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싱어 교수 인터뷰 2
◇기부의 임팩트를 평가하라
―개인 기부자들은 어떤 단체가 효과적인지 알기 쉽지 않다. 잘 모르다 보니 비영리단체의 투명성에 막연한 의구심을 품는 이도 많다.
“사실이다. 미국 내 자선단체는 100만 곳에 이르고, 연간 기부금 규모는 3000억달러(약 337조억원) 수준이다. 각 단체가 얼마나 효과적이고 투명한지에 대한 정보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래도 미국에선 지난 10년간 비영리단체의 활동을 평가하는 다양한 중간 평가 기관들이 생겨났다. 빈곤 해결 분야에 종사하는 비영리단체의 효과를 연구하는 ‘기브웰(GiveWell)‘이나 ‘당신이 구할 수 있는 생명(The Life You Can Save)‘ ‘기빙왓위캔(Giving What We Can)‘ 등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는 비영리단체들을 심층 조사한다. 연구 자료도 끌어모으고, 임의 표본 검사도 실행한다. 미국에서 ‘효율적 이타주의’ 운동이 큰 힘을 받게 된 건 이런 기관들이 생겨난 덕분이다.”
―’기브웰’ 같은 기관이 기존 ‘가이드스타(GuideStar)’나 ‘채리티내비게이터(Charity Navigator)’ 같은 평가 조직과는 어떻게 다른가.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다. 가이드스타나 채리티내비게이터는 재무 성과 지표에 기반해 단체를 평가한다. 자선단체들이 국세청에 의무적으로 제출한 운영 보고 양식을 받아, 기부금 수입에서 구호 활동비로 어느 정도를 썼고, 모금에는 얼마가 들었고, 운영비나 인건비에는 얼마를 썼는지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것은 책의 겉 표지만 보고 책이 좋다, 나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운영비나 모금에 쓴 비용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비영리단체의 진짜 효율성과는 관계가 없다. 가령 어떤 기관은 프로그램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뛰어난 인력을 고용하고,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연구 평가를 하는 데 투자한다고 하자. 반면 또 다른 곳은 그런 돈을 쓰지 않아 운영비 비중이 낮다고 해보자. 그게 후자에 기부해야 하는 이유일까. 재정적 지표만 보는 것은 오해를 부를 소지가 다분해서 오히려 위험하다. 기브웰은 온갖 자선단체를 들여다보는 대신 처음부터 ‘개발도상국의 빈민을 돕는 단체’로 한정했다. 단체에서 직접 발간하는 자료 대신, 구호 활동에 초점을 맞춘 학계 조사 결과에 기반한다. 외부 연구 기관과도 협업하고, 임의로 수혜자 표본 집단을 선정해 독립 연구를 진행하기도 한다. 굉장히 효율적이라는 근거가 충분한 단체들만 추천한다.”
지난해 기브웰에서 추천하는 단체는 총 4곳이다. 모기장 하나를 배분하는 데 약 5달러가 드는 것으로 추산되는 ‘어겐스트 말라리아 재단(Against Malaria Foundation)’, 빈혈증과 학습 부진을 일으키는 기생충 감염을 저렴한 비용에 치료하는 ‘주혈흡충 예방 재단(Schistosomiasis Control Initiative)’, 케냐와 우간다 극빈층에게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단체 ‘기브디렉틀리(Give Directly)’, 나머지 한 곳은 한 아이당 0.8달러로 기생충 예방 프로그램을 전개하는 ‘세계 기생충 예방 이니셔티브(Deworm the World Initiative)’다.
―모기장을 나눠주는 게 아니라, 정책을 ‘옹호’하거나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활동은 측정이 어렵지 않은가. 평가가 중시되면 이 분야는 기부의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물론 효과적이라고 증명될 가능성이 높은 활동이 있다. 옥스팜의 정책 옹호 활동이 그 예다. 옥스팜은 2007년 가나에서 새로운 유전이 발견됐을 때, 가나 시민사회와 함께 ‘농사짓는 석유’ 캠페인을 진행해 대성공을 거뒀다. 유전 개발 수입의 상당 부분이 지역 영세농과 빈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했다. 그리 많은 비용을 들이지도 않았다. 투자 수익률이 굉장히 높다. 그런데도 이런 캠페인은 정확히 얼마를 들여,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이런 기관에 기부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 문제고, 리스크 성향의 문제다. ‘이 기관은 증명되진 않았지만 더 큰 임팩트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최소한의 예측이 있어야 한다.”
