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선하게
시각장애인의 눈이 돼준 베테랑 화면해설작가 5명이 쓴 고군분투기. 화면해설작가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영화나 드라마 화면 속 시간과 공간, 등장인물의 표정과 몸짓, 대사 없이 처리되는 여러 정보를 해설하는 원고를 쓴다. 작가의 글은 성우 목소리에 실려 시각장애인들에 전달된다. 시각 정보를 소리의 언어로 바꾸는 작업은 전문성과 예술성을 요한다. 대개 등장인물의 대사와 대사 사이, 혹은 내레이션과 내레이션 사이 10여 초의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압축해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가장 정확한 표현을 찾기 위해 조사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세상을 글로 그려내는 화면해설작가들의 직업 수기인 이 책은 작가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장르·소재에 따라 어떤 문법을 사용하는지 등을 알려준다. 영상 속의 장면을 한 편의 시(詩)처럼 전달하기 위해 분투하는 화면해설작가들의 작업실 너머 얘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권한다.
권성아·김은주 외 3명 지음, 사이드웨이, 1만6000원, 268쪽
타오르는 질문들
마거릿 애트우드의 에세이 선집. 독일도서전 평화상, 미국PEN협회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애트우드는 ‘현존하는 가장 치열한 작가’라 불린다. 이 책에는 환경, 인권, 문학, 페미니즘 등 애트우드가 평생 관심을 가져온 다양한 주제와 관련된 에세이 62편이 수록돼 있다. 애트우드는 “21세기에 도래한 위기는 이전 시대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라며 방대하고 세세한 역사적 지식, 다채롭고 기발한 비유가 담긴 이야기로 인류가 당면한 전 지구적 문제들에 답한다. 애트우드 특유의 유머는 자칫 무겁고 딱딱할 수 있는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미있게 풀어낸다. 매년 40편의 에세이를 써온 애트우드가 세계에 던진 타오르는 질문과 그 대답을 만나보자.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재경 옮김, 위즈덤하우스, 3만2000원, 712쪽
나는
“나는 1208입니다. 이름 없이 번호로 불려도 괜찮아요. 나는 실험견 비글이니까요.” 실험동물의 하루는 단순하다. 좁은 철장에서 눈을 뜨면 케이지에 갇혀 실험실로 옮겨진다. 주사를 맞고, 알 수 없는 제품을 먹거나 몸에 바르기도 한다. 실험이 끝나면 다시 좁은 철장으로 옮겨져 하루를 마무리한다. 지난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식품의약안전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동물실험에 동원된 포유동물만 1300만 마리에 달했다. 비글 같은 낙천적인 성격의 견종이 주로 동물 실험의 대상이 된다. 이 책의 저자인 11살 이한비 학생은 실험실 속 숨겨진 희생에 무감한 현실을 실험견 ‘비글’의 입을 빌려 담담히 그려냈다.
이한비 지음, 반달, 1만5000원, 40쪽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