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아동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코로나 팬데믹 이후 더 행복하다고 응답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과연 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일까요? 이러한 결과의 이면에는 코로나가 가져온 부정적인 영향보다 더 큰 문제가 코로나 이전에 있었다는 사실이 숨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겪었던 불안, 괴롭힘, 착취, 학대 등이 코로나로 인해 일시적으로 사라지면서 오히려 안도감을 느낀 것이죠.”
4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코로나19와 아동·청소년 불평등’ 정책포럼에서 브로나 번 퀸즈벨파스트대학 아동권리센터 교수는 코로나 이후 진행된 아동 연구를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이날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은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1주년을 맞아 국내외 아동들의 불평등 현황과 해결책을 살펴보기 위해 포럼을 마련했다.
유튜브 생중계로 진행된 이날 포럼에서는 전 세계 아동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연구결과를 비롯해 아동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기조 연사로 나선 번 교수는 지난 8개월간 진행한 글로벌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국제아동인권단체 뗴르 데 옴므(Terre des Hommes)의 새로운 이니셔티브 ‘#Covid Under 19’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조사에는 전 세계 137개국 8~17세 아동 2만6258명이 참여했다. 특히 조사 대상에는 장애아동, 난민 아동 등 취약아동도 포함됐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상황에서 아동이 느끼는 감정 상태로는 지루함(43%·중복응답), 행복(40%), 걱정(39%)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응답자를 장애아동으로 좁히면 지루함(40%), 걱정(38%), 스트레스(37%) 등 부정적인 상태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번 교수는 “대부분의 아동은 코로나 이후 부정적인 경험을 했다고 응답했지만, 특히 취약아동의 경우 코로나에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아동의 응답이 다른 아동에게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아동 개별 특성에 따른 대응이 필요하다”며 “이는 아동이 겪는 경험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해외 분쟁피해 지역의 아동에 대한 분석도 보고됐다. 애슐리 러벳 국제월드비전 분쟁취약국 정책 선임고문은 “코로나 장기화로 여전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의 수는 8억명에 달하고, 필수적인 학교 급식을 받지 못하는 아동 수도 2억6700만명에 이른다”면서 “특히 팬데믹 이전에도 강제 조혼, 유해한 노동, 무장단체 징집, 성 착취, 체벌 등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노출됐던 분쟁피해 지역의 아동들에게 코로나19는 더 큰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진 토론에는 남상은 월드비전 옹호·시민참여팀장을 좌장으로 김은형 여성가족부 청소년 자립지원과장, 변현정 외교부 개발정책과 서기관, 유서구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신재은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OCC) 정책교육센터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단 한 명의 아동·청소년도 소외시키지 않는 코로나19 대응 방안’을 주제로 국가와 정부·시민사회 등의 역할을 나누고, 실행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유서구 교수는 “코로나19 대응이 경제를 비롯한 성인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가장 취약한 아이들의 위기 상황을 더욱 심화시키는 경향이 있다”며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 규모와 대상 범위 고려 시, 아동·청소년들의 실질적인 필요와 기대를 포용해야 한다”고 했다.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은 “재난은 평등하지 않고, 위기는 민주적이 않다는 말처럼 힘없는 아동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면서 “이번 포럼을 계기로 코로나19로 위기에 놓인 아동·청소년들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 지원이 마련되고, 아이들의 안전하고 밝은 미래가 확보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