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과목 개설하는 국내 대학들
기업 경영의 필수 가치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대학 교육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교, 스탠퍼드 대학교 등 해외 주요 대학들은 2010년대부터 MBA 과정에 ESG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하버드 최고의 ESG 수업으로 꼽히는 ‘자본주의 다시 상상하기’ 과목이 대표적이다. ESG 경영을 주제로 2012년 개설한 이 강의는 개설 당시 수강생이 28명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하버드 MBA 학생 절반이 듣는 필수 강의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대학들도 올해부터 ESG를 대학 커리큘럼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경영대학원 전공 수업에 ESG 과목을 신설해 ESG 인력을 양성하고, MBA 과정에 ESG 전문 트랙을 넣어 실무적인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학부 수업에 ESG 교과를 개설하는 대학들도 생겨나고 있다.
ESG가 기업 경영은 물론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는 만큼 학부생들도 ESG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대학의 ESG 과목 개설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자 긍정적인 신호”라면서도 “단순히 유행을 따라가는 식의 과목 개설은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ESG 교과 개설에 발걸음 뗀 국내 대학들
2018년 고등교육혁신원을 출범하고 사회혁신 인재를 길러온 연세대학교는 올해 1학기부터 대학원 교과 과정에 ESG 과목을 신설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법률대학원 법무학과에 ‘ESG와 메타버스의 법적 과제’ 과목을 신설했고, 미래캠퍼스 일반대학원 환경금융학과에 ‘ESG 통합지속가능 투자’ 과목을 개설했다. 수년전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지속가능 경영에 대한 교육을 진행해온 인하대학교는 지난해 11월 ‘녹색금융특성화대학원’을 신설해 ESG 전문 인력 양성에 힘쓰고 있다. 녹색금융특성화대학원은 ‘ESG 평가와 투자성과분석’ 등 7개의 ESG 및 기후금융 특화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홍익대학교도 경영대학원 퇴직연금및기금자산운용 전공에 ‘ESG 투자’ 과목을 신설해 올해 2학기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한양대는 경영전문대학원 MBA 과정에 국내 최초로 ESG 전문 트랙 ‘HUBS ESG’를 신설했다. ESG 관련 이론, 주요 정책 및 이슈, 실무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기업 현장의 ESG 문제를 학생들이 직접 해결해보는 과제를 수행하게 된다.
대학의 ESG 교육 움직임은 석·박사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학과 공공기관이 협력해 학부생들이 기업의 ESG 현장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게 하는 과목들이 생겨나고 있다.
동아대는 지난 5월 코레일유통 부산·경남본부와 업무협약을 맺고 ‘ESG 경영 실천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하나로 학생들이 ESG 경영의 실무를 경험해볼 수 있는 교양과목 ‘ESG 경영 실천을 위한 함께 해결하는 사회문제’를 개설했다. 이 과목을 통해 학생들은 푸드 유통과정 개선, 유휴공간 활용 등 사업 기획 및 ESG 경영 실천 전략을 직접 개발하는 과제를 수행한다.
한양대는 지난 2018년 신설한 ‘사회혁신융합전공’의 정규 교과목으로 올해 2학기부터 ‘ESG 컨설팅’을 개설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비랩코리아와 연계해 진행하는 교과목으로 중소 수출 기업의 ESG 관련 인증 과제를 학생들이 직접 수행하게 된다. 백정하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 소장은 “ESG 열풍이 불면서 대학들이 새롭게 관련 교과를 개설하거나 환경이나 사회문제를 다루던 기존 교과에 ESG를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내년에는 대학들의 ESG 교과가 개설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사하듯 ESG 과목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전문가들은 대학이 ESG에 주목하는 현상을 두고 ‘사회적 변화와 기업들의 요구에 대응하는 교육’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쫓아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ICT 신기술이 생겨나면 공과대학을 중심으로 관련 과목이 개설되듯이 ESG가 기업은 물론 사회의 핵심 화두로 떠오르면서 특히 경영대를 중심으로 ESG 관련 과목이 생겨나게 됐다는 설명이다.
ESG 전문 인력에 대한 기업의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LG전자는 2014년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 분야 인재를 육성하는 ‘ESG 대학생 아카데미’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환경, 사회, 지배구조 각 분야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며 직접 기획한 ESG 활동을 수행하고 이에 대한 성적에 따라 LG전자 신입 사원 채용 시 서류전형 가산점을 받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ESG 교과목이 학생들의 취업이나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MZ세대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관심도 대학의 ESG 교육 도입에 영향을 줬다. MZ세대는 ‘가치 소비’와 ‘미닝아웃(소비 행위를 통해 개인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표출하는 소비자 운동)’을 주도하는 세대로 기업의 ESG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다.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지난달 18일부터 25일까지 취업준비생 1188명을 대상으로 ‘ESG경영 기업 취업 선호도’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63.8%가 ‘ESG경영의 뜻과 의미를 알고 있다’고 답했다. ‘ESG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을 우선순위에 두고 입사 지원을 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3.9%였고, ‘이왕이면 ESG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에 입사하고 싶다’는 응답자는 67.8%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대학 내에 ESG 과목이 신설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과정”이라면서도 “ESG가 교과 과정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보다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현상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의 ESG 경영은 ‘어떻게 높은 ESG 등급을 받을 것인가’라는 기술적인 부분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면서 “학교에서는 기술적인 측면 보다는 ESG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용석 연세대학교 고등혁신교육원 원장은 “대학이 장사하듯 ESG 관련 과목을 만들어내는 폐해가 발생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면서 “ESG의 개념이 기업 투자를 위한 평가 지표를 넘어 지속가능성이나 사회적 가치와 같은 개념으로 확장하는 만큼 대학에서도 ESG의 근본적인 원리를 고민할 수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명윤 더나은미래 기자 my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