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만18세가 되면 사회로 나와야 합니다. 보호종료아동이죠. 이런 친구들이 기업에 연계돼 취업해도 보통 1~2주, 길어봤자 3개월 안에 그만둬요. 답답한 마음에 기업 대표님들과 아이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어요. 그때 알게 됐어요. 아이들에게는 일자리보다 ‘정서적 자립’이 필요하다는 걸요.”
김성민(36) 브라더스키퍼 대표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그가 자랐던 보육원의 일상은 폭력과 굶주림이었고, 마음은 항상 외로웠다. 사회로 나온 그는 비영리단체에서 7년간 일하면서 보호종료아동을 도울 수 있는 기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교육 사업을 준비했지만, 일자리 창출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연히 실내조경 사업가의 도움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고, 2018년 브라더스키퍼를 설립했다. 브라더스키퍼는 건물 외벽이나 실내 벽면에 수직(垂直) 정원을 조성하는 사업을 중심으로 보호종료아동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하고 정서적 자립을 돕기 위해 교육프로그램, 금융적 지원, 법률서비스 지원 등을 제공하는 예비사회적기업이다.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 청춘작업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보육원 아이들을 도우려는 작은 바람으로 시작된 일이 이젠 그 친구들과 함께 이루고 싶은 꿈이 됐다”고 했다.
식물 가꾸는 조경사업, 마음의 상처 치유한다
1985년. 그가 보육원에 입소한 해다. 만 18세로 보육원을 퇴소하기까지 17년을 지냈지만, 시설에서의 기억은 아름답지 않다. “예전과 지금의 보육원 환경은 많은 변화가 있어요. 폭력 문화도 많이 사라졌고 입고 먹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없어요. 20년 전만 해도 10명 중 9명이 부모가 없었다면, 지금은 2명 정도밖에 안 됩니다. 부모가 있지만 시설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이 그만큼 늘어난 거죠.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게 있어요. 아이들의 마음이요. 여전히 외롭고 쓸쓸해합니다. 보육원 친구들과 함께 사업을 벌이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보호종료아동만 회사 식구로 맞이합니까?
“현재 직원 8명 중 6명이 보호종료아동입니다. 100%는 아니지만 가급적 보육원에서 사회로 나온 친구들과 함께 일하려고 합니다. 보육원 입소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삶은 개척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정서적 회복이 핵심인데,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일하면서 깨닫게 합니다.”
─근무하면서 정서적으로 회복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식물을 가꾸는 조경 서비스가 핵심 사업인데, 자연스럽게 오랜 시간 식물을 접하게 됩니다. 직원들이 살아있는 식물을 가꾸면서 심리를 많이 추스르게 됩니다. 생명을 키우고 환경을 지키는 일에 본인들이 기여하면서 보람을 느끼죠. 그 친구들이 후배들을 만나면 ‘보육원’이라는 단어를 상처가 아닌 ‘나를 정의하는 단어’라는 것을 알려주기도 해요.”
─직원들에게 어떤 말을 가장 많이 하나요?
“‘너희가 최고야!’ 이 말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자존감을 회복시킬 수 있는 말들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일은 재미있느냐’는 질문도 주기적으로 하고요. 직원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일터인데, 일이 재미없으면 너무 힘들잖아요. 보직을 바꾸든 환경을 바꾸든 항상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해줘요.”
─반대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뭔가요?
“입사할 때 직원들이 제가 부러웠다는 얘길 많이 했어요. 회사 대표라는 외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보육원 출신이라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상처로 남겨두지 않는 당당한 모습을요. 그렇기 때문에 직원들도 이곳에서 일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정체성을 찾고, 상처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행복하다’는 말도 자주 합니다.”
─모든 일을 직원들과 함께하나요?
“작업을 선정하고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냅니다. 직원 아이디어에서 착안한 사업도 있어요. 상자 안에 화분, 식물, 토분이 들어 있는 ‘가드닝키트’를 개발해 보육원에 있는 친구들에게 보내려고 합니다. 식물을 직접 키우면서 정서가 회복된 직원들이 경험을 나누고 싶어하는 데서 출발한 사업이에요.”
함께 하는 사회, 편견 없는 시선에서부터
─사회에 나온 보호종료아동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편견이요. 아이들은 ‘보육원’이라는 단어에 얽매여 학교에서도 하루에 수십 수백 번 할퀴어집니다. 이러한 경험은 피해의식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피해의식이요?
“NGO 단체에서 근무하던 시절, 보호종료아동들을 일반 기업에 연결해주는 일을 했어요.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가진 기업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 아이들은 ‘내가 보육원 출신이라 잘해주나?’ ‘불쌍하게 여기나?’ 이렇게 생각해요. 반대로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큰 소리가 나기도 하고 일을 배우다가 혼날 수도 있는데, 그땐 또 ‘내가 보육원 출신이라 막 대하나?’라고 생각하죠. 아이들이 어떤 상황과 과정에서 자랐는지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선행될 것은 보통의 사람처럼 대하는 거예요. 조심스러운 언어를 쓰고 행동하는 게 더 부자연스럽고 오히려 그게 더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거든요.”
─어려운 문제네요.
“선한 의도로 말하고 행동했는데도 상처로 받아들인다면 주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의 문제라 생각해요. 이건 아이들이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문제인 거죠. 정서적 자립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정서적으로 회복되면 이런 문제를 극복할 힘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사회적 편견 없이 그저 아이들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하고 존중해주는 게 필요할 뿐이에요.”
─보호종료아동들과 함께 이루고 싶은 꿈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고아’가 됩니다. 부모님들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니까요. 보호종료아동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겪은 것뿐이에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거나 헤어졌을 뿐이지 특별히 그들만 겪는 일은 아닌 거죠. 이 친구들도 하고 싶은 일이 많아요. 사업적으로는 식물치유프로그램을 전국 보육원에 보급하고, 나아가 보호종료아동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고하은 청년기자(청세담11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