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용준 글로벌케어 회장 “네팔 지진 때였어요. 1992년일 겁니다. 네팔은 산악 지형 국가라 외딴 마을이 많아요. 지역 주민한테 듣기론 의사라는 사람을 일평생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 했어요. 집이 멀어서 며칠을 걸어와 진료받고 또 그 길을 며칠씩 걷는 거예요. 캠프 마지막 날, 짐 정리해서 버스 타고 공항으로 가는데, 전날 진료받았던 한 부자(父子)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더라고. 아직 집에 가는 중인 거야.” 박용준(65) 글로벌케어 회장이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30여 년 전, 첫 해외 의료 지원 당시를 회상하면서다. 그는 “그 장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1997년 국내 첫 국제보건의료 NGO 글로벌케어를 설립한 그는 20년 넘게 전 세계 재난 현장을 누볐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는 대구동산병원에 중환자 전문의 32명을 급파했다. 또 중환자실 설치와 치료에 필요한 의료장비를 지원하고, 대구 지역 취약 계층 600가구를 대상으로 긴급 구호품과 반찬을 비대면으로 배달하기도 했다.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박 회장은 “누군가를 위한 배려로 출발한 NGO 활동이 이제는 책임감으로 무겁게 다가온다”고 했다. 국내 첫 국제의료 NGO 탄생 1994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의대 동기생이었다. 발신지는 르완다. “이곳에 와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이었다. 당시 르완다에서는 ‘인종 대학살’이 벌어졌다. 100일 만에 100만명이 죽고 난민이 300만명 발생했다. 박용준 회장은 의료팀 단장으로 르완다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난민이라는 걸 처음 접했다. 이들을 돕는 국제 구호 NGO와도 처음 만났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난민촌을 형성하고, NGO 100여 개가 달려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