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아랍의봄’ 민주 시위 참여
지명수배 피해 한국 찾은 이집트인
난민신청 10년째… 심사만 네 번째
난민제도 부당함 알리려 단식농성
지난 4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건물 앞, 2평(약 6.6 ㎡) 남짓한 임시 천막에 이집트인 샤메(50대·가명)씨가 누워있었다. 단식 11일 차. 바닥에는 2ℓ짜리 생수통과 작은 소금통이 놓여 있었다. 그의 신분은 ‘난민 신청자’다. 샤메씨는 지난달 24일, 난민제도의 부당함에 항의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단식 농성을 택했다. “10년을 버텼습니다. 여기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이집트로 돌아가면 나는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말 겁니다.”
샤메씨는 농성 천막을 방문한 이집트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따금 힘에 부친 듯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면서 최루탄 가스를 들이마신 탓에 아직도 가끔 폐에 통증이 느껴진다”고 했다.
샤메씨가 한국에 들어온 건 2014년이다. 이집트에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이유로 지명수배 명단에 오른 그는 그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시위에 참여했던 동료들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거나, 체포돼 소식을 알 수 없는 상태다.
‘취업 불가’ 도장 받은 날, 노숙이 시작됐다
샤메씨는 인쇄소에서 책을 찍어내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러다 2011년 자유정의당에 가입해 반정부 운동에 뛰어들었다. 2013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도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식량과 의료지원, 미디어 대응 업무를 맡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시위 과정에서 동료의 죽음을 여러 번 목격했다. 친구의 딸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함께 농성에 참여하던 친구도 샤메씨가 잠시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총탄을 피해지 못해 세상을 떠났다. 샤메씨는 종종 휴대전화에 저장된 친구 사진을 꺼내본다. 건강했을 때부터 길에서 피를 흘리던 마지막 순간 모습까지 모두 간직하고 있다. “항상 같이 먹고, 같이 잤던 친구입니다. 친구가 죽었을 때, 나도 같이 죽었습니다.”
2013년 8월 14일, 라브아 알 아다위야 광장에서 샤메씨는 체포됐다. 날이 밝기도 전 새벽 기도를 올리고 있을 때, 군인들이 전기를 끊고 최루탄을 터뜨렸다. 총까지 쏘기 시작했다. 샤메씨는 나무 뒤에 몸을 바짝 숨겨 목숨을 보전했다. 6개월간 구금됐던 샤메씨는 법률가 인맥을 동원해 겨우 풀려났다. 2014년 수배 중인 상태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도망쳤다. 한국에 입국해 바로 난민 신청을 했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은 지난하다. 난민 신청 후 6개월 동안은 취업허가를 받지 못해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 샤메씨는 이집트에서 챙겨온 돈으로 얼마간 버텼다. 6개월 후 외국인등록증이 나왔다. 실리콘 공장 등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었다. 월수입은 130만~150만원. 이 중 일부는 이집트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하고 남은 돈으로 생계를 꾸렸다. 그렇게 3년 반을 일했다.
2016년 첫 번째 심사에서 ‘불인정’ 결정이 나왔다.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이듬해 이의신청을 했다. 다시 심사가 진행됐지만, 법무부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그해 5월, 법무부는 샤메씨에게 출국명령서를 발급했다. 출국 기한은 2019년 9월. 명령서에는 ‘취업 불가’ 도장이 찍혔다.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
이집트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돈도 다 떨어졌다. 노숙이 시작됐다. 길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어느 병원 입구에서 잠을 청했다. 그는 “자고 나면 뼛속이 다 차가워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배가 고프면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누군가 먹다 남긴 햄버거를 주워 먹었다. 한국인 네트워크가 없어 마땅히 도움을 청할 곳도 떠오르지 않았다. 샤메씨가 노숙을 시작하고 이집트로 송금하던 돈마저 끊기면서, 본국에 있는 가족의 생계는 더 막막해졌다.
제3국으로 떠날 결심을 한 적도 있다. 최종 목적지는 이집트, 경유지는 이탈리아인 비행기표를 끊었다. 이탈리아에 내려 난민 신청을 할 요량이었다. 계획은 한국 공항에서부터 어긋났다.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했다. 다시 노숙 생활로 돌아와야 했다.
네 번째 난민 심사… 한국서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러다 난민 심사를 다시 받을 기회가 주어졌다. 2018년 이집트, 수단에서 온 난민신청자 9명은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법무부 난민 면접조서가 허위로 작성됐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조사를 요구하는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법무부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난민전담공무원과 통역사가 면접을 형식적으로 진행했으며, 피해자들이 각각 다른 신청 사유를 가졌음에도 ‘돈을 벌러 한국에 왔다’는 틀에 박힌 문구가 면접조서에 공통적으로 적혀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사례가 향후 발생하지 않도록 난민인정의 공정성을 방안을 마련하라”고 법무부에 권고했다.
법무부는 이를 인정하고 2015년 9월부터 2018년 7월 사이 아랍어로 면접을 보고 난민 심사에서 탈락한 신청자들에게 재심 기회를 줬다. 샤메씨도 재심 대상이었다. 샤메씨의 면접조서도 난민 신청 사유가 ‘돈을 벌 목적’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심사 결과 ‘불인정’ 결정이 났다. 20여 년 전 한국에서 미등록 상태로 체류했던 것이 발목을 잡았다. 첫 입국 당시 제출한 여권과 2014년 여권에 표기된 영문명이 다르다는 것도 이유였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상근 변호사는 “영문명 알파벳이 달라진 건 이집트에서 이름 입력을 담당한 공무원 실수로, 샤메씨 본인 과실이 아니다”라며 “법무부는 부차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고, 본국에서 처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샤메씨는 난민인권센터의 법률 조력을 받아 이의신청을 했다. 약 7개월이 지난 현재도 심사대기 중이다.
4일 샤메씨 천막에는 이집트 친구들과 난민인권센터 활동가들, 지역 경찰 등이 들러 그의 안부를 확인했다. 주변인들이 건강을 염려해 ‘병원에 가서 수액이라도 맞자’고 권했지만, 그는 완강히 거절했다. 지난 주말 폭우가 내리는 중에도 그는 천막을 지켰다. 문제는 화장실이다. 법무부는 샤메씨가 청사 내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샤메씨는 천막에서 500m가량 떨어진 지하철 정부청사역 내 화장실을 쓰고 있다. 최영란 난민인권센터 활동가는 “단식으로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화장실 한 번 가는 게 일이다 보니, 샤메씨가 물도 덜 마시고 있다”며 “화장실 사용조차 막는 것은 반인권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샤메씨가 한국에 남고 싶은 이유는 한국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그는 “한국 국민 덕분에 한국을 좋아하게 됐다”며 “한국 사람 중에는 착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제가 지하철역에서 헤매고 있을 때 원래 가던 방향도 아니면서 30분 넘게 동행해준 사람, 단식을 한다고 하니까 비타민을 사다준 한국인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과 존중을 주고받으면서 행복을 느낍니다. 한국 사람을, 환경을, 동물을 사랑합니다. 한국에서 인간처럼 살고 싶습니다.”
과천=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