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영 청년기자의 ‘공유’ 체험기
“일단 먹고 시작하죠.”
선선한 바람이 코 끝을 간질이는 11월의 첫번째 일요일 오후, 빨간 테이블에 둘러 앉은 사람들은 하나, 둘씩 앞에 있는 피자를 집어 들었다. 어색함도 잠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한 마디, 한 마디 대화가 이어지고, 웃음꽃이 피어났다.
빨간색 파라솔과 테이블이 한가득 깔려 있는 이곳은 간이 식당도, 음식 동호회도 아니다. 지난 6일부터 7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16 공유서울 페스티벌’에 참여한 소셜다이닝 ‘집밥’의 야외 부스 현장. 박람회 현장에 들어서기도 전, 드넓은 DDP 광장에는 이미 축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어쿠스틱 가수들의 달달한 노래가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서로가 가진 물건, 그리고 재능과 지식을 나누며 서로 소통하는 모습은 마치 옛날의 마을 공동체 같았다. 이곳은 축제였다. 잔잔하지만 따뜻한 나눔의 축제 말이다.
‘2016 공유서울 페스티벌’은 공유경제를 주제로 한 박람회 및 컨퍼런스다. 공유경제는 쉽게 말해 한 번 생산된 물건, 시간, 재능, 정보 등을 서로 나누어 사용하는 경제를 일컫는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시민들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서의 ‘공유도시 서울’을 표방해왔다. 올해 테마는 ‘공유랑 놀자’. 이날 페스티벌에서는 주차공간, 카셰어링, 생활공구, 장난감, 정장부터 개인의 경험과 재능까지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32개 공유기업 및 단체들이 함께했다. 또한 글로벌 공유경제를 선도하는 전문가와 해외 공유도시 정책가 등 30여명이 서울에 모여 지속가능한 도시의 전략으로서 ‘공유경제’의 비전과 발전 전략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1. 우리 같이 차 타요! 카풀서비스 ‘풀러스’
들어가자마자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카풀 애플리케이션 ‘풀러스’의 부스. ‘우리 매칭했어요’라는 매칭 카드 게임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선물을 증정하고 있었다. 매칭 카드 게임이란 ‘라이더’와 ‘드라이버’ 카드를 선택해서 똑같은 장소가 나오도록 하는 게임인데, 단 세 번의 기회로 이것을 맞춰야 한다. 청년기자는 매칭 카드 게임으로 1회 무료 카풀 체험권을 획득했다. 홍보 이벤트의 일환이었지만, 이 게임은 라이더와 드라이버를 ‘매칭’한다는 풀러스의 사업 플랫폼을 응용한 게임이었다. 풀러스는 실시간 매칭되는 온디맨드 (on-demand) 기반 카 셰어링 서비스이다. 2016년 4월에 설립되어 5월부터 공개 시범 서비스를 런칭했다. 쉽게 말해, 차로 혼자 이동하는 드라이버가 남는 좌석을 공유해 차 없이 이동하는 라이더와 함께 이동하는 서비스다. 즉, 풀러스 앱으로 차를 호출해 간편하게 카풀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서비스를 통해 드라이버는 유류비 부담을 줄이고, 라이더는 새롭고 합리적인 교통수단을 확보하게 된다. 현재 성남 분당, 판교권에서 시범 서비스 중이며, 라이더는 무료로, 드라이버는 수수료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론칭부터 지금까지 3000건이 넘는 라이더-드라이버 매칭이 이루어졌다고.
#2. 입지 않는 정장 가지고 있으세요? 청년 구직자와 공유하세요!
그 옆에는 ‘열린옷장’ 부스가 있었다. 열린옷장은 정장이 필요한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김소령 씨와 한만일 씨가 설립한 비영리 단체다. 2011년 희망제작소에서 진행한 사회 혁신 아이디어를 위한 직장인들의 모임이 계기였다. 열린옷장은 시민들로부터 기증받은 정장을 직접 방문과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저렴하게 대여해준다. 여성은 3만원, 남성은 3만 4000원이면 정장 풀세트 대여가 가능하다. 기본 대여일은 3박 4일이며 택배나 직접 방문을 통해 반납하면 된다. 월 평균 2000여명의 정장이 필요한 사람들이 열린옷장을 방문한다. 열린 옷장의 모든 수익은 지속 가능한 운영과 서비스 개선,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한 다양한 사업에 쓰이고 있다. 매주 목요일, 홍대 ‘바라봄’사진관에서 취업준비생의 증명 사진 촬영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대학생 비영리 단체인 ‘십시일반’을 통해 취약계층 대학생들을 위한 식권도 기부하고 있다. 열린옷장은 ‘입지 않는 옷을 기부 받는다’는 핵심 매커니즘을 살려서, 박람회 현장에서 ‘옷장정리 체크리스트’를 참여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체크리스트를 제출한 참여자들에게는 작은 병에 담긴 ‘열린옷장 시그니처 향수’를 제공했다.
#3. 버려지는 장난감도 공유하면 가치는 두 배!
