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정유년의 새해가 밝았다. 기업이 과거의 부정(不正)을 씻어내고, 바르게 돈을 벌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시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언급한 경영인은 누가 있을까. 더나은미래는 국내 재벌 총수들이 직접 발표한 신년사를 분석했다. 일부 총수들의 경우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인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만큼,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해서는 몸을 사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편, 보다 적극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신년사에까지 이를 별도로 언급한 경영인들도 있었다.
◇‘혁신’은 강조하고 ‘책임’은 모호…사회적 책임 언급 없는 삼성·GS·포스코
대내외적 위기가 많았던 삼성, GS, 포스코의 경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언급보다는 혁신과 성장에 대한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별도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다. 시무식에도 불참했다. 이 회장을 대신해 시무식에 참석한 권오현 부회장은 “작년의 값비싼 경험을 교훈 삼아 올해는 완벽하게 쇄신해야 한다”면서 ‘품질검증’과 ‘혁신’을 주요 키워드로 언급했다. 국정농단의 중심이었던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승마활동에 약 35억원을 지원하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60억원을 기부했지만, 기업의 사회적책임이나 윤리경영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신년을 맞아 두 갈래의 신년 소회를 발표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의 모금원이었던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회장으로서는 “전경련이 여러 가지 일들로 국민 여러분께 많은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렸다”고 사과를 전하며 “국민적인 여망을 반영한 여러가지 개선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오는 2월 전경련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한편, GS 신년모임 발언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역할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저성장 위기 극복을 위한 과제로 △조직문화로 정착해야할 ‘진화의 DNA’ △수익기반 다변화 및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 △‘최고의 경쟁력은 실행력’ 등 총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 역시 ‘마부정제(馬不停蹄·달리는 말은 멈추지 않는다)’를 키워드로 성장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권회장은 기업의 위기상황을 강조하면서 ‘경쟁우위’를 위한 산업 구조조정, 스타트업과 같은 수준의 혁신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으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여러 논란을 딛고 연임 의지를 확고히 한 권회장 신년사로는 다소 아쉽다는 평이다.
◇투명성 등 책임경영 강조…현대차·SK·LG
반면 현대차, SK, LG그룹의 신년사에는 신뢰·투명성 등 책임 경영이 강조됐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시무식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본인의 이름으로 사내망을 통해 신년사를 발표했다. ‘신차출시’ ‘신사옥추진’ 등 기업의 향후 목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한편, 현대·기아차 그룹 임직원들을 향해 “투명 경영과 사회공헌 활동을 더욱 강화해,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국민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는 당부를 전했다. 2016년 신년사에서 언급했던 ‘협력사 동반성장’과 ‘청년 일자리 창출’ 대신 올해는 ‘투명 경영’과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최태원 SK 회장은 직접 워커힐호텔 신년회에 참석해 ‘딥 체인지’를 키워드로 변화를 예고했다. 최 회장은 “구성원 모두가 변화를 위해 마음과 자세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는 가운데 “SK의 성장은 사회 공동체의 행복으로 연결된다”면서 신뢰받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한편 SK그룹은 신년을 맞아 오너일가 3인의 아너소사이어티(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 이상 고액기부자 클럽) 가입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이 그 주인공. 형제와 사촌이 나란히 2017년 1~3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앞서 2007년에는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이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한 바 있다.
올해 창업 70주년을 맞는 LG그룹의 분위기도 남달랐다. 구본무 LG 회장은 2일 여의도 LG트윈타워 대강당에서 열린 신년회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세 번째 토대로 ‘국민과 사회의 존경’을 꼽았다. 구회장은 “경영의 투명성을 한층 더 높여 투자자와 사회의 믿음에 부응하고, 배려가 필요한 곳에는 먼저 다가설 수 있도록 하자”며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준법경영, 상생경영 구체적 언급…롯데·한화
경영권 다툼, 면세점 사업 탈락, 경영비리 수사 등 다사다난한 시기를 보낸 신동빈 롯데 회장 역시 새해 첫 월요일에 맞춰 신년사를 발표했다. 신 회장은 “지난 한 해 우리 그룹은 깊은 자기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면서 “이웃과의 나눔을 실천하며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좋은 기업이 되자”고 전했다. 특히 각 계열사별 ‘현장 중심의 책임경영’과 ‘도덕성 확보와 준법경영을 위한 제도적 장치’ 강화를 주문하는 등 롯데그룹의 사회적 책임을 2017년 주요 키워드로 삼는 모습이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윤리경영’ ‘투명경영’ ‘상생경영’ 키워드를 언급하며, 기업의 선진화를 강조했다. “이러한 진정성있는 노력들을 통해 공정한 사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하여 한걸음 더 앞장서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며 “새 시대에 부응하는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새롭게 정립해 나가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편 지난 4일 개최된 ‘경제계신년인사회’에는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을 포함한 10대 그룹사 총수가 모두 불참하는 사태가 초래됐다.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매년 초 열리는 경제계신년인사회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재계 각층 고위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최대 연례행사다. 하지만 올해는 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유례없이 단출하게 진행됐다. 이날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기업 일부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돼 경제단체장으로서 국민들게 머리를 들기 어려울 정도로 송구스럽다“면서 “기업부터 솔선수범해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