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봉래동 장인의 기술을 예비 창업가에게… 사람 키워 도시를 살린다

삼진어묵 ‘대통전수방 프로젝트’

부산 영도구 봉래시장에 있는 삼진어묵은 65년 전통을 가진 가게다. 일본에서 어묵 제조 기술을 배워온 창업주 고(故) 박재덕씨가 1953년 봉래시장에 ‘삼진식품’이라는 이름의 어묵공장을 설립한 것이 시작이었다. 어묵 제조 기술은 아들인 2대 사장 박종수씨를 거쳐 손자인 박용준씨에게 전수됐다. 2010년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던 박용준씨는 고향 부산으로 돌아와 가업을 물려받았다. 그로부터 4년 뒤 삼진어묵의 매출은 300억원대로 10배가량 뛰었다. 낡은 어묵 공장은 30대 청년 사장의 감각으로 어묵 베이커리로 변신했고, 어묵 역사관도 만들었다. 삼진어묵은 이제 서울에 있는 백화점, 최근에 오픈한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도 입점하며 어묵 브랜드의 최강자로 자리 잡고 있다.

‘대통전수방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교육생들은 이론과 실습 과정이 끝난 후 챌린저 프로그램(모의창업) 과정을 거친다. 1기 교육생들의 챌린저 프로그램 모습. ⓒ삼진이음
 

◇부산의 명물 삼진어묵, 도시 재생 나선 까닭은?

 

부산의 명물 삼진어묵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난 2016년부터 비영리 사단법인 삼진이음을 만들어 영도구 봉래동 지역에서 도시 재생 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봉래동 지역 장인들의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름하여 ‘대통전수방 프로젝트’. 국토교통부 도시 재생 사업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영도구 봉래 1동에 2020년까지 국비·시비 등 182억원을 투입해 진행한다. 행정과 예산은 영도구가, 프로그램 운영은 삼진어묵이 만든 비영리단체 삼진이음이 맡는다.

이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홍순연 삼진어묵 이사는 “봉래동 지역에는 삼진어묵뿐만 아니라 국숫집, 두부, 양복점 등 50년이 넘는 노포(老鋪)가 많다”면서 “영도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 장인들의 기술을 예비 창업자에게 전수하면서 지역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삼진어묵이 도시 재생 사업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삼진어묵 본점이 있는 부산 영도구는 ‘도심 소멸’ 위험이 큰 구(舊) 도심의 대표적인 지역이다. 2008년 영도구 15만2118명, 동구 10만2764명이던 인구는 작년 각각 12만3521명, 8만8868명으로 줄었다. 10년 만에 인구가 20% 넘게 감소한 것. 주거 지역엔 주인 없는 빈집도 많아,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다.

홍 이사는 “봉래동은 전통시장과 노후 주거지역, 1934년 이후에 만들어진 창고들이 밀집한 지역, 항만 시설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곳”이라며 “특히 부산대교에서 영도로 들어오는 관문에 있어 봉래동이 활성화되면 도시 재생 사업의 확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통전수방 프로젝트’ 1기 교육생들은 삼진어묵으로부터 핵심 어묵 제조 기술을 전수받았다. ⓒ삼진이음

봉래동 지역 장인들의 기술 전수 창업 프로젝트 시작

 

‘대통전수방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은 삼진어묵, 조내기고구마, 옛날국수, 영신칼스토리, 성실식품(두부), 명성양복점 등 영도구 일대 6개 지역 업체로, 지난해 삼진어묵이 가장 먼저 기술 전수를 시작했다. 1기 수료생 6명 중 한 명은 지난 12월 부산 사직동에 수제어묵베이커리 매장을 오픈했으며, 나머지 수료생들도 각자 차별화된 어묵 제품들을 포함한 어묵베이커리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3월부터 4개월간 삼진어묵의 기술을 전수하는 2기 프로그램도 시작된다.

프랜차이즈 창업 프로그램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모든 과정은 무료다. 삼진어묵의 핵심 기술과 어묵 관련 창업을 하면 재료도 직영 매장에 공급하는 것과 동일한 품질의 재료를 우선 공급해준다. 매장 디자인도 삼진어묵의 디자이너들이 도와준다. 다만, 교육생으로 선발되면 창업 자금으로 사용할 시드머니 70만원은 예치금 형태로 받는다.

선발 과정도 까다롭다. 사업 아이디어 제안서를 제출하고, 심층 면접도 거쳐야 한다. 지난 1기 교육생 모집 경쟁률도 4대1가량. 지난 8일 부산에서 열린 2기 프로그램 설명회에는 서울에서 3명이나 참석했다. 홍순연 이사는 “밤에 운영하는 직장인 프로그램을 요청하거나, 6개월 교육과정을 3개월씩 나눠서 운영할 생각은 없는지 등 참가자들의 문의가 많다”면서 “삼진어묵의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다보니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시 재생은 물론 어묵산업의 성장 꿈꿔

핵심 기술까지 창업자들에게 전수한다면 자칫 삼진어묵의 경쟁자를 양산해 비즈니스에 불이익을 받진 않을까. 홍 이사는 “2015년엔 삼진어묵 본점에 방문하는 사람이 연간 100만명 정도인데 지금은 80만명으로 줄었다”면서 “어묵시장이 작지는 않지만 하나의 산업으로 보기엔 여전히 미흡한 것이 많다”며 운을 뗐다. 삼진어묵의 도시 재생 프로그램으로 지역을 되살리는 것은 물론 어묵산업의 성장이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삼진어묵의 규모가 커지면서 시스템화된 부분이 있어요. 대기업에서 혁신적인 시도를 기대하기 쉽지 않듯 삼진어묵도 그런 한계가 있죠. 하지만 창업하는 분들은 다릅니다. 어묵을 베이스로 다양한 아이템을 개발할 수 있어요. 어묵 기술을 전수받아 창업하려는 파트너 분들과 함께 새로운 브랜딩을 실험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봉래동 지역 내에 어묵연구소를 만들 수도 있고요. 어묵 아이템을 가지고 해외에 나갈 수도 있죠. 가장 질 높은 제품과 좋은 기술을 가지고 어묵산업을 성장시킬 동반자가 되면 좋겠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고객도 많아지지 않을까요?”

올해 하반기에는 봉래동 ‘옛날국수’집의 기술 전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지금은 삼진이음의 직원들이 국숫집 장인에게서 기술을 직접 배우면서 창업 프로그램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는 중이다. 국수, 두부, 양복점 등 봉래동 장인들의 기술을 하나둘씩 전수할 때마다 지역 일대는 혁신적인 실험을 하는 창업가들이 하나둘 몰려들 것이다. 삼진어묵의 야심찬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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