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일(토)

“죽은 마을에 숨 불어넣는 일지역 주민과 함께할 때 가능합니다” _ 오카베 도모히코 고토랩 대표

방치 되었던 마을 ‘고토부키초’
외지인 꺼리던 주민 설득하고 빈방 개조해 ‘호스텔 빌리지’로
입소문 타고 관광객 유입 아티스트가 찾는 예술도시로…

고대권기자_사진_마을꾸미기_오카베도모히코1_2011“도시는 생명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새로운 얘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늙어버린 도시에 새 생명이 부여되지 않고 방치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엔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오래되고 낡은 집들과 텅 빈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상가, 의욕 없이 늙어가는 지방 소도시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본 건축가 오카베 도모히코(岡部友彦·34) 고토랩 대표가 2004년 8월 요코하마에 도착했을 때 고토부키초도 그랬다고 한다.

고토부키초는 원래 요코하마 항만의 배후지역이었다. 2차 대전 후에 항만에서 부두 노동자로 종사하던 뜨내기 노동자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쪽방촌이 형성되었고, 6만㎡의 면적에 직업소개소만 120개가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마을이었다. 그러나 오카베씨가 고토부키에 왔을 때 6만㎡에 남은 것은 6500명의 인구뿐이었다. 이 중 50%가 고령자, 80%가 생활보호수급자였고, 95%가 독신 남성이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폐차 직전의 차들이 버려지는 마을이었고 경찰의 순찰조차 드물었다.

항만에서 일하던 노동자 중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일감을 찾아 떠나갔고, 고토부키초에 남은 사람들은 일할 능력이 사라질 때까지 익숙한 쪽방에 의지해 늙어간 이들이었다. 야쿠자였던 사람도, 노동자였던 사람도, 이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던 사람들도 모두 늙어버렸다. 2004년 인구 6500명의 고토부키초에는 8000개의 쪽방이 있었다. 1500개의 방이 뜨내기 손님조차 없이 비어 있었다. 생산성은 떨어지고 지역은 공동화되고 주민들은 고립되었다.

오카베씨는 요즘 일본 지진 후의 지역 재건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둘 것을 요청했다.
오카베씨는 요즘 일본 지진 후의 지역 재건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둘 것을 요청했다.

오카베씨는 이전부터 하고 싶었던 ‘마을 만들기’를 고토부키초에서 시도해보기로 결심했다. 오카베씨가 내놓은 아이디어는 “지역에 있는 빈방들을 이용해 고토부키초 전체를 호스텔 빌리지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도쿄와 요코하마 중심가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고토부키초의 장점을 부각시켜 값싼 숙소를 제공한다면 여행자들이 고토부키초를 찾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고토부키초 지역이 가진 본래의 속성이라 할 수 있는 ‘숙박의 기능’을 극대화해보자는 제안이 처음부터 지역 주민들에게 환영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쪽방이 곧 거주지인 지역 주민들은 삶의 공간이 외지인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꺼렸고 사람들이 고토부키초를 찾을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쪽방을 호스텔 방으로 개조하기 위해 드는 비용도 적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오카베씨는 끈질기게 설득했다.

“지역 주민들에게 비행기를 예로 들어서 설명했습니다. 비행기는 사람이 타든 안 타든 어차피 고정 비용을 들여가며 비행을 해야 합니다. 고토부키초의 방들도 사람이 살든 안 살든 고정 비용이 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삶의 공간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죠.”

취지에 공감한 건물주가 개조 비용을 부담한 호스텔의 숙박비는 싱글 1박에 3000엔 수준, 한국과 비교해도 비싸지 않다. 한국과 일본의 물가와 환율을 고려한다면 확실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셈이다. 그러면서도 건물의 1층과 3층은 기존의 고토부키초 주민의 거주 공간으로 한정하고 나머지 층들을 호스텔로 사용하도록 해 지역 주민들의 삶의 공간을 보장했다. 호스텔빌리지의 인포메이션 센터를 따로 둬서 여행객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은 지역 주민들의 불편도 최소화했다.

고대권기자_사진_마을꾸미기_오카베도모히코3_2011“중요한 것은 기존 주민들을 내쫓지 않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 지역 재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역 재개발을 ‘재건축’, ‘뉴타운’등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는 한국의 재개발 정책과는 접근법이 다르다. 오카베씨는 외지인들의 방문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지역 주민들을 호스텔빌리지 사업의 파트너로 삼았다. 지역 주민들에게 외지인의 방문은 ‘침범’이 아니라 ‘자극’이 되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마을 가꾸기를 시작했습니다. 벼룩시장은 방 속에 있는 주민들과 외지인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되었고, 마을 곳곳에 설치한 1평짜리 평상은 지역민들이 공동체 놀이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장기판 등의 놀이기구로 바뀔 수 있는 평상을 만들 때에는 마을의 주민들이 나와 작업을 거들었다. 마을 곳곳에 녹지를 만들고 도로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일’도 창출되었다.

“마을 가꾸기가 일 가꾸기로 바뀌었습니다. 자연스러운 참여를 통해 지역민들은 프로젝트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토부키초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관광객들이 더 많이 유입되었고 아티스트 등이 퍼포먼스를 위해 찾아오기도 했다. 호스텔 건물에선 지역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회화 수업, 아티스트들의 예술 수업이 주기적으로 진행된다. 2006년 3월 요코하마 시장선거 때에는 마을 전체에 투표소를 안내하는 포스터와 표지판을 붙여 주민들의 투표를 독려했다.

“고토부키초 지역 자체가 거주지가 불안정한 사람들의 마을이다 보니 투표안내용지도 잘 오지 않아요. 하지만 이들에게도 투표권이 있죠. 6500개의 표가 이 마을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정치인들이 찾아오고 이 마을의 변화에 대해 고민할 거라고 생각했어요.”실제로 다음 선거부터 정치인들이 고토부키초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오카베씨의 실험을 따라 마을 곳곳의 임시숙박소 건물이 호스텔로 바뀌고 있다. 마을에 사람들이 오가고 외지와 내부가 교류하는 흐름이 생기는 과정에서 늙어가던 마을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졌다.

오카베씨에게 마을과 지역의 재생을 위한 비결을 물었다. 그는 다시 당연한 이야기를 했다.

“거리에 사람들의 흐름이 생기고, 이 흐름이 소용돌이를 이루면 더 다양한 흐름이 더 크게 형성돼요. 그러면서 일도 생기고 생산활동도 생기죠.”

다시 한국의 재개발 정책을 떠올렸다. 원주민이 유랑하게 되고 공동체가 소멸되는 재개발 정책 속에서 도시가 생명체로서의 권리를 누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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