◇최소 비용, 최대 효과의 기부 방법을 택하라
같은 활동이라면, 기왕이면 적은 비용을. 같은 비용이라면 더 많은 사람을. 국내보다는 ‘단위 금액당 실현 가능한 선의 양이 훨씬 큰’ 개도국에 지원을. 그는 ‘선(善)의 최대화’를 주장한다. 난치병 아동 한 명의 소원을 이뤄주는 데 들어가는 7500달러면, 최소 세 아이를 말라리아에서 구할 수 있다는 식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 훈련은 어떨까. 한 마리를 훈련하는 데 드는 4만달러면 개발도상국 트라코마 환자 2000명의 실명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학 장학금이나, 미술관 증축도 옳은 기부 대상이 아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새로 지어진 미술관을 보기 위해, 15년에 해당하는 5475일간 실명을 감수할 의향이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당신은 실명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기부를 받는 ‘가치’에도 우위가 있다는 것. 그의 주장은 미국에서 여러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록펠러자선자문단의 멀리사 버먼 대표는 뉴욕타임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피터 싱어의 주장을 반박하며 “여성을 강간에서 보호하는 일, 빙하가 녹는 것을 막는 일, 교육 제공, 주택 보급, 투명한 정부 중 무엇이 더 가치 있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며 “결국 무엇이 더 가치 있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기부자의 기부 선호를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멜리사 버만 대표는 “기부자들의 의도를 존중할 때, 사람들은 더 많이, 더 지속적으로 기부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신은 “그런 기부금이라면 더 많이 내지 않는 편이 낫다”고 재반박했다. 어쨌든 타인을 위해 쓰이는 돈 아닌가. 사람들이 더 많이 기부하게 하는 건 그 자체로 의미 있지 않은가.
“아니다. 가령 오페라하우스를 짓는 데 돈을 기부하고 싶은 사람을 설득해 ‘최빈국 빈곤 문제 해결’에 기부하도록 했다고 하자. 오페라하우스에 냈을 법한 액수보다 훨씬 적은 10%만 냈다고 해도, 그 기부금이 100배 효용을 내는 데 쓰인다면 그 편이 더 큰 선을 이룬다고 믿는다. 기부자가 결국 아무 데도 기부하지 않는다 해도 그 편이 더 낫다. 기부금은 결국 세금공제 대상이므로 일반 납세자들이 기부금 일부를 부담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단체가 세상에 끼치는 해악이 없다고 해도, 나는 그 단체가 이루는 선이 크지 않으면 그곳에 기부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믿는다. 비영리단체라고 해서 모든 곳이 존재 의의가 있는 게 아니다.”
―전 세계 수많은 비영리단체에서 여전히 삐쩍 마른 아이, 우는 아이 등 안타까운 사진을 모금에 활용한다. ‘빈곤 포르노’ 논쟁을 일으키고는 있지만, 여전히 수많은 기부자가 ‘이성적 판단’보다는 불쌍한 마음 때문에 기부한다.
“여러 윤리적 문제가 얽혀 있지만, 이런 사진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에게 빈곤에 대한 무기력감을 심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기적으로는 더 많이 모금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장기적으로는 ‘마시는 우물에 독을 푸는 셈’이다. 사람들에게 ‘아무리 기부해봐야 빈곤은 수년째 그대로’라는, 조금도 변화가 없다는 인상을 준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빈곤에 맞서 싸울 힘을 깎는다.”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효율적 이타주의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운동이다. 아시아에서도 홍콩이나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효율적 이타주의 그룹이 있다. 한국 역시 효율적 이타주의 운동에 뛰어드는 이들이 나오길 바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동시대 사람들을 돕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데 힘을 모으기 바란다.”
☞ 피터 싱어(Peter Singer)
실천윤리학 분야의 거장. 美 타임지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에 선정하기도 했다. 옥스퍼드 대학, 뉴욕 대학, 캘리포니아 대학 등에서 강의하였고, 프린스턴대학교 생명윤리학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 효율적 이타주의자 (원제 The Most Good You Can Do)
사회의 도덕기반과 윤리 이슈들을 다루는 예일대학교 캐슬 강연을 토대로 만들어진 책으로, 세계적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사회운동 ‘효율적 이타주의’를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