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사국과 정부는 청각, 시각장애인의 평창 동계올림픽 시청권을 보장하라.”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던 지난달 13일, 시청각장애인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개회식 방송 중 청각 및 시각장애인의 시청권을 보장하지 않은 지상파 방송 3사와 정부를 상대로 진정을 제기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의하면 방송사업자는 장애인의 방송시청을 위해 자막 및 수어통역 화면 해설 등을 제공해야 하며, 국가와 지자체는 방송사가 올림픽과 같은 국제적 행사를 중계할 때 자막·수어통역·화면해설 등을 제공하도록 요청해야 한다(장애인복지법 제22조, 방송법 제 69조, 한국수화언어법 제16조). 김미연 장애여성문화공동체 대표는 “장애인이라고해서 패럴림픽만 보는 건 아닌데, 올림픽과 같은 국가적 행사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패럴림픽을 앞두고 장애인 접근성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일 주한 유럽연합(EU) 대표부는 서울 용산구 서울 스퀘어에서 ‘평창 패럴림픽-장애인 인권 옹호 미디어 세미나’를 열었다.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대회를 앞두고 장애인에 관한 차별과 사회적 배제, 편견과 고정관념 이슈에 대해 한국 언론의 인식을 높이기 위함이다. 미하엘 라이터러 주한 EU 대사는 “패럴림픽이라고 해서 올림픽과 다른 관점에서 봐야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면서 “이번 패럴림픽은 장애인을 단순히 국가의 보호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는 기점이 돼야한다”고 말했다.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출정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역시 “장애와 비장애 구분 없이 서로에게 용기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길 바란다”는 기대감을 전한 바 있다.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방송 보도를 할 때 주의해야 할 장애인 인권 이슈는 무엇일까. 세미나에 참석한 미하엘 라이터러 주한 EU 대사, 시나 폴슨 서울유엔인권사무소(OHCHR)소장, 조엘 이보네 EU 대표부 수석정무관, 김미연 장애여성문화공동체 대표, 김민정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연구원 등 전문가들이 강조한 주요 포인트를 짚어본다.
장애를 의학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쪽 다리가 없는 사람이 의족을 달고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면 이 사람은 장애인인가 아닌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장애인이 직면한 한계도 달라지고 있다. 장애인은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진 동일한 시민이자 동료로 여겨주길 바란다.” (시나 폴슨 서울유엔인권사무소 소장)
“OECD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약 15%가 장애인이다. 장애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숫자는 늘기도, 줄기도 할 것이다. 과거 패럴림픽 종목을 장애 등급 및 장애를 가진 신체 부위별로 나눴지만, 1992년부터는 장애를 가진 선수가 어떤 능력을 펼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종목을 분류했다. 이번 패럴림픽 역시 장애를 의학적 관점에서 나아가 사회·환경적 요소로 바라봐야한다.” (조엘 이보네 EU 대표부 수석정무관)
“장애인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에 대한 기사는 별로 없다. 장애인의 능력과 사회적 활동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 (하이빈 조우 ILO 글로벌 비즈니스와 장애 네트워크 컨설턴트)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00’라는 표현처럼 장애를 질병처럼 표현하거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착화하는 표현들이 흔히 사용되고 있다. 장애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양산하는 단어들이 빈번히 사용돼 장애인들의 사회적 통합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센터 모니터링 결과, 10대 중앙 일간지에서 장애인 관련 뉴스가 노동, 자선, 봉사 분야 순으로 보도되고 있지만, 정치·경제·국제적 측면에서는 관련 보도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앞으로는 장애인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보도와 포용적 표현이 많아자길 바란다.” (김민정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연구원)
“패럴림픽 선수들을 보도할 때 수퍼맨으로 영웅화시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패럴림픽 선수들을 올림픽보다 더 대단한 선수로 취급하진 말아달라. 언론인들은 장애인 선수들이 부진했다는 부분을 보도하기 부담스러워 하는데 그저 ‘원숭이도 나무 위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관점으로 경기가 부진했다고 보도하면 된다.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과도한 ‘영웅화’는 실제론 사회 활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장애인들을 향한 편견을 강화시킬 수 있다.” (기욤 고베르 벨기에 패럴림픽위원회 마케팅&미디어 매니저)’
“선수들이 전하는 ‘진짜’ 메시지를 보라 그들이 어떻게 어떤 장애를 가지게 됐으며, 장애 때문에 어떤 고통을 얼마나 겪었는지 등, 장애만을 강조하지 말고 그들이 스포츠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의지’에 집중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장애 선수들이 비장에 선수들 보다 더 큰 노력, 성과를 이뤄냈다며 특별 대우를 하라는 뜻이 아니다. 이들은 비장애 선수들처럼 실패하기도 좌절하기도 그리고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 우리가 올림픽 선수들을 대하는 것처럼 ‘선수’ 그 자체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조엘 이보네 EU 대표부 수석정무관)
이날 마련된 장애인 인권옹호 미디어 세미나는 문화일보, 서울신문, 연합뉴스 등 다양한 언론사 기자들이 참석해 활발히 목소리를 냈다. 문화일보의 한 기자는 “나의 시각장애인 친구를 특별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서 “패럴림픽을 포함한 장애 관련 보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북한의 패럴림픽 참가에 대한 질문도 던졌다. 연합뉴스의 한 기자는 “서울인권사무소는 북한 장애인 인권 상황에 대해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이에 시나 폴슨 서울 유엔 인권사무소 소장은 “아직 북한과 장애 인권 관련 논의를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우선 표현의 자유가 인정될 때 북한 장애인들의 인권이 향상될 거라 생각하며 언론들이 장애 관련해 적극적으로 보도해 주길 바란다”고 답했다. 이외 “언론 스스로도 반성해야 할 문제다”, “옳지 않은 장애 표현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교육이나 자료들을 참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도 나왔다.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은 오는 9일부터 10일간 강원도 평창과 정선, 강릉 일대에서 개최된다. 전 세계 49개국에서 모이는 선수 570명과 임원 1500여명, 대회 관계자 2만5000여명이 참가하는 역대 최대 규모다. 이번 동계패럴림픽에서 선수들은 장애인 알파인스키, 장애인 크로스컨트리 스키와 장애인스노보드, 장애인바이애슬론, 장애인 아이스하키, 웰체어 컬링 등 총 6종목에서 메달 80개를 두고 경쟁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