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학 순위 12위의 코벤트리 대학교(Coventry University)는 2014년 영국 대학 최초로 교내 사회적기업센터를 설립하고 사회적기업 인큐베이팅을 시도한 곳이다. 대학이 위치한 코벤트리 시는 영국 버밍엄에서 동쪽 약 30km에 있는 중소도시다.
지난달 24일, 주한영국문화원의 초청으로 방한한 코벤트리대 사회적기업센터의 키스 제프리(Keith Jeffrey) 센터장을 만났다. 제프리 센터장은 24일 주한영국문화원에서 열린 ‘대학의 역할과 사회혁신’ 간담회에서 교내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서울시 및 대학 관계자들과 네트워킹 시간을 가졌다. 하루 전인 23일에는 서울시의 초청으로 ‘캠퍼스타운 국제 컨퍼런스’에도 발표자로 섰다.
◇영국 대학 최초 사회적기업 인큐베이팅…코벤트리대의 사회혁신
“개인의 성장 배경이 커리어를 좌우하는, 낮은 ‘사회 이동성'(Social mobility)의 문제에 대해 대학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정책적 요구가 있었다. 또한 브렉시트 이후 공정한 사회로 가야 한다는 산업적 요구, 앵커(anchor) 기관으로서 지역에 임팩트를 줘야 한다는 지역사회의 요구 등이 늘어나면서 대학이 혁신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코벤트리대가 영국 대학 최초로 사회적기업센터를 설립하며 인재 양성에 뛰어든 배경이다. 제프리 센터장은 대학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사회적 압박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학교가 ‘기업가 정신’에 관심을 보인 것도 한몫 했다. 그는 “2008년 경제불황 이후 모든 학과에 기업가 정신 관련한 내용이 반영됐고, ‘사회적 책임’, ‘가치 추구’ 등 개념이 등장하면서 이를 교내에 접목시키기 위한 고민도 많아졌다”고 했다.
여기에 학생 및 교직원들의 사회적기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2014년 영국의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을 포함하는 CIC(Community Interest Company) 법인 형태로 사회적기업센터가 설립됐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일한 대학 내 사회적기업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코벤트리 시민들이 홍보대사로 나섰는데, 타 기관에서 홍보 요청이 올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여기서 수익성을 발견해 사회적기업 EnV가 만들어졌다. 지역 사회의 요구가 생기니 총장 레벨에서 직접 교내 사회적기업 추진을 결정하면서 사회적기업센터가 설립됐다.”
◇기업가 정신 위에 사회혁신 끼얹기…학생과 지역사회 구성원 키우는 요람으로
이후 코벤트리대 사회적기업센터는 학생 및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의 기업가적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코벤트리나 인근 워릭셔(Warwickshire) 지역 학생과 주민의 창업을 돕는 ‘이발브(EVOLVE)’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창업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이 ‘창업 허브(Enterprise hub)’를 찾아오면 언제든 필요한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외에도 해외 연수를 지원하는 ‘에라스무스’ 프로그램, 비즈니스 플랜 개발, 인큐베이팅, 학생 스타트업 융자 및 보조금, 기업가 툴킷 등으로 창업의 준비부터 진행과정 전반을 돕는다. 제프리 센터장은 “하고자 하는 열정과 동기를 강화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 학생들이 굉장히 많이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기업가 정신을 밑바탕으로 사회혁신을 위한 프로그램도 탄생했다. 유럽연합(EU)의 지원을 받아 민간 영역과 사회문제를 연결하는 ‘사회혁신 노드(Node) 프로그램’, 지역 및 사회적기업가들과 공동 연구를 추진하는 ‘소셜 임팩트 엔진’, 비즈니스로 해결 가능한 사회문제를 발굴하는 ‘소셜 임팩트 챌린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해커톤(일종의 경진대회)’ 등이다.
“하다 보니 학생들의 창업을 도와주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easy part)’이었다. 정말 어려운 것은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센터의 역할이 대학의 지적 자원과 지역사회를 한데 모아, 기업가 정신을 중심으로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임을 깨닫게 됐다.”
지역사회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활동도 계속 하고 있다. 교내 ‘H4C(HOPE 4 the Community)’팀은 신체·정신적 문제가 있는 이들을 위한 자조적 건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HOPE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시의 사회혁신센터 역할을 하는 ‘팹 랩 코벤트리(FAB LAB COVENTRY)’는 연령·출신을 불문하고 누구든 와서 지역 사회를 위한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코벤트리대와 워릭대(Warwick University)가 자금을 지원하고 코벤트리 사회적기업센터가 인큐베이션과 비즈니스 등을 지원해 운영중이다.
◇설립 3년, 35개 사회적 기업 배출하고 1만회 이상 지역사회 주민 강의 및 워크숍
올해로 설립된 지 3년, 임팩트는 어땠을까. 센터는 3년 동안 총 35개 사회적기업을 배출하고, 50개 이상 사회적기업이 모인 교내 커뮤니티를 조성해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학생과 교직원을 비롯해 지역사회 주민을 대상으로 한 강의와 면담, 훈련과 다양한 워크숍도 1만 회를 넘겼다. 지역 사회적 경제 활성화에 미친 성과가 인정받으며, 2016년에는 코벤트리 시가 영국 내 사회적 기업 진흥 협회인 ‘SEUK(Social Enterprise UK)’로부터 ‘사회적기업 도시(Social Enterprise City)’로 인증을 받기도 했다.
물론 대학 내 독립된 자회사로 시작한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대학과의 협력도, 자활의 길을 찾는 것 또한 과제였다. 제프리 센터장은 “자회사이기에 독립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학 내부적인 논의나 지속가능한 재정 운영 등을 고민하는 과정이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이 사업계획서를 구성할 때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사회적기업 관련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참여를 독려할 것’, ‘조달 부문에 사회적기업의 물건을 사용할 것’ 등 구체적 사항들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센터의 장기적 목표는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을 사회적기업 영역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19세 때 지역 협동조합을 설립해 20여년간 사회적 경제 영역에 몸담아온 제프리 센터장은 이를 위해 기업가 개개인에 집중하는 접근법(Human approach)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가 개인의 열정이나 신념은 대학도, 그 누구도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관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결국 기업가들을 지지해주고 성장 기반을 마련해주는 일이다. 지금은 성과지표로 창업한 스타트업 수를 보고 있지만, 앞으로는 비즈니스를 통해 만들어진 사회적 가치와 기업가 개인에게 일어난 역량 및 기술 변화 등을 측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