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공공구매 비중 0.7%에 그쳐… 1점으로 당락가르는 가산점 잘 활용해야
지난 1월, 이주 여성과 취약 계층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기업 ‘오요리아시아’가 서울 대방동에 위치한 서울시 여성플라자의 식당·연수실·웨딩 시설 위탁 운영권을 따냈다. 작년까지 대형 유통기업인 홈플러스㈜가 운영했던 시설이다. 올해 역시 홈플러스, 이마트 등 대기업이 입찰에 참여했으나, 사회적기업이 이들을 제치고 운영 기관으로 선정된 것이다. 사업 금액만 연 20억원이 넘는 대형 계약(3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전문가들은 “공공시장에 대해 아는 만큼, 꾸준히 준비하는 만큼 기회가 생긴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지난해 서울시가 사회적경제 기업과 거래한 공공구매 비중은 0.7% 정도에 불과하다. 이에 ‘더나은미래’가 서울시 사례를 중심으로 ‘사회적기업이 모르는 공공조달 시장의 7가지 비밀’을 파헤쳐 봤다. 편집자 주
1. 공공시장으로 들어가는 출입증 ‘직접생산확인증명’을 아시나요?
“‘직접생산확인증명서’ 있는 회사 손들어보세요.”
지난달 27일 서울 은평구의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열린 ‘공공조달 시장수요 설명회’. 이 자리에 참석한 60여명의 사회적기업가 중 발표자의 질문에 반응을 보인 사람은 대여섯 정도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공공조달 시장은 공공이 요구하는 행정 절차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직접생산확인증명처럼 가장 기초적인 단계조차 모르는 사회적기업이 부지기수”라고 말한다. 직접생산확인증명은 중소기업들이 해당 상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생산한다는 걸 확인해주는 절차로, 이 증명 없이는 우리나라의 공공시장 조달 체계인 ‘나라장터'(www.g2b.go.kr)에 등록할 수 없다. 직접생산확인증명서는 ‘공공구매종합정보망'(www.smpp.go.kr)에서 발급받으며 약 2주가 소요된다. 사업자등록증, 생산 정보 서류, 보유 면허증 등 서류 검사와 현장 실사가 병행되니,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
2. ‘무조건 사주세요.’ 수의계약에 대한 오해들
“의류 제조를 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안정적인 수의계약 체결을 위한 전략을 알고 싶습니다.”(S 사회적기업)
“도시 농업 관련해서 우리 지역 구청과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K 협동조합)
지난 6일 문을 연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공공조달 상담 전화’에 접수된 상담 내용이다. ‘수의계약’은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계약 방식이다. 하지만 무조건 가능한 건 아니다. 현재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는 대상의 구분 없이 수의계약을 진행할 수 있는 금액을 2000만원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사회복지 시설, 중증 장애인 시설, 모금 단체 등은 법적으로 2000만원 이상의 수의계약이 가능한 우선 구매 대상이지만,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자활기업 등은 그 대상이 아니다. 공공기관들이 간혹 “사회적경제 기업을 대하면 떼를 쓴다”고 하는데, 바로 이런 경우 때문이다.
3. 사회적경제 시장에만 개방되는 ‘7대 우선품목’이란?
지난해 서울시의 사회적경제 기업 공공구매 성과를 살펴보면, 인쇄 매체(32억1800만원·전체 구매액의 23.71%), 종이 제품(12억2000만원·58.95%), 빵·제과(1억5000만원·33.20%) 분야가 유독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4월 서울시 재무과가 선정한 7대 우선 구매 품목과 관련이 있다. 서울시는 사회적경제 기업의 공공조달 시장 진입을 촉진하기 위해 실내건축, 청소, 행사·공연, 간병, 인쇄, 화장지, 식품 등 7개 생산품을 ‘사회적경제 기업 간 제한경쟁’ 품목으로 지정하고, 최대 1억원까지 제한경쟁을 가능하게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효과성이나 실현 가능성 등을 검토해 우선적으로 7개 제한경쟁 품목을 선정했고, 향후 계속 확대할 예정”이라고 했다.
