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의 블록체인 활용법
비영리 단체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방식의 자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최근 예술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NFT(대체 불가능 토큰·Non-Fungible Token)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로 소유권과 거래 이력 등 고윳값을 부여한 디지털 자산이다. 디지털 파일로 존재했던 그림이나 영상, 음악 등은 무한한 복제가 가능해 원본의 의미가 크지 않았지만, NFT를 적용하면 실물 자산처럼 ‘오리지널’ 특성이 부여된다. 보증서가 붙은 디지털 자산인 셈이다. 암호 화폐처럼 손쉽게 거래할 수 있고 재판매도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예술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다.
티앤씨재단은 지난달 8~19일 ‘NFT 아트’ 경매를 진행했다. 제주 포도뮤지엄과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동시에 진행 중인 전시 ‘너와 내가 만든 세상’에 나온 작품 13점을 NFT 아트로 제작해 경매에 부쳤다. NFT 거래소인 피처드바이바이낸스에서 열린 이번 경매의 총낙찰가는 4억7000만원에 달한다. 최고가로 낙찰된 김희영 티앤씨재단 대표의 작품 ‘소문의 벽(The Wall of Rumors)’은 170BNB에 낙찰됐다. BNB는 가상 화폐 바이낸스코인으로, 2일 기준 1BNB는 약 56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소문의 벽’은 낙찰 당시만 해도 약 8700만원의 가치였지만, 가상 화폐 시세가 오르면서 열흘 만에 9500만원을 웃돌게 됐다. 이 밖에 강애란 작가의 ‘숙고의 방(The Room of Reflection)’은 154BNB(약 7900만원), 이용백 작가의 ‘브로큰 미러(Broken Mirror)’는 126BNB(약 6500만원)에 팔렸다. 신은혜 티앤씨재단 홍보팀장은 “NFT 경매를 통한 재단 수익금은 굿네이버스에 전액 기부하기로 했다”면서 “다만 기부 방법과 시기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했다. 국내 비영리 업계에서 수억 원 규모로 진행된 NFT 자선 활동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외에서는 지난해부터 NFT를 활용한 모금이 시도되고 있다. 국제구호단체 세이브티그라이(Save Tigray)는 에티오피아 기근으로 고통을 겪는 티그라이 지역민을 지원하기 위한 NFT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역 여성들이 만든 공정무역 공예품을 NFT 아트로 만들고, 판매 수익을 구호기금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연방군과 지역 반군 간 무력 충돌로 내전이 발발하면서 해당 프로젝트는 무기한 연장됐다. 1일(현지 시각) 유엔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은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라이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진입로가 지난달 22일부터 막혀 식량·의약품·연료 등 구호 물품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세이브티그라이는 지역민들의 애환을 담은 사진을 NFT로 만들어 기금을 모으는 것으로 프로젝트를 전환한다고 밝혔다. 판매 수익은 긴급 구호 활동이 가능한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유니세프(UNICEF) 등에 기부하기로 했다.
NFT포굿(NFT4Good)은 지난 5월 1일 아시아계 혐오 반대 캠페인 ‘AAPI-88’을 진행했다. 이들은 기금 마련을 위해 아시아계 미국인 스포츠 스타와 인플루언서를 애니메이션으로 묘사한 이미지를 NFT로 만들어 판매했고, 캠페인 기간에 NFT 판매 수익을 포함해 총 8만달러 이상을 모금했다.
미국 소아암 자선단체 ‘앨릭스레모네이드스탠드재단(ALSF·Alex’s Lemonade Stand Foundation)’은 암과 투병 중인 환아들의 그림을 NFT 아트로 제작해 이달 중에 경매에 부칠 예정이다. 제이 스콧 ALSF 이사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모금 방식에 대해 거부감을 갖다 보면 어느 순간 뒤처질 수 있다”면서 “최근 몇 년간은 암호 화폐로도 기부를 받아왔는데 이미 10만달러 이상 모였다”고 말했다.
미국 비영리단체 누라헬스(Nura Health)도 5월 ‘수천 명의 생명을 구하세요(Save Thousands of Lives)’라는 슬로건을 담은 NFT 영상을 제작해 NFT 거래소 오픈시(OpenSea)를 통해 450만달러에 달하는 기금을 모았다. 기금은 인도와 남아시아 지역의 신생아 지원 사업에 쓰인다. 누라헬스는 남아시아 지역의 병원 165곳에서 의료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의 데이터에 따르면, 신생아 1명을 살리는 데 1235달러의 비용이 필요하다. 이디스 엘리엇 누라헬스 대표는 “비영리단체에서 만든 NFT를 구매하는 일은 기부금으로 생명을 구했다는 증거를 소유하는 것”이라며 “팬데믹 속에서도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잠재적인 자금을 모으는 혁신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