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의 마음에 이름으로 남아야 오래간다. 다시 찾고 이야기하며 자기 방식으로 참여하게 될 때, CSR은 기업의 브랜드 자산이 된다.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2000여 개의 자리가 열렸다. 그리고 1~2분이면 신청이 끝났다. 콘서트 예매 이야기가 아니다. 다회용 빨대와 텀블러를 더 자주 들고 다니자는 기업의 친환경 CSR 캠페인 이야기다.
1~2분이라는 숫자만 보면 인기 많은 물건을 나눠준 호객용 이벤트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물건을 받은 뒤 실제로 사용했고, 자신의 일상 속 장면을 인증사진으로 남겼다. 다음 해에도 다시 참여했고, 자신을 ‘지톡이’라 부르며 자신들만의 환경 자아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좋은 취지에는 쉽게 공감하지만, 조금만 번거로워도 행동을 미룬다. 그렇기에 실천을 권하기 전에 무엇이 불편한지부터 살펴야 한다. 지난 20년 가까이 CSR 현장에서 내가 늘 ‘참여자 친화형 캠페인’을 제안해 온 이유다.
GS칼텍스의 지구톡톡은 그 불편에서 시작했다. 2023년에는 다회용 빨대를 완전히 펼쳐 안쪽까지 씻을 수 있게 만들고, 가방에 걸 수 있는 키링형 케이스를 더했다. 이듬해에는 “큰 가방에 텀블러를 넣으면 샐까 걱정되고, 전용 가방을 따로 들기는 번거롭다”는 시민 의견을 반영했다. 그 결과 텀블러백과 장바구니를 합친 투인원 제품이 나왔다.
사람을 바꾸려 애쓰기 전에 행동하기 쉬운 환경을 먼저 만들었다.


행동 도구는 지구톡톡을 설명하는 물건이면서, 캠페인의 이름을 일상에서 떠올리게 하는 역할을 했다. 첫해 시민 1만 명에게 빨대가 전달됐고 인스타그램 행동 인증 3939건이 확인됐다. 다음 해에는 참여자가 2만 명으로 늘었고 인증은 8434건을 기록했다.
물론 무료 배포와 경품의 영향을 빼놓을 수는 없다. 선착순으로 제공되는 쓸 만한 제품이니 관심이 몰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도 생겼다. 캠페인이 끝난 뒤에도 관련 검색이 이어졌고, 참여자들은 지구톡톡 관련 콘텐츠를 자신의 계정에 올렸다. 단순히 물건을 받은 사람이라기보다 캠페인에 함께한 사람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사례에서 가장 주목한 성과는 숫자 밖에 있다. 참여자들이 자신을 ‘지톡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일이다. 이 이름은 기업이나 운영사가 정한 참여자 명칭이 아니었다.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기 시작한 호칭이었다.
기업이 캠페인의 이름을 짓는 일은 어렵지 않다. 로고를 만들고 슬로건을 붙이는 일도 예산과 시간이 있으면 할 수 있다. 더 어려운 것은 그 이름을 사람들이 자기 말로 사용하게 만드는 일이다. 지톡이라는 호칭에는 ‘나는 이 캠페인을 알고 있고, 직접 참여했으며, 앞으로도 이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브랜드는 기업이 만든 이름으로 출발하지만, 소비자의 언어에 들어갈 때 비로소 힘을 얻는다. ‘지톡이’라는 호칭은 지구톡톡이 기업의 사업명에서 참여자를 나타내는 이름으로 한 걸음 이동했다는 신호였다. 수많은 CSR 캠페인에서도 이런 변화는 흔하지 않다. 대부분의 참여자는 캠페인을 경험하고 떠나지만, 지톡이는 자신이 그 안에 속해 있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검색 데이터에도 이 변화가 남았다. 두 번째 해 네이버 브랜드 검색에서 ‘지톡이’는 ‘지구톡톡 텀블러백’, ‘지구톡톡’과 함께 검색량 상위 키워드에 올랐다. 공식 인스타그램은 환경 정보를 전달하는 게시판에 머물지 않았다. “지톡한 질문”, “조크든요”, “제철지구”처럼 지구톡톡만의 말투를 가진 콘텐츠를 이어갔다. 2025년 2월 말 기준 팔로워는 5,616명, 누적 노출은 약 140만 회였다.
기업이 붙인 이름을 사람들이 자기 말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CSR 캠페인을 바라보는 기준을 한 단계 넓혀야 할 때다. 캠페인의 성과를 확인할 때 우리는 참여자 수와 노출 수를 먼저 본다. 물론 중요한 숫자다. 다만 그 숫자만으로는 캠페인이 사람들의 마음에 얼마나 오래 남았는지 알기 어렵다.
한 번 참여한 사람이 다시 찾아왔는지, 캠페인 이름을 직접 검색했는지,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말로 소개했는지를 함께 볼 필요가 있다. 기업의 광고가 멈춘 뒤에도 이야기가 이어지는지 살펴보면 더 분명해진다. 어렵게 말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다시 찾고, 기꺼이 자기 이야기로 만들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톡이’의 등장은 꽤 큰 변화다. 캠페인의 이름이 기억됐다는 사실을 넘어, 참여자가 그 이름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기업이 계속 말을 거는 관계에서 사람들이 먼저 이름을 부르는 관계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CSR을 브랜드의 관점에서 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은 대개 한 해의 예산과 일정에 맞춰 움직인다. 사업이 끝나면 결과를 정리하고 다음 해에는 새로운 주제를 찾는다. 매번 새 이름을 만들고, 다시 사람을 모으고, 처음부터 캠페인을 설명한다. 잘 만든 이름과 경험이 쌓이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아쉽게도 지구톡톡 역시 지톡이 팬덤을 활용한 앱이나 행동 도구 시리즈로 확장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는 지구톡톡이 부족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브랜드로 성장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었기에 더 아쉬운 것이다.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고 자발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면, 그때부터는 사업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키우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CSR도 해마다 새로 시작하는 사업이 아니라 시간이 쌓이는 브랜드가 될 수 있다.
브랜드가 된 CSR 캠페인은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 이미 캠페인을 아는 사람이 생기고, 그들이 다음 참여자를 불러온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취지를 처음부터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기업이 이 활동을 계속해야 할 이유가 분명해진다. 사람들의 기대가 생기고, 그 기대는 기업의 약속이 된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일과 기업의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브랜드가 되어야 오래 지속할 수 있고, 오래 지속해야 사회문제에도 조금씩 변화가 쌓인다. 좋은 CSR 캠페인은 좋은 일을 한 번 크게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다음을 기다리게 만들고, 그 이름을 자신의 말로 부르게 한다.
지톡이가 생겼다는 것은 애칭 하나가 늘었다는 뜻이 아니다. 지구톡톡이 사람들의 생활과 언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 순간, 비로소 CSR 캠페인은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
노재권 코즈웍스 대표
필자 소개
사회공헌 전문기업 코즈웍스 대표입니다. 2007년 네이버 해피빈을 시작으로 다양한 사회공헌 플랫폼을 구축하고, 약 1000개의 기업 CSR 캠페인을 기획·제작해 왔습니다. 현재는 기업의 선한 의지를 고객이 공감하고 좋아하는 브랜드 가치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CSR을 기업의 철학과 정체성을 보여주고 고객의 신뢰를 쌓는 과정으로 바라보며, 사회적 가치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지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