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자동차산업 노동자 10명 중 8명은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공약에 공감한다는 조사 결과나 나왔다. 다만 산업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피해가 노동자 등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고용과 노동조건을 유지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했다.
그린피스와 전국금속노조는 14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새 정부의 자동차산업 정의로운 전환 어떻게 추진해야 하나’ 토론회를 열고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토론회는 강은미(정의당), 김성환(더불어민주당), 류호정(정의당), 박대수(국민의힘), 이수진(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동 주최했다.
그린피스는 금속노조와 공동 기자회견문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자동차산업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임을 공감한다”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정책 설계 과정에서부터 이해당사자들이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어떤 거버넌스를 통해, 어떤 원칙을 가지고, 어떤 형태와 속도로, 비용은 누가 얼마만큼 부담하면서 자동차 산업의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할지에 대해 구체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 줄어도 자동차 산업 변화해야
노동문제연구소 ‘해방’의 오민규 연구실장은 ‘한국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기후위기 및 정의로운 전환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지난해 9월 6일부터 10월 14일 온라인으로 진행했으며 현대차·기아·한국지엠 노동자 약 11만5000명이 참여했다.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은 기후위기를 매우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94.3%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심각하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매우 심각하다’는 응답이 26~35세에서는 40.2%, 56세 이상은 69%였다. 오 연구실장은 “정년을 5년 남겨둔 집단에서는 심각성 인지도가 낮을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한 계기는 최근 급증한 이상 기후(53.2%)를 꼽은 경우가 가장 많았다. 연령층이 높을수록 이상 기후라는 응답 비율이 높아졌다. 오 연구실장은 “나이가 많은 사람은 어린 시절과 현재를 비교하면서 기후가 변화하는 것을 몸으로 직접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정책에는 82.1%가 공감했다. 직종별로는 영업직(90%)이 가장 많이 공감했으며, 연구직(76.6%)은 가장 낮은 공감대를 보였다. 5개 부품사 직원 109명을 대상으로도 추가 조사를 시행한 결과, 완성차 기업이나 부품사 소속과 무관하게 응답 분포는 비슷하게 나타났다.
응답자의 89.3%는 미래차 산업 전환으로 고용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응답자의 근속기간이 길수록 줄어들 것이라는 비율이 높았다. 오 실장은 “대다수가 고용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함에도 산업 전환을 이뤄야 한다고 답한 것은 굉장히 놀라운 결과였다”고 말했다.
‘정의로운 전환’, 정부 역할이 중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하는 주체로는 ‘중앙정부(28.8%)’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다음은 노동자와 노동조합(27.6%), 회사와 경영진(22.2%) 순이었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회사보다 낮았다. 정부의 미래차 산업 전환 정책에 대해 ‘매우 잘 대응하고 있다’는 답변은 3.9%였다. 회사의 경영전략에 대해 ‘매우 잘하고 있다’는 답변은 5.9%였다. 산업전환·기후위기와 관련해 정부가 회사와는 대화도 자주 하고 회사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지만, 노동조합과는 대화를 충실하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미래차 산업 전환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으로는 ‘정부의 미래차 산업 인프라 구축과 재정지원(33.1%)’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다음은 ‘노동자의 역량 강화와 고용 안정성 강화’(24.5%), ‘기업의 미래차 전환 경영 전략 및 기획(17.9%) 순이었다. 보고서는 “산업전환이 고용 불안을 초래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전환 속도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다만 “전환 과정에서 고용과 노동조건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한 긍정으로 볼 수 있다”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기업보다는 주로 중앙정부와 노동조합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고 했다.
오 연구실장은 “중앙정부에 대한 정책 신뢰도가 매우 낮은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주체로 중앙정부를 선택한 비율이 높다는 점은 조합원들의 양가적·복합적인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합원들은 기후위기 단체협약, 승계관련 제도화, 노동시간 단축, 직무전환 교육 등 생각보다 다양한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교육과 토론이 필요하다” 제언했다.
토론회 영상은 그린피스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