4. 1점으로 당락 가르는 가산점 제도의 비밀
지난 2012년, 부천에 위치한 청소 전문 H 사회적기업은 지자체의 용역 입찰에 참여했다. 입찰 방식은 ‘적격심사낙찰제’로, 가장 낮은 가격으로 입찰한 업체부터 업무 수행력을 평가해 낙찰자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설립 초기였던 H 기업은 실적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며, 0.1점 차이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H 기업 대표는 “이듬해에 경기도 입찰 계약에서 사회적기업 가산점(1점)이 생겼는데, 이 점수가 있었다면 여유 있게 낙찰됐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조달청(1.7점), 서울시(1.5점), 경기도(1점) 등이 공공계약 입찰에서 사회적기업에 대한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 수도권 중심으로 사회적경제의 시장 진입을 촉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개 공모시장에서 1~2점의 가산점은 당락을 좌우할 정도의 경쟁 우위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인센티브 제도에 대한 숙지·활용 여부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을 공공시장에 안착시키는 열쇠가 될 수 있다.
5. 광활한 기회의 땅, 민간위탁 시장
충북 청주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삶과 환경’. 청주시의 위탁을 받아 지역 내 ‘음식물류 폐기물 수입·운반 사업’을 진행한다. 이 회사는 지역의 근로 빈곤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취약 계층 자립 효과를 높였고, 주민 대상 환경 캠페인을 꾸준히 펼치며, 지역 내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을 크게 줄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공조달 시장의 한 축을 받치고 있는 것, 바로 민간 위탁 시장이다. 지자체에서는 각종 복지 시설, 공원, 문화관광 시설, 시립 병원, 보건 건강증진 시설 등을 민간에 위탁한다. 중랑노인요양원을 운영하는 ‘사회적협동조합 도우누리’ 등이 이에 속한다. 이철종 함께일하는세상 대표(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공공구매영업지원단 단장)는 “민간 위탁 시장은 전국적으로 수십조원 규모”라며 “서울시 25개 자치구 안에도 연간 1500여개가량의 민간 위탁 사업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6. 국공립시설 위탁 부분에 사회적경제 쿼터가 있다고?
“2018년까지 국공립 어린이집을 1000개 더 만든다.”
지난 3월 서울시가 올해의 여성 정책 방향을 제시하며 발표한 내용이다. 서울시는 이 중 10%를 사회적경제 기업에 위탁한다는 방침. 일종의 ‘쿼터’제다. 사회적경제 분야의 한 관계자는 “지난 주말에 사회적경제기본법의 여야 합의안이 마련되며 국회 통과가 확실시되고 있는데, 이 법안에도 공공조달 쿼터제가 명시돼 있다”고 귀띔했다. 노인요양 시설의 경우도 새로 생기는 시설의 10%를 사회적경제 기업에 우선적으로 위탁할 계획이다. 문제는 사회적경제 기업들의 준비다. 실제 서울시 노인요양 시설을 위탁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도우누리의 민동세 이사장은 “최근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할당제’를 요구하는 등 명분으로 일을 맡으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데, 조직 역량을 갖추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7. 2015년 사회적기업에 기회가 될 공공분야의 사업들은?
공공시장은 조금씩 열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공에서 진행되는 사업 중 사회적경제가 가진 공공성과 혁신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고 말한다. 국공립 어린이집이나 노인요양 시설 이외에, 실제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2015년 서울시 사업계획을 살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경제진흥본부 경제정책과의 ‘창조전문인력양성 사업’이 가장 눈에 띈다.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성을 개발해 새로운 산업이나 직업군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인재 양성 사업인데, 그중에서도 창의적 문제 해결 인재를 키우는 ‘커뮤니티 크리에이터 양성 사업'(예산 4억5000만원), 고령화나 다문화같이 변화하는 사회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사회변화 대응형 인재 양성 사업'(예산 8억8000만원), ‘차세대 프론티어 양성 사업'(예산 4억5000만원) 등에 도전해볼 만하다. 소상공인과에서 진행하는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예산 7억5000만원)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시설 중심으로 진행됐던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에 좋은 소프트웨어를 가진 사회적경제 조직이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도 있다”고 했다. 이 밖에도 서울형 도시 텃밭 조성사업, 지역 공원 문화 활성화 사업도 노려볼 만하다. 올해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서울시의 사업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공공조달상담전화(070-4267-5042)에 문의해 볼 수 있다. 지난 6일 개설된 공공조달상담전화는 공공조달을 둘러싼 사회적경제 기업들의 고민과 궁금점을 해결해주는 콜센터를 운영 중이며, 향후 공공조달 계약 실무 교육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