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기부 실천하는 회사들
소디움 파트너스
비영리단체 CI·로고 제작 매출 2~3%, 재능기부에 투자
이노션 월드와이드
비영리·민간단체의 광고 작년 총 60편 제작·기부
보스턴컨설팅그룹
10주간 3~5명 투입돼 경영환경·모금전략 컨설팅
남수단나눔조합
아나운서·PD 등 모여 남수단 방문해 벽화 그려
브랜드 전략·디자인 전문기업 ‘소디움파트너스’는 1997년 회사가 창립하자마자 IMF를 맞았다. 일감은 턱없이 부족했고, 직원은 남아돌았다. 구조조정을 택하는 대신, 이 회사는 ‘재능기부’를 택했다.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미래’와 함께 ‘희망의 지렛대’라는 캠페인(소외계층 아이들에게 교복지원, 교통비 지원, 학습지원 등을 해주는 프로그램) 로고 디자인 작업을 한 것이 계기였다.
이후 정일선 대표는 아예 재능기부 전문 프로그램인 ‘크리에이티브 엔젤스’를 만들었다. 브랜드 전략가와 디자이너로 구성된 팀이 파트너 비영리단체에 파견돼, CI나 BI, 로고 디자인 등을 제작한다. 발달장애인 인식개선 캠페인을 벌여온 ‘하트하트재단’, 의료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메디피스’, 글로벌 빈곤 이슈에 대응하는 ‘굿네이버스’나 ‘팀앤팀’, 학대받는 아동을 보호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의 로고 디자인이 모두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정일선 소디움파트너스 대표는 “빨리 성장하는 것보다 천천히 오랫동안 성장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며 “IMF 덕분에 회사 출범 초기부터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고 했다. 정 대표는 소디움파트너스 매출의 2~3%를 매년 재능기부 프로그램에 투자한다. 정 대표는 “10여년 동안 NGO와 함께 일하면서 자신의 일을 소중히 하고 감사하는 태도를 배운다”며 “회사 직원들도 물질적인 보상이 아닌 내부 동기에 의해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사회적 시민’이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광고, 컨설팅도 재능기부…직원들 참여 경쟁 높아
개인만 재능기부를 하는 건 아니다. 기업이나 친목단체, 동호회도 얼마든지 재능기부를 할 수 있는 시대다. 최근 비영리단체에는 개인뿐 아니라 광고·디자인, 전략 컨설팅까지 기부하는 기업 파트너들이 생겨나고 있다. 2012년말, 한 케이블 방송에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광고가 흘러나왔다. ‘이 아이를 기억하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모금 광고였다. ‘대한민국광고대상’과 국내외 광고제에서 입상한 이 광고는 ‘이노션 월드와이드'(이하 이노션)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것이다. 협력업체였던 광고 프로덕션 ‘원더보이스”617’ 등도 흔쾌히 동참했다.
이노션은 2012년 초 서울시의 ‘희망홍보 캠페인’ 파트너가 되면서부터 재능기부 대열에 뛰어들었다. ‘희망홍보 캠페인’은 서울시가 비영리단체 및 민간단체, 영세소상공인 홍보를 돕는 활동이다. 이지숙 이노션 홍보팀장은 “서울시가 버스 정거장이나 지하철 등 홍보매체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지만 막상 광고를 제작해 줄 곳이 없다는 소식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2012년 한 해 동안 총 40편의 광고를 제작·기부한 데 이어, 작년에도 영세 소상공인 12명, 비영리 민간단체 28곳 등 총 60개 업체의 광고를 무상으로 제작·기부했다. 이 캠페인에는 ‘칸 국제 광고제’ 수상자 등 이노션 내의 정예 멤버가 대거 참여했다. 이지숙 팀장은 “자긍심도 생기고, 공익적 아이디어도 자유롭게 풀어볼 기회여서 직원들의 참여율이 높다”며 “회사에서도 직원들의 재능기부를 독려하기 위해 작년 연말에 작은 시상식을 열어줬다”고 말했다.
전략컨설팅 회사 ‘보스턴컨설팅그룹'(이하 BCG)은 2006년부터 국제구호 NGO ‘세이브더칠드런’의 경영환경·조직구조·모금전략 등에 대한 컨설팅을 재능기부 한다. 글로벌 차원에서 양사가 파트너십을 맺고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박상순 파트너는 “BCG는 ‘조직 역량의 1%는 사회에 기여하는 몫으로 남기라’는 창업자의 강한 의지로 설립 초기부터 재능기부 활동을 진행해왔다”며 “2010년에는 세이브더칠드런이 급성장하며 생긴 조직의 정체성 및 차별화 전략을 다지기 위한 컨설팅을 실시했고, 모금 경쟁이 과열 기미를 보이던 작년에는 NGO와 기업이 ‘윈윈’할 수 있는 모금 전략에 대한 컨설팅이 진행됐다”고 했다.
재능기부지만 철저하다. 팀장급 한 명과 컨설턴트 3~5명이 투입돼 10주간 컨설팅이 이뤄진다. 박 파트너는 “조직 개편에 대한 컨설팅을 받은 후 세이브더칠드런이 타 NGO보다 조직이 잘 짜여 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뿌듯하다”고 했다.
참여를 원하는 직원들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이미 사내에 ‘재능기부 프로젝트에는 능력 있는 직원만 참여한다’는 인식이 생긴 데다, 컨설턴트로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한 것 자체가 큰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박상순 파트너는 “재능기부 활동을 통해 내부 직원 만족도와 충성도, 회사의 브랜드 가치 등이 동시에 높아진다”며 “기업의 핵심 자산인 ‘사람’과 ‘브랜드’를 만들어간다는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재능기부자들이 함께 꾸린 단체도 생겨
각자 활동했던 재능기부자들이 한데 모여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가는 단체도 있다. 2012년 아프리카의 남수단 긴급구호를 위해 뭉친 ‘남수단나눔조합’이 그 주인공. 김경란 아나운서를 포함해,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밥장(43·본명 장석원)씨, 태병원 방송 프로듀서, 강연욱 사진작가 등이 1호 조합원이다.
2009년부터 어린이재단의 ‘시에라리온 캠페인’, ‘어린이에게 새생명을’ 캠페인, 실종아동 캠페인 등의 일러스트 작업을 도왔던 밥장씨는 “(재능기부 활동을) 혼자 하면 다소 수동적일 수도 있고 쉽게 지칠 수도 있는데, 함께 모여 논의하는 과정 속에서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니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해 2월 남수단을 직접 방문한 나눔조합은 남수단 말렉 지역의 초등학교의 대형 벽화작업, 티셔츠 제작, 현지 영상촬영 등을 진행했고, 이후 남수단을 알리는 홍보책자 2000부를 만들어 배포했다. 밥장씨는 “사진작가, PD,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가 어우러지면서 더 좋은 발상이 탄생하고,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기회가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