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종수 前 IFK임팩트금융 대표
‘내려놓기.’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비결로 알려졌다지만,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종수(67) 전 IFK임팩트금융 대표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 중 하나다. 그는 회사를 만들고 키워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일을 지난 20년간 반복했다. 2003년 우리 사회에 ‘사회적금융’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던 시절 개인 창업가와 사회적기업에 소액 대출을 해주는 ‘사회연대은행’을 세웠고, 2012년 사회적 금융재단 ‘한국사회투자’, 2017년에는 민관이 함께하는 사회적금융 공급망을 표방하며 ‘IFK임팩트금융’을 설립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그가 또다시 모든 걸 내려놓고 산으로 떠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전 대표는 ‘IFK임팩트금융 대표 자리를 임팩트스퀘어 김민수 이사에게 넘기고 2021년 중 임팩트스퀘어와 합병을 추진한다’는 짧은 발표 후 홀연히 산으로 들어갔다. 연말연시를 꼬박 산에서 보냈다는 그를 지난 22일 서울 성수동에서 만났다. “내려놓으니 너무 편안하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그는 마치 오래 수행한 도인(道人) 같았다.
청년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얼굴빛이 밝으십니다.
“그동안 쉼 없이 달려와서 휴식이 절실했어요. 다만 생각만큼 쉬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많이 와서….”
-‘그간 고생하셨다’는 연락이었나요?
“이미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많아서요. IFK임팩트금융 대표에선 물러났지만, 다른 일을 많이 벌여놨어요(웃음). 임팩트금융 분야 후배들을 키우는 조직인 ‘임팩트금융 연구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청년의뜰’이라는 단체에서 준비 중인 청년 대상의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을 돕고 있어요. ‘세상을품은아이들’의 명성진 목사를 돕는 일, 울산 울주군의 숲 살리기 프로젝트 ‘백년숲’에도 걸쳐 있고요.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뜻을 이제야 이해했습니다(웃음).”
-퇴사(退社)는 했지만, 퇴직(退職)은 아닌 거군요.
“그렇지요. 제가 IFK임팩트금융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도, 업계를 떠나 쉬겠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사회적금융 분야 일은 계속하되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는 거지요.”
-그간 사회적 금융 분야에서 ‘큰 어른’ 역할을 해오셨는데요.
“저는 연식이 너무 오래됐잖아요(웃음). 물론 우리나라에서 임팩트금융 초창기부터 뛰어왔다는 자부심은 있어요. 하지만 다 옛날 얘깁니다. 제가 나이가 많고 경력도 오래돼서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금융회사 사장을 만나 임팩트금융을 만들어달라고 하려는데, 모두 저보다 10년 이상 후배예요. 서로 거북한 거지요. 그런데도 제가 자리 욕심으로 붙잡고 있으면 이 섹터의 고질적인 문제만 더 커지는 겁니다.”
-고질적인 문제요?
“협력이 중요하다는 말은 입 아프도록 하면서 정작 협력은 안 된다는 것이죠. 비영리와 영리, 금융권과 비금융권, 민간과 정부가 힘을 합쳐야 사회 변화도 가능한데, 그걸 잘 알면서도 각개전투를 해요. 그런데 가만 보니 나 같은 사람도 원인 제공자 중 하나였던 겁니다(웃음). 이제 현장을 마음껏 누비는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한단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임팩트스퀘어군요.
“재작년부터 회사를 넘겨줄 청년들을 찾고 있었어요. 여의도에서 난다 긴다 하는 금융 전문가도 만났는데, 결국 이 일을 하려면 진정성과 실력 모두를 갖춰야 하더군요. 그 모든 조건을 갖춘 곳이 임팩트스퀘어였어요. 임팩트 액셀러레이터로 그간 쌓아온 포트폴리오도 훌륭하고, 사회적기업 동아리를 하던 시절부터 10년 이상 봐 온 도현명 대표에 대한 신뢰도 깊었습니다.”
-취지는 동감합니다만, 고생해서 키운 회사를 남에게 넘기는 게 쉽지는 않으셨을 텐데요.
“전혀요. 저 역시 앞으로 무언갈 하고 싶다는 나름의 욕구들이 있었는데, 그 일을 할 생각을 하니 설렙니다. 그게 세품아, 청년의뜰, 백년숲 같은 일들이지요. 이 분야를 떠나는 것도 아니고, ‘낡은 사람’의 힘이 필요한 곳에서 후방 지원 역할을 할 테니까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 새로운 걸 하려면 먼저 손에 쥔 걸 내려놓아야지요. 세상살이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생태계 조성 위한 ‘후방 지원’에 무게
이종수 전 대표는 빈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앞으로 경영에는 전혀 관여 안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대표직을 내려놓은 그는 앞으로 1년간 운영되는 합병 자문위원에 참여하지만, 맡은 소임만 할 것이라며 거듭 강조했다.
IFK임팩트금융은 창립 당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윤만호 전 산업은행금융지주 사장 등과 함께 민관협력 임팩트금융 조성을 목표로 내걸고 야심 차게 문을 열었다. 주요 아젠다는 ‘고령화, 환경, 청년, 지방소멸’. 이 전 대표는 “로컬 활성화 분야에는 나름 기여했다고 생각되지만, 다른 분야에서 목표한 만큼 이루지 못한 점도 있다”고 했다.
-지난 4년의 공과(功過)를 짚어보신다면요.
“청년이나 로컬 분야에선 나름 호평을 받았고, 금융계가 임팩트금융에 관심을 갖게 했다는 점에서는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다만 사회적기업을 키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방소멸과 같은 거대한 문제에 진전을 한번 내보자는 초기 목표에 들어맞는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진 못했습니다. 특히 지역엔 제도적 인프라나 전문가도 너무나 부족해서 4년 안에 해내기엔 어려움이 있었지요.”
-이런 일들이 이뤄지도록 ‘후방 지원’하겠다는 뜻인가요?
“맞습니다. 지역에서 전문가를 양성하고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을 도우려고 합니다. 또 현장 조직의 어려움을 듣고 제도권에 잔소리하는 역할도 할 겁니다.”
-그 잔소리, 미리 해보신다면요.
“정부에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민관협치는 중요한데, 지금처럼 정부 주도적인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현장에서 뛰는 개별 조직이 하기 어려운 임팩트 측정 기준 고도화, 인력 양성, 이를 위한 제도 개선 등을 해야지요. 축구장에 감독, 선수, 구단주가 같이 뛰면 어떻게 되겠어요? 지금이 딱 그 모양입니다. 다 같이 뛰니, 선수들이 너무 힘들어요. 모든 걸 직접 하려고 하지 말아주세요(웃음).”
이종수 전 대표는 “현장을 뛸 사람과 조용히 밀어줄 사람을 잘 구분해야한다”면서 “연식이 오래된 사람이 ‘나를 따르라’하는 문화가 사라져야 업계가 발전한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늙고 낡았다’고 말한 그의 나이는 예순일곱이다.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그에게서 첫 출근을 앞둔 사회 초년생의 신선함이 느껴졌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