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아무튼 로컬] 관계인구: 로컬과 관계 맺는 사람들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마의 3% 벽을 깨자!’

새해 벽두부터 강원도 여기저기에서 열리는 신년 하례 모임, 출향 인사 모임, 지역 경제인 모임에 가면 자주 들리는 말이다. 국토의 6분의 1이나 되는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만 인구는 전체의 3%에도 못 미치고 그로 인해 지역구 국회의원 숫자도 대부분의 경제 지표도 뭘 하