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책’이 된 CJ 임직원, 진로 수업을 바꾸다

‘CJ 진로사람책’ 임직원 자원봉사 임팩트
비대면 멘토링으로 도서·산간까지 넓힌 진로교육 기회

“멘토님 회사 복지 좋아요?” “지금 하는 일은 행복하세요?” “마케터가 되려면 고등학생 때 어떤 준비를 하면 도움이 될까요?”

중학교의 진로 수업 시간, 교실에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던 질문들이 쏟아진다. 학생들이 마주한 상대는 교사가 아니라 화상회의 화면 속 CJ그룹 현직 임직원들이다. 학생들은 칠판 대신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켜고, 사전에 희망한 직무에 따라 소회의실로 나뉘어 현업 임직원과 소그룹으로 연결된다. 전 계열사 임직원은 물론 주요 계열사 대표급 경영리더도 멘토로 참여한다.

‘CJ 진로사람책’ 프로그램 소회의실에서 CJ그룹 현직자가 사전질문에 답변하는 모습. /한국자원봉사문화

이는 올해로 5년 차를 맞은 청소년 진로 멘토링 프로그램 ‘CJ 진로사람책’의 현장. 한국자원봉사문화가 운영하는 ‘CJ 진로사람책’은 CJ그룹 현업 임직원이 ‘사람책’이 되어 자신의 경험과 조언을 청소년에게 직접 전하는 방식의 진로 멘토링이다. 2020년 온라인 파일럿으로 시작해 현재까지 임직원과 경영리더 757명이 멘토로 참여했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소년은 6235명. 대학생 자원봉사자로 운영을 돕는 청년리더도 750명에 이른다.

◇ 현장과 멀어진 진로교육, ‘사람’을 만나 가까워지다

“대학생들은 직접 부딪히며 진로를 탐색할 기회가 있지만, 중·고등학생들은 학교 안에 머무르다 보니 직업 세계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현업에서 실제로 겪는 어려움과 필요한 역량을 가능한 한 솔직하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진로사람책’에 봉사자로 11차례 참여한 조재형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박사의 말이다. 프로그램의 핵심은 기업 임직원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현업의 경험을 청소년에게 직접 전하는 데 있다. 이는 2020년 자유학기제 전면 시행 이후 진로체험 수요는 늘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콘텐츠와 인프라는 제한적이었던 상황에서 출발했다.

이인섭 작전여자고등학교 진로부장은 기존 진로교육의 한계로 ‘현장성’을 꼽았다. 그는 “전직자나 프리랜서 강사의 강의도 의미는 있지만, 직업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하기에는 현직자를 만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며 “학교가 그런 인적 자원을 개별적으로 섭외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이후 진로 수업이 교내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진학 정보 위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사람책은 학생들이 자신의 고민과 현실적인 한계를 점검하고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 비대면이 만든 접근성, 교육 격차를 낮추다

코로나19 시기 대면 진로체험이 어려워지면서 진로사람책은 비대면 방식을 택했다. 이는 위기의 대안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참여의 범위를 넓혔다. 온라인 기반 운영으로 지역·이동·일정의 제약이 줄었고, 도서·산간 지역 등 기존 대면 중심 진로교육에서 접근이 어려웠던 학교에도 현업 멘토와 만날 기회가 열렸다. 봉사자 입장에서도 시간과 장소의 부담이 줄어 참여 문턱이 낮아졌다.

‘CJ 진로사람책’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비대면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자원봉사문화

이 같은 변화는 학교 현장의 수요와도 맞물렸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이 단계적으로 적용되면서 진로·진학 탐색 활동을 정규 수업과 연계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진로사람책은 학교 ‘진로’ 교과와의 연계를 확대해 지난해까지 140여 개 학교와 함께했다.

윤수정 한국자원봉사문화 팀장은 “선발 과정에서 17개 시도의 학교를 고르게 고려했고, 도서·산간 지역학교와 다문화교육 정책학교를 우대했다”며 “온라인을 활용해 교육 격차를 줄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2021년부터 현업 멘토로 참여한 이한솔 CJ올리브네트웍스 인공지능(AI) 개발자는 “온라인으로 학생들이 현직자를 만날 기회가 열리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저 역시 진입 초기 현업 멘토를 만나기 어려웠고, 멘토링을 통해 큰 도움이 됐던 경험이 있어 참여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11일 CJ인재원에서 열린 ‘CJ 진로사람책’ 오프라인 진로 토크쇼 현장의 모습. /한국자원봉사문화

비대면 운영으로 진로교육의 접근성을 넓혀온 진로사람책은 코로나 이후 늘어난 대면 진로체험 수요에 맞춰 운영 방식을 확장하고 있다. 온라인 기반 운영을 유지하면서도, 기업 연수원 방문이나 진로 토크쇼 등 오프라인 프로그램을 병행해 현장성을 보완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11월, CJ인재원에서 개최한 ‘CJ그룹 경영리더 청소년 진로멘토링&김경일 교수 진로토크쇼’에는 청소년 200여 명이 참여했다.

◇ 선택과 장치가 만든 ‘몰입’의 구조

진로사람책은 현직자를 멘토로, 학생을 멘티로 매칭해 소회의실 중심의 소그룹 멘토링을 운영한다. 경영기획·전략, 인사, 마케팅, IT 개발, 영업, 상품 개발, 물류·유통 등 다양한 직군이 멘토로 참여하며, 학생들은 사전에 공개된 명단을 보고 희망 직무를 1~3순위로 선택한다. 학생에게 선택권을 부여해 참여의 밀도를 높이고, 관심 분야를 입체적으로 탐색하도록 설계한 구조다.

윤영미 한국자원봉사문화 사무총장은 “부족한 진로교육 인프라를 기업 임직원의 자원봉사로 보완한다”며 “특히 현업 직원뿐 아니라 경영리더까지 참여하는 방식은 기업 자원봉사의 지속성을 높이고, 진로교육을 일회성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게 하는 기반이 된다”고 말했다.

멘토링 이후 학생들의 진로 인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2024년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수현(18)양은 “관심 있는 분야를 직접 선택해 깊이 들을 수 있었고, 현업 직장인을 처음 만나며 진로 목표가 또렷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재무·회계와 마케팅 멘토링을 차례로 들은 뒤 경영학과 진학을 결정했다.

프로그램에 네 차례 참여한 조민하(18)양도 “막연했던 진로에 이정표가 생긴 느낌”이라며 “관리, 마케팅, 영업, 생산·물류 등 세분화된 직무를 차례로 들으며 직무를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후 조 양은 교과 프로젝트로 CJ그룹의 마케팅 사례를 분석한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CJ 진로사람책’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이 사전 질문을 적고 있는 모습. /한국자원봉사문화

온라인 기반 프로그램의 한계로 지적되는 집중도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대학생 교육봉사단’이 중간다리 역할을 맡는다. 교육봉사단은 조별로 학생을 관리하며 진행과 태도 관리를 담당하고, 당일 멘토링의 흐름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적극적으로 참여한 학생을 우수학생으로 선발하며 참여 동기도 높였다.

류경만 CJ나눔재단 사무국장은 “도서·산간 지역 청소년들은 진로에 대한 정보 이전에, 스스로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는 어른을 만날 기회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도 아동·청소년을 위한 ‘문화꿈지기’로서, 청소년들이 꿈을 구체화할 수 있는 만남의 접점을 계속 만들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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