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 주범 ‘플라스틱 없애기’
민간 활동가·상인들 합심해 실천 지금까지 가게 16곳 자발적 참여
에코백 기부받아 시장에서 활용
실천고객 대상 지역 화폐 제공 계획 작은 불편 감수하면 환경 지킬 수 있어
서울 마포구에 있는 전통시장인 ‘망원시장’이 오늘(18일)부터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민간 활동가와 상인들이 주축이 돼 플라스틱 쓰레기를 시장에서 몰아내기로 합심한 것이다. 프로젝트 이름은 ‘알맹@망원시장’. 랩, 스티로폼, 비닐봉지 등 불필요한 ‘껍데기’를 없애고 ‘알맹이’만 담아 판다는 뜻이다.
양손 가득 ‘검정 비닐봉지’를 든 사람들로 북적대는 전통시장에서 과연 ‘제로 웨이스트’가 가능할까. 지난 12일 저녁,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개장 준비 중인 망원시장을 찾았다. 에코백과 유리병을 챙겨 제로 웨이스트 장보기에 직접 도전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주도한 배민지 제로마켓 대표와 홍조원 ‘알맹@망원시장’ 매니저가 동행했다.
◇“과일과 채소, 비닐봉지 대신 기증받은 에코백에 담아줍니다”
배민지 대표와 홍조원 매니저가 망원시장 내 ‘종로떡방’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망원시장 상인회장이자 떡방 주인인 최태규씨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배 대표는 “상인회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었다면 ‘알맹@망원시장’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발 벗고 나서 다른 상인들을 설득해준 최 회장의 도움이 컸다”고 감사를 표했다. 최 회장은 “올 들어 쓰레기 대란도 있었고, 방송에서도 플라스틱 문제를 계속 지적해와서 시장 상인들도 뭔가 해야겠다고 느끼고 있었다”면서 “기왕이면 우리 망원시장이 모범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팔을 걷어붙이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 가게로 걸어가면서 배 대표에게 ‘알맹@망원시장’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다.
“환경보호 활동을 하며 알게 된 고금숙 ‘알맹@망원시장’ 매니저(‘망원동 에코라이프’의 저자)와 함께 ‘전통시장에서 비닐봉지를 없앨 수 없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저희가 주로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는데 대형마트 못지않게 많은 양의 플라스틱과 비닐 포장재가 이곳에서 끊임없이 사용되고 있었거든요. 상인회를 설득한 뒤에는 가게를 일일이 찾아가 취지를 설명했어요. ‘손님들이 싫어하면 어떡하느냐’ ‘바쁜데 귀찮게 하지 마라’ 밥 먹듯 거절당했죠. 지금까지 16곳을 설득했고 나머지는 60여 곳은 계속 설득 중입니다.”
이번에 도착한 곳은 ‘대진청과’. 사과, 복숭아, 자두 등 과일들이 바구니에 소복하게 담겨 있었다. 알 굵은 자두 여섯 개를 넣으니 비닐 대용으로 챙겨간 작은 에코백이 터질 듯했다. 끝물인 황도 복숭아를 사려니 으깨질까 걱정돼 가게에서 보증금 500원을 주고 ‘알맹@망원시장’ 전용 에코백을 빌려 따로 담았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가게에서는 비닐봉지 대신 에코백을 비치해 놓고 있다. 에코백이 없는 손님에게 500원을 받고 대여해준다. 배 대표는 “가게에 나눠줄 에코백을 모으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면서 “새로 에코백을 제작하면 그것도 낭비일 것 같아 집집이 남아도는 에코백을 기증받았다”고 했다. 현재 300개의 에코백을 모았지만, 한 상점에서만 하루 비닐봉지 200장은 쓰인다 하니 턱없이 부족하다. “망원시장 안에 있는 ‘카페 M’에서 당분간 에코백을 계속 기부받을 예정입니다.”
◇쓰레기 없는 장보기 하려면… “필요한 물건 미리 생각해 적당한 용기 챙겨 와야”
곡물을 파는 가게인 ‘마당쇠’로 향했다. 기자가 머그컵만 한 유리병을 꺼내 “여기에 백태가 얼마나 들어갈까요?”하고 묻자 고종순 사장이 혀를 찼다. 저울에 병 무게를 달아보더니 병에 백태를 꾹꾹 눌러 담고 다시 무게를 쟀다. “다음엔 더 크고 입구도 더 넓은 걸로 갖고 오라”며 묵직해진 병을 돌려줬다. 홍 매니저는 “미리 어떤 걸 살지, 어느 정도 살지 목록을 만들고 필요한 밀폐 용기를 챙기는 요령이 필요하다”며 귀띔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털보네야채’. 데쳐놓은 나물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밀폐용기가 없어 다음을 기약하고 쪽파를 골랐다. 김정구 사장이 “파 뿌리에 흙이 좀 있는데 천가방에 바로 넣어도 되겠느냐”며 망설이자 배 대표가 옆에서 “천가방이라 빨면 되니 괜찮다”고 답했다. 복숭아 옆으로 쪽파를 세워 담았다. ‘껍데기’ 없이 ‘알맹이’만 있는 장보기가 한 시간 만에 끝났다.
불룩해진 에코백을 들고 망원시장 내 ‘카페 M’에 들렀다. 상인회에서 운영하는 ‘카페 M’은 기부받은 에코백을 모아 관리하고, 손님들이 빌려간 에코백을 반납하고 보증금을 돌려받는 ‘알맹@망원시장’ 거점이기도 하다. 홍 매니저는 “에코백과 밀폐용기를 준비해오거나 빌린 에코백을 반납하는 손님에겐 망원시장 안에서 쓸 수 있는 마포구 지역 화폐 ‘모아’를 제공하는 시범 사업도 진행할 예정”이라 설명했다.
배 대표는 “전통시장에 ‘비닐봉지 없어도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면서 “축축한 생선이나 고기, 반찬이나 분식도 밀폐 용기만 가져오면 스티로폼이나 랩 포장 없이 얼마든 사갈 수 있다”고 말했다. “상인들도, 손님들도 서로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면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게 됐으면 합니다. 더 많은 가게를 프로젝트에 참여시키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지금 참여하기로 한 가게들이 이탈 없이 꾸준히 함께 갈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망원시장에서 검정 비닐봉지가 사라질 날이 올까. 빌린 에코백을 반납하러 망원시장을 다시 찾았을 때 마주하게 될 시장 풍경이 궁금해졌다.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heehan@chosun.com]
–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