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스마트 복지 국가로 가는 길… “제도 신설보다 리모델링 해야”

[인터뷰]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

지난 20일  만난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은 "매년 투입되는 막대한 복지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정부 차원의 복지 제도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일 만난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은 “매년 투입되는 막대한 복지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정부 차원의 복지 제도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우리나라 복지 제도는 선진국 구색을 모두 갖췄습니다. 이제는 정부가 한번 나서서 복지 서비스 효율성을 높이는 정리 작업을 할 단계에 왔습니다.”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서상목(74)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은 “중앙정부에서 주도하는 복지 서비스만 해도 수백개가 넘는데, 지방정부 차원 서비스도 수백 개라 너무 방만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이라며 “이런 식으로 가면 돈은 돈대로 쓰고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복지 체감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상목 회장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세계은행(WB) 소득분배과 경제조사원, 한국개발연구원(KDI) 사회개발부문 부원장을 지내면서 빈곤정책과 사회보장 제도를 다룬 복지 전문가다. 1988년 정계에 입문해 13, 14, 15대 국회의원, 김영삼 정부 때인 1993~1995년에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았다. 지난해에는 유엔 사회복지 부문 자문기구인 국제사회복지협의회(ICSW)의 첫 한국인 회장으로 선출됐다.

“사회복지협의회는 민간에서 일어나는 복지 활동을 조정하고 관과 민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도록 사회복지사업법에 명시돼 있어요. 그런데 현장에서는 그 역할을 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구조입니다. 복지기관이 부처별·지역별로 각각 분리돼 있고 복지 서비스의 우선순위도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어요. 예산을 집중적으로 쓰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서 회장은 사례로 노인복지를 들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고 하죠. 그런데 제도가 없나요? 4대 보험에 장기요양보험, 국민기초생활 보장법도 그간 많이 진전됐어요. 전국에 복지시설도 많죠. 그런데 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냥 구색은 갖추고 ‘펀칭 파워’란 게 없기 때문 아닐까요.”

“현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전국의 종합복지관, 사회보장협의체, 복지재단 등이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복지 예산으로 매년 엄청난 돈을 투입하지만 기관끼리 연계는 안 되니까 효율성이 떨어지죠.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문제 제기도 안 합니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으려고 새로운 조직, 새로운 제도를 만든다고 해요. 기존 제도를 정비한다고 하면 주목을 못 받으니까요.”

그는 복지 사각지대의 원인을 제도 간 연결성 부족으로 지목했다. 제도는 많은데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서 사각지대와 중복지원 문제가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서 회장은 “발 빠른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복지 서비스를 누리고, 정말 상황이 어렵고 고립된 사람들은 굶어 죽기까지 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서상목 회장은 "전국에 설치된 수 많은 복지 기관끼리 연계만 제대로 이뤄져도 복지 사각지대와 중복지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상목 회장은 “전국에 설치된 수 많은 복지 기관끼리 연계만 제대로 이뤄져도 복지 사각지대와 중복지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모범 사례로는 일본을 들었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복지협의회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자원봉사센터 등 별도의 조직을 갖추고 있지만 운영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게 서 회장의 설명이다.

“일본은 사회복지협의회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사실상 같은 조직으로 협조가 잘 이뤄집니다. 사회복지협의회장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을 겸직하거든요. 전국 시군구 사회복지협의회장도 시군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을 맡고 있지요. 복지 현장과 맞닿아 있는 자원봉사센터도 일본은 사회복지협의회가 관리해요. 우리나라는 완전히 분리돼 있어요. 지역별로 사회보장협의체가 구성돼 있고, 지방자치단체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아요. 광역단체에서는 별도의 복지재단을 만들어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요. 자원봉사센터는 행정안전부와 기초자치단체가 합니다. 사회복지협의회가 있고 사회복지협의체도 있다 보니 주민들은 그 둘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하게 되지요.”

최근 서상목 회장은 글로벌 차원의 복지제도, 특히 분배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한국사회복지협의회에서는 ‘국제사회서비스프로젝트(International Project on Social Service) SDGs’ 포럼을 네 차례 열었다. 코로나 시대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다. 서 회장은 “지난 2월부터 ‘디지털 격차가 사회 격차를 더 확대시킨다’ 주제를 비롯해 사회안전망과 기업의 CSR, 아프리카 지역의 식량 문제, 요즘 쟁점이 되는 기본소득에 대해 다루기도 했다”면서 “특히 기본소득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토론이 이뤄져야 하는데, 대선을 앞두고 한쪽에서 기본소득을 꺼내니까 반대편은 무조건 매도를 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이어 “중요한 건 기본소득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에 집중하는 것”이라며 “결국 분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서상목 회장은 “기본소득으로 한 사람당 월 30만원씩 주려면 약 160조원 정도가 드는데 복지 예산으로는 엄청난 금액”이라며 “이 화두를 꺼낸 이유는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기 위해선 기존 제도를 쭉 한번 봐야 한다는데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복지 제도뿐 아니라 조세 감면 축소 등 다양한 재원 마련 방안을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북유럽은 복지와 기술을 연결했습니다. 덴마크가 먼저 시작했고 핀란드, 스웨덴도 하고 있죠. 영국은 금융과 결합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복지 제도에 경제·경영 개념에 기술까지 집어넣는 ‘스마트 복지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세계 각국 사정에 맞는 복지 제도를 개발하는 ‘글로벌 스마트 복지센터(Global Smart Welfare Center)’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복지제도를 마련하고 전 세계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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