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오토바이와 장애인 콜택시가 만났다… 외출하는 재미에 푹~ 빠진 베트남

한국장애인인권포럼 베트남 사업

 
오전 11시, ‘부릉’ 소리가 고요한 주택가를 깨웠다. 오토바이가 멈춰 선 곳은 후인 탄 타오(Huynh Thanh Thao·31·지체장애)씨의 집. “준비되셨어요?” 타오씨와 그녀의 휠체어까지 오토바이에 싣고 난 후 운전사는 다시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다. 100㎝가 채 되지 않는 작은 키에 짧은 팔과 다리. 선천적으로 뼈와 근육이 성장하지 못하고, 작은 마찰에도 쉽게 뼈가 부러지는 장애를 지닌 그녀에게 요즘 꿈같은 일이 생겼다. 외출하는 재미에 푹 빠진 것이다. 일주일에 세 번은 영어학원에 다니고, 주기적으로 마트와 병원을 방문한다. 창업을 위한 직업훈련도 중요한 일과가 됐다. 모두 오토바이 택시 덕분이다.

“이제야 비로소 제 인생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에요(웃음).”

타오씨는 개인 커피숍을 여는 꿈을 키우고 있다.

이용자가 오토바이 택시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습. 오토바이 택시에는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등받이와 팔걸이, 휠체어 걸이 등이 마련되어 있다. 타오씨는 “일반 택시를 이용하면 ‘내 친구’인 휠체어를 두고 갔어야 했는데 오토바이 택시를 이용할 때는 함께여서 좋다”며 웃었다. /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제공
이용자가 오토바이 택시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습. 오토바이 택시에는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등받이와 팔걸이, 휠체어 걸이 등이 마련되어 있다. 타오씨는 “일반 택시를 이용하면 ‘내 친구’인 휠체어를 두고 갔어야 했는데 오토바이 택시를 이용할 때는 함께여서 좋다”며 웃었다. /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제공

◇”장애인 이동권 증진 경험 공유하고파”

집 안에만 머무르던 타오씨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한국장애인인권포럼의 ODA 사업 덕분이다.

장애인 당사자 단체인 한국장애인인권포럼은 2011년 베트남 호찌민(Ho Chi Minh)의 장애인 단체인 DRD(Disabili ty Research & Capacity Develop ment)와 한-베 장애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장애인 이동권을 지금의 단계로 끌어올린 경험과 성과를 공유하자는 취지였다. 2012년에는 ‘장애인 이동지원센터’를 설립하고 2013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을 받으며 점차 오토바이 택시 사업의 윤곽을 잡기 시작했다.

박장우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차장은 “베트남 사람들의 주요 교통수단인 오토바이와 한국의 장애인 콜택시 모델을 결합했다”고 설명했다.

현지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호찌민 내 장애인은 100만명 내외로 추산된다. 호찌민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하지만 장애인 인식과 접근성 점수는 바닥이다. DRD가 호찌민 시내 식당, 공원, 공공기관 등을 전수조사한 결과 장애인 접근 편의 시설을 갖춘 곳은 1800개 중 85개로 4.7%에 그쳤다. 대중교통도 열악한 수준이다. 버스 노선이 다양하지 않고, 지하철도 2018년 이후에야 완공 예정이다.

DRD의 루 티 안 로완(Luu Thi Anh Loan) 대표는 “자립을 위해서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호찌민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며 “극히 제한적이었던 장애인의 이동권을 향상시키는 데 꼭 필요한 서비스”라고 했다.

◇이용자들마다 엄지 ‘척’, 그 비결은?

오토바이 택시 이용객은 하루 평균 25명에서 30명 사이. 연 이용객은 2013년 1972명에서 2014년 8912명, 지난해에는 1만명을 돌파하며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오토바이 택시 드라이버팀 리더이자 콜센터 업무를 맡고 있는 후인 티 투 냐(Huynh Thi Thu Nga·30)씨는 “한 달 평균 300건 이상의 문의 및 예약 전화가 온다”며 “이용자들의 장애 유형과 이용 목적도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꾸준히 이용자를 늘린 비결은 오전 6시부터 밤 9시까지 연중무휴로 값싸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예약제로 이루어지는 오토바이 택시 서비스는 최소 5일 전에 전화로 예약하면 오토바이 택시 운전사가 이용자의 집 앞에서부터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호찌민 1군 중심 반경 15㎞ 이내 지역 중심으로 운행). 금액은 1㎞에 2500동(한화 135원 정도)으로, 일반 택시 이용 요금(1㎞당 4500~6000동)보다 절반 이상 저렴하다. 게다가 대학생까지는 무료다.

직장인인 리 응옥 옌 니(Le Ngoc Yen Nhi·38·시각장애)씨는 “일반 오토바이 택시를 이용해 출퇴근할 때보다 부담이 훨씬 줄었다”며 “서비스가 꾸준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현재 고용된 운전사는 총 13명. 그 중 5명이 장애인이다. 문서 복사점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6월부터 합류한 헝(Hong·34)씨는 “장애인인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며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피로가 싹 가신다”고 했다.

◇증가하는 수요에 발맞춰 사업 확대 계획도

한국장애인인권포럼과 DRD는 3년 안에 오토바이 택시를 현재 13대에서 30대로 확대하고 사업 범위도 넓힐 계획이다. 로완 대표는 “호찌민 시 외에 다낭(Da Nang) 등 다른 지역에서도 서비스를 요청하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더 많은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계획 중”이라고 했다.

사업 확장과 더불어 베트남 정부에 정책 제안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한국장애인인권포럼과 DRD의 제안으로, 호찌민 내에선 저상버스가 총 4대 운행 중이다. 박장우 차장은 “장애인들이 지속적으로 밖으로 나와 생활하기 위해서는 결국 편의 시설이 갖춰져야 한다”며 “생활 환경 개선 및 전동 휠체어 보급 사업 등 장애인들과 사회의 다양한 연계 방안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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