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심기에 동참하라고? 이미 팬들이 알아서 하고 있던 건데. 굿즈나 그만 찍어 내시길.”
“말과 행동이 다른 회사 1위다. 말로는 ‘환경을 보호합시다’, 행동은 ‘랜덤 포토카드 찍어내기’.”
온라인상에서 국내 유명 엔터테인먼트사를 향한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계기는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의 신년 연설이다. 지난 1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SM 서스테이너빌리티 포럼’에서 그는 “(모두가) 지구를 살리고, 우리 터전을 보존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가져야 한다”면서 “전 세계인이 ‘나무심기’에 동참하자”고 촉구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친환경 마케팅을 요구하는 팬들의 목소리를 엔터사 측에서 수년째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팬덤 주도 ‘나무심기 운동’… 엔터사는 숟가락 얹기?
이번 행사를 두고 SM은 “국내 엔터테인먼트사 최초의 서스테이너빌리티 포럼”이라며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고 밝혔다.
그러자 팬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나무심기는 이미 수년 전부터 팬덤 주도로 가수 생일이나 데뷔일 같은 기념일에 자발적으로 해 온 활동인데, 마치 엔터사가 이런 흐름을 주도한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트위터에는 “나무 심으면 뭐해? 그거 SM이 다 베다가 포토카드 만들건데?” “수만쌤의 지속가능성 강의…. 그저 웃음만 나온다. 크리스마스 때 포카만 몇 만장 팔아치운 회사가 할 말인지?” 등 지적이 쏟아졌다.
‘포토카드(포카)’는 가수들의 음반이나 굿즈 세트 등에 무작위로 들어 있는 사진이다. 미공개 사진과 사인회 응모권이 들어 있어 케이팝(K-Pop) 아이돌 그룹의 팬들 사이에서 인기다. 이들은 좋아하는 멤버의 사진과 팬 사인회 응모권을 얻기 위해 같은 앨범을 수십 장씩 구매하는 이른바 ‘앨범깡’을 한다.
엔터사가 앨범을 여러 버전으로 발매하면 판매량은 더 늘어난다. 써클차트(구 가온차트)에 따르면 지난해 실물 앨범 판매량은 8000만장을 돌파했다(상위 400개 기준). 전년 대비 2140만장이 늘어난 수치다.
문제는 포카 이외의 CD, 사진첩 등 나머지 구성품은 버려진다는 점이다. 앨범 발매 이후에는 굿즈인 ‘MD세트’가 출시된다. MD세트에도 포카가 포함된다. 포카는 엔터사가 앨범과 굿즈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활용하는 일종의 ‘미끼 상품’인 셈이다. 지난 13일에도 NCT 드림 등 SM 소속 가수들의 굿즈가 SM 온라인스토어에 대량으로 공개됐다. 팬들은 “1월 1일에 환경 보호 하자더니, 작심 13일이냐”라며 비판했다.
“주요 소비자인 팬들과 소통 창구 마련해야”
엔터사들이 세계적인 탄소중립 흐름에 아예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친환경 종이로 앨범을 제작하고 ‘플랫폼 앨범’을 발매하는 등 시도를 하고 있다. 플랫폼 앨범이란 포토카드와 팬사인회 응모권은 지급하되 음원은 디지털 파일로 제공하는 형식이다. 나름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다만 플랫폼 앨범도 특정 기간에만 판매하거나, 일부 디지털 싱글에만 적용하는 등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다.
케이팝 팬들은 엔터사에 이 같은 시스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엔터사와 주요 소비자인 팬들이 함께 환경 파괴적인 시장 구조를 바로잡을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2021년에는 기후위기에 대한 엔터사들의 변화를 요구하기 위해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이 ‘케이팝포플래닛’을 결성했다. 지난해 4월 이들은 팬들이 모은 실물 앨범 약 8000장을 트럭에 싣고 SM, JYP, 하이브 등 주요 엔터사로 직접 배달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사옥 앞에 팬이 많아 전달할 수 없던 상황이었던 YG에는 착불 택배로 전달했다. JYP, 하이브, YG는 공식 답변 없이 앨범을 받았다.
다만 SM은 전달을 거부했다. 서울 성수동의 SM 사옥 1층에 방문한 케이팝포플래닛 활동가들을 건물 밖으로 내쫓겼다. 활동가들이 착불 택배로 앨범을 다시 보내자, SM 측에서는 “받을 수 없으니 가져가라”고 연락했다. 활동가들도 “받을 때까지 보내겠다”며 강경하게 나가자 실랑이 후 택배를 받아들였다.
이다연 케이팝포플래닛 활동가는 “팬들은 엔터사의 주요 소비자인데, 회사 경영 방침에 불만이 있어도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없다”며 “환경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진정성이 있다면 엔터사들도 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