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연방법원에 기후소송 한 건이 접수됐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푸에르토리코(미국 자치령) 내 16개 지방자치단체가 엑손모빌·쉘·셰브론 등 거대 석유화학 기업 12곳을 상대로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20일(현지 시각) 가디언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 지자체 16곳과 변호인단은 ‘리코법(RICO ACT)’을 적용해 피고인 석유화학 기업들의 혐의를 재판해달라는 소송장을 제출했다. 리코법은 1970년 미국이 마피아·조폭을 소탕하기 위해 도입한 연방법으로 불법 도박, 뇌물수수, 마약 밀매, 부당이익 등에 적용된다. 법안에는 범죄 집단이나 기업이 적법성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 국가가 이익을 몰수할 수 있도록 규정한 조항과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이 담겨 있다. 기후소송에 리코법 적용을 시도하는 건 처음이다.
푸에르토리코 지자체가 이번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기후재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지자체는 “석유화학 기업들은 판매율과 수익을 높이기 위해 기후위기에 미치는 악영향을 숨겨왔다”면서 “12개 석유화학 기업은 교육·보건·관광 수입을 포함해 허리케인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2017년 허리케인 ‘어마’와 ‘마리아’로 인해 푸에르토리코는 940억 달러(약 119조8000억원)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파손된 가옥 3000여채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붕에 파란색 방수포만 얹혀진 채 복구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소송에서는 화석연료 기업들의 기업활동과 제품 판매로 인한 푸에르토리코의 기후재난 피해가 핵심 쟁점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지자체 측 변호를 맡은 멜리사 심스 선임변호사는 “푸에르토리코는 허리케인, 쓰나미, 폭염 등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에 가장 취약한 국가”라면서 “이상기후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40.01%가량은 화석연료 기업들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매해 기후위험지수를 발표하는 독일의 기후연구기관 ‘저먼워치’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는 아이티·미얀마와 함께 지난 20년간 기후재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국가로 선정됐다. 올해 9월에는 허리케인 ‘피오나’가 카리브해를 강타하면서 푸에르토리코 섬 전체가 정전되기도 했다.
앞으로 기업들은 리코법을 바탕으로 사기성 허위진술, 상품 제조·판매에 따른 부당이익과 기후변화 책임 등의 혐의를 재판받을 예정이다.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