복지재단 제공

지난해 12월 의인상을 받은 국내 최장기 위탁모 봉사자 전옥례(74)씨가 상금 일부를 38년간 인연을 맺어온 동방사회복지회에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전씨는 36년간 입양 예정인 영유아 119명을 양육한 국내 최장기·최고령 위탁모 봉사자다. 그는 “아이를 떠나 보낼 때마다 마음이 아파 울다 보니 이제는 평생 흘릴 눈물이 모두 말라버린 것 같다”며 “아이들이 좋은 가정으로 갈 수 있도록 데리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나의 몫이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전씨는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병과 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마다치 않고 자발적으로 맡아 양육해 왔다. 생후 1개월부터 두 돌이 넘을 때까지 오랜 기간 키웠던 아이가 발달 지연과 자폐로 결국 입양되지 못하고 보육 시설로 가게 되자, 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후원금을 보내기도 했다. 해외로 입양 간 아이들이 10대·20대로 성장해서 한국을 방문할 때 전씨를 친부모처럼 찾는 경우도 많았다. 전옥례씨는 “40년 가까이 위탁모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동방사회복지회의 도움이 컸다”며 “기부금이 입양아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진숙 동방사회복지회장은 “위탁 가정에서 30년 넘게 아이를 키우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며 “우리 기관에서 그동안 충분히 보상해 드리지 못한 것을 LG가 대신해주신 것 같아 감사하며, 기부금은 입양아들을 위해 뜻깊은 곳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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