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과 사회적경제의 결합
할머니들이 담소하던 작은 모임이 묵을 만드는 사회적 협동조합이 됐다. 경북 영주 구성마을 ‘할매 묵공장’의 이야기다. 이곳 할머니 16명은 직접 기른 국산 100% 메밀로 친환경 묵을 만든다. 옆 마을 주부도 믿을 수 있다며 찾아올 정도로 인기다. 공장은 지난 2016년 도시재생 선도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져 마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한다. 주민들은 사업 시작 전부터 도시재생대학, 사회적경제 기초심화교육 등 관련 교육도 받았다. 이제 1년 차, 수익은 마이너스를 겨우 면하는 정도지만, 할머니들의 묵은 꾸준히 팔리고 있다.
◇도시재생과 사회적경제, 어떻게 결합할까
도시재생과 사회적경제의 결합이 최근 화두가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핵심 국정 과제인 ‘도시재생 뉴딜’로 기존 도시재생에 ‘일자리 창출’과 ‘주거(임대주택)’를 더해 매년 100곳 이상의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를 살리겠다고 밝혔다. 사회적경제 조직의 참여를 위해 조직 초기 사전기획과 컨설팅을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함께다. 국토교통부는 사업 선정 과정에서도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평가 기준으로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사회적경제와 도시재생이 만나면 어떤 시너지가 날까. 장원봉 사회투자지원재단 소장은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세스에 대해 사회적경제가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합 방식도 다양하다.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이 만들어진 공동시설이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수준에서부터, 지난 7월 국내 1호로 설립된 지역재생기업(CRC)인 ‘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처럼 주민이 직접 출자하는 적극적인 형태도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사회적경제가 도시재생의 구호로서만 소진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주원 두꺼비하우징 대표는 “사회적경제가 도서관, 국·공립어린이집, 마을카페 등 도시재생 뉴딜로 공급되는 유휴공간 활용부터 임대주택 공급 주체, 위탁 관리 주체로도 등장할 수 있다”며 “사회적경제가 중앙, 광역, 기초 부처 사업의 하위 파트너십이 아닌 주요 주체로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 필요해… ‘커뮤니티 오너십’가능할까
유럽, 미국 등에서는 이미 지역재생기업 주도의 도시재생이 확산 추세다. 대표적 성공 사례가 영국의 사회적기업 ‘코인 스트리트 커뮤니티 빌더스(CSCB)’다. 이곳의 주민 수백 명은 부동산 자산을 공동 소유하는 커뮤니티 오너십(Community ownership) 형태로 쇠락한 공장 지대를 재생한다. 민간 개발업자에 대응해 지역의 땅을 소유, 협동조합 4개를 설립하고 수익은 주민 편의를 위해 재투자한다. 영국 리버풀의 ‘홈베이크드(Homebaked)’도 공동체토지신탁이 빵집을 운영하며 지역 상가를 재생하고 주민들에게 고용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공 모델이 한국에서도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적경제 허브로 서울 창신·숭인지역 재생사업에서 중간조직 역할을 해온 ‘한다리 중개소’ 진영민 활동가는 “도시재생과 사회적경제를 결합한다는 미션 아래 활동해왔는데 가끔은 ‘성과를 위한 끼워 맞추기식 접근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정부는 ‘사회적경제가 사업에서 몇 %를 해줄 수 있겠냐’고 묻고, 어떤 선도지역은 ‘협동조합을 25개 만들겠다’는 재생 계획을 내놓는데 그렇게 되면 오히려 사회적경제가 죽는다”면서 “정책의 목표로서 일자리 등 수치가 아니라, ‘건강한 공급자 양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전은호 토지+자유연구소 시민자산화센터장은 “사업 초기부터 주민들이 분명한 목적 아래서 주인으로 참여하고, 자발적으로 지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도시재생과 사회혁신, 스파크포럼서 논의
이와 관련, 지난 23일 ‘스파크포럼@더나은미래’에서도 ‘도시재생과 사회혁신’이란 주제로 토론이 벌어졌다. 구자훈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는 ‘도시재생과 사회적경제의 연계 방안’에 대한 특강에서 “마을 할머니들이 묵을 만들어 파는 협동조합, 게스트하우스 사업을 하는 청년협동조합 등 새로운 활동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사회적경제의 큰 장점”이라며 “국토부도 도시재생의 계획과 사업 실행에 사회적경제와의 연계가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날 포럼에 참여한 ‘한다리 중개소’의 진영민 활동가는 “지난 3년간 주민 활동가 인터뷰, 마을의 크고 작은 모임과 세미나 등에 참여하면서 마을에 스며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며 “그동안 도시재생과 사회적경제를 연결하는 허브 역할에 집중했다면, 이젠 공간을 기점으로 독립해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을 찾아보고자 한다”고 고민도 공유했다.
종로 세운상가를 재생하는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강맹훈 서울시 재생정책기획관은 이날 포럼에서 “종묘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보행길 건축과 랜드마크화, 4차 산업 기술 관련 창업 인큐베이팅과 교육 등으로 시민과 전략기관이 모일 수 있게 기획 중”이라며 “시민대학과 주민공모사업, 젠트리피케이션 상생협약 등으로 시민과의 신뢰를 회복하고 지역의 가치를 발견하는 재생을 만들어갈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