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전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쳤던 전쟁 지휘관 조셉 코니가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섰다. 그가 이끄는 아프리카 우간다 반군 ‘신의 저항군(이하 LRA)’은 1986년부터 10만여명을 살육하고, 최소 6만명의 어린이를 납치해 소년병으로 내몰았다. 아프리카 중부 지역의 민간인을 성노예로 부리는 등 잔혹한 반인륜 행위로도 악명이 자자했다.
그런데 최근 조셉 코니의 처벌을 두고, 논쟁이 일고 있다. 이 악명 높은 반군 지도자인 조셉 코니 역시 어린 시절 반군에 납치돼 소년병으로 길러졌던 것.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그가 전쟁범죄의 가해자인지, 아니면 피해자인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간다 반군 총지휘관인 옹그웬 역시 9∼14살 무렵 학교 가는 길에 LRA에 납치돼 처음 손에 총을 들었다. RLA의 소년병으로 시작해 최고위 사령관 중 한 명으로 성장한 옹그웬은 난민 캠프에 머물던 민간인을 상대로 살인과 강간, 고문 등 70개의 전쟁 범죄와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따르면 지금도 13개 국가에 30만명의 소년병이 있으며, 이 중 연간 8000~1만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죄의식을 흐려 놓고 마약을 먹여 손에 총을 쥐여준다. 그리고 소년병들은 이웃 아저씨와 친구를 쏘고 또래 여자아이들을 강간한다.
소년병은 전쟁의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6일 개봉한 영화 ‘랜드오브마인’이 스크린 속에 담은 고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영국에서 넘어오는 연합군의 상륙을 막기 위해 일명 ‘대서양 방벽’을 구축했다. 유럽 대륙과 스칸디나비아 해안선을 방어하기 위함이었다. 이때 덴마크의 해안선을 따라 200만 개가 넘는 지뢰가 설치됐다. 전쟁이 끝나고, 이 지뢰를 해체하는데 투입된 것은 덴마크군이 포로로 잡은 13~19세 독일 소년병들이었다. 1945년 5월부터 5개월간 진행된 지뢰 해체작업에 동원된 소년병들은 대략 2600명. 그중 절반 이상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영화는 덴마크의 작은 반도 스켈링앤에서 독일 소년병들이 지뢰를 해체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들의 작업을 지휘하는 이는 칼 라스무센(롤랜드 몰러) 상사. 독일군에 대한 증오로 가득한 그는 소년들을 학대하고 감시한다. 자신의 애완견의 밥을 챙기면서도 소년들의 굶주림은 모른 척할 정도다. 전쟁이 남긴 상처는 인간의 양심을 과감히 삭제한다. 나이가 어리고 연약하다고 해도 전쟁터에서 적(敵)은 그저 처벌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영화는 라스무센 상사의 심경 변화에 따라 움직인다. ‘과연 이 아이들이 내가 그토록 증오하던 나치군인가’. 지뢰로 팔다리를 잃은 소년이 아기처럼 엄마를 찾으며 우는 모습, 너무나 배가 고픈 나머지 쥐똥을 주워먹는 모습, 집에 돌아가서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싶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에 그의 증오심은 천천히 흔들린다.
하지만 그의 동정심이 발휘될 때 영화는 다시 잔인해진다. 그가 군부대로 가 소년들을 먹일 음식들을 가져오자 한 덴마크 지휘관이 이를 제지하며 오히려 소년병들을 괴롭히는 것. 악랄한 괴롭힘이지만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는 소년들은 그저 ‘제발 그만둬달라’며 폭력 가해자에게 ‘부탁’을 한다.
랜드오브마인(Mine∙지뢰)의 이름처럼 영화의 하이라이트엔 항상 지뢰가 등장한다. 그리고 지뢰가 나타난 이후엔 죽음의 그림자도 따라온다. 소년병 아이들은 지뢰를 찾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때론 그 죽음이 자발적이기도 하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위해서다. ‘영화가 끝났을 땐 몇 명의 아이들이 살아남을까’. 영화는 마치 러시안 룰렛 게임처럼 쉽게 죽어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역설적으로 ‘생명 윤리’를 말한다.
전쟁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따로 있는 걸까. 영화에서 연합군 지휘관이 라스무센 상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쟁은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
4월 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0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