알록달록한 장난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예비 사회적기업인 ‘금자동이’ 부스에는 아이들이 북적북적 거렸다. 금자동이는 버려지는 장난감이나 유아 아동용품 폐기물을 가지고 재료별로 분리한 후, 재사용하는 재활용 전문 사회적 기업이다. 금자동이의 박준성 대표는 지난 1998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장난감 재활용을 시작했다. 주위에 버려지는 장난감과 유아용품을 보고 우연한 기회에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 2000년엔 중고 유아용품 장난감 재활용 인터넷 쇼핑몰을 개설하였고, 2010년 법인으로 전환했다. 2013년엔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아, 지금은 서울시 은평구의 서울혁신파크에 자리하고있다.
금자동이는 사용하지 않는 중고 장난감이나 유아용품을 사들여 필요한 사람들에게 재판매한다. 고장 등으로 쓸모가 없게 된 장난감은 ‘쓸모’라는 장난감학교를 통해 부품, 또는 색깔별로 분류해 새로운 장난감으로 재탄생 시키는 것. 장난감을 기부 받아 필요한 곳에 전해주는 일도 한다. 장난감 재활용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재활용을 통한 환경 보호까지 실천하고 있다. 이날 아이들은 색깔, 재료별로 분리해 둔 장난감 재료들을 이용해 자신만의 새로운 장난감을 만들며, 직접 업사이클링을 체험했다.
#4. 주차 공간 고민이시죠? 파킹 플렉스가 해결해드립니다.
‘빈 공간을 공용 주차장으로 쓰면 어떨까?’ 주차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서비스가 나타났다! 사회적기업 이노온은 IOT(사물인터넷) 기술과 공유경제를 활용하여 지난 4월부터 IOT 기반 개인주차공간 공유 서비스 ‘파킹플렉스’의 무료 시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이노온은 생활을 좀 더 편리하게 만드는 기술을 고민하는 3명의 엔지니어가 모여서 만든 젊은 벤처기업이다. 2015년 현재는 IoT 기술을 기반으로 IoT와 관련된 전문가를(네트워크 전문가, 앱 소프트웨어 전문가, 하드웨어 전문가) 보유한 IoT 솔루션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서울 북촌을 중신으로 서비스를 확대해 나가는 중이다.
리모컨을 이용해 대형 장난감 자동차를 조정하며 주차를 하자, 주차장 바닥에 설치된 센서가 애플리케이션 화면과 연동되며 ‘사용중’이라는 알림이 떴다. 파킹플렉스는 한마디로 주차할 곳이 없어 방황하는 운전자들과, 빈 공간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을 연결하는 공유 플랫폼이다.
#5. 비싼 공구? 사지마세요, 은평공유센터로 오세요!
박람회의 한 부스에서는 연신 톱밥이 날렸다. 주인공은 ‘은평공유센터’. 은평공유센터는 ‘은평e-품앗이’ 커뮤니티와 은평구가 함께 설립한 국내 최초의 물품공유센터이다. 이곳은 평소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구매하기는 부담스러웠던 공구를 저렴한 가격으로 대여해 사용할 수 있다. 2011년 만들어진 ‘은평e-품앗이’는 주민들이 생활에서 필요하지만 그때그때 사서 쓰기는 아까운 물품들을 공유하다가, 물품 공유가 재능 공유로 확대되었다. 더 나아가 참여한 주민들이 소모임 리더로, 공유경제 강사로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서 성장해왔다.
지역에서 공유 문화가 확산되자, ‘은평e-품앗이’ 커뮤니티는 더 많은 사람들과 가치를 나누기 위해 나섰다. 2013년 주민참여예산에 제안했고, 이를 바탕으로 공유센터를 건립한 것. 센터에서는 물품뿐만 아니라, 지식이나 경험 등의 재능도 공유한다. 은평e-품앗이는 현재 회원 수 2000명, 거래 건수 5000건이 넘는다. 행사날에는 목공, 캘리그라피, 가죽 공예 강사들이 직접 DIY 체험을 지도했다. 청년 기자는 직접 커피 테이블을 만들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상 다른 체험자가 만드는 과정을 지켜봤다.
#6. VR기기로 체험하는 공유 경제
이번 행사에는 VR(가상현실) 기기까지 등장했다. 쉐어하우스와 카풀 서비스 등 직접 체험하기 어려운 공유 서비스는 ‘VR ZONE 공유하루체험’ 홍보 부스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청년 기자가 VR 기기를 끼자, ‘서울에 있는 기업에 취업한 공유(부산 출신, 27)씨의 알뜰하고 편리한 공유로 하루 살기’라는 제목의 영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공유 경제로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생생하게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공유는 ‘소통’과 ‘나눔’이다
공유서울 페스티벌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바로 ‘소통과 나눔’이었다. 공유는 흔히 ‘소유’한 물건을 함께 나눠쓴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하지만 집밥을 비롯한 여러 체험 부스들은 서로의 재능과 지식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되었다. 단순히 물건을 함께 나눠 쓰는 것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경험과 생각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질을 함께 사용하는 것도 분명 공유경제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나눔엔 신뢰가 필요했다. 내가 가진 것을 그 사람도 소중히 다뤄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공감이 전제돼야, 진정한 공유 경제를 이룰 수 있는 것. 공유도시는 경제 효과 이전에 사람의 유대를 회복하고 사회를 연결시키는 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소통과 공감으로 형성된 신뢰를 통해 더욱 나눔이 풍성해진 앞으로의 사회를 기대할 수 있는 이유다.
정소영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6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