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상장사 이사회, 제도 구축은 70%…실질 운영 효과는 30%
신현한 연세대 교수 “전략 토론·CEO 평가·ESG 감독 기능 강화해야”
“기업가치를 높이고 싶다면 ‘작동하는 이사회’를 먼저 세워야 합니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 4일 강남 바른빌딩에서 열린 ‘제1회 법무법인 바른 경영 포럼’에서 한국 기업 거버넌스의 핵심 문제로 ‘형식적 이사회’를 지목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사회의 실질적 운영 여부가 곧 투자자가 느끼는 위험 수준을 결정하고, 이는 결국 기업가치 산정에 직접 반영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주주의 요구수익률이 채권자보다 높은 이유는 위험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파산 시 회수 우선권이 없는 주주는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한다. 이 ‘높은 요구수익률’은 기업의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환산할 때 할인율을 크게 만들어, 동일한 실적을 내더라도 기업가치는 더 낮게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공시의 투명성은 이런 위험 인식을 완화하는 1차 장치이지만, 투자자의 불안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특히 이사회의 실질적 기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거수기 이사회 여전…실효성은 30%에 불과”
그러나 국내 이사회는 여전히 ‘거수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경제개혁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상장사 사외이사의 반대표 비율은 0.2% 수준. 제도 구축 수준은 70%에 이르지만 실제 작동 효과는 30%에 불과했다. 관료·법조계 출신 위주 구성이 산업 전문성과 전략 감각을 떨어뜨린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전략 논의보다 보고 중심 회의가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사회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결합되면 전략이 강해진다”고 했다. 산업·재무·인사 등 다양한 전문성을 갖춘 이사회는 리스크를 조기에 감지하고, 견제와 균형을 통해 의사결정의 오류를 줄일 수 있다. 또한 단기 실적에 매몰되지 않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외 사례로 그는 월트디즈니를 언급했다. 디즈니 이사회는 2022년 실적 악화와 사업 전략 실패를 이유로 당시 CEO 밥 차펙(Bob Chapek)을 해임하고 전임 CEO 밥 아이거(Bob Iger)를 복귀시켰다. 신 교수는 “이사회가 기업가치 훼손 요인을 조기에 판단해 리더십 전환으로 연결한 전형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 “CEO 평가·ESG 책임 등 역할해야”
신 교수는 한국 기업 이사회가 전환해야 할 방향으로 네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이사회는 ‘보고받는 회의’에서 ‘묻고 토론하는 전략 회의’로 바뀌어야 한다. 의제당 발표 시간은 줄이고 토론 시간은 두 배로 늘리며, 전체 안건의 절반 이상은 장기 전략 안건으로 배정해야 한다고 했다. 사외이사에게는 사전 브리핑과 충분한 배경자료를 제공해 토론의 밀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 CEO 평가·보상은 사외이사 중심 보상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재무성과뿐 아니라 ESG 성과도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기별 성과 점검과 장기 인센티브를 병행해 전략의 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셋째, ESG는 ‘부서 업무’가 아니라 이사회의 감독 책임으로 격상돼야 한다. 이사회 차원에서 ESG 전략을 직접 수립하고 감독하며, 외부 이해관계자를 참여시켜 전문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목표 달성도를 계량화해 공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넷째, 위기 대응 속도는 결국 경영진-이사회 간 신뢰의 축적에서 나온다며 “실패를 공유할 수 있는 문화가 회복력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실행 로드맵까지 제시했다. ▲3개월 내 분기 전략회의 도입 ▲6개월 내 독립 이사회사무국 설치 ▲1년 내 산업·ESG·국제 전문가 중심의 이사회 재편이다. 신 교수는 “이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기업가치는 결국 제자리”라며 “지금 바꾸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고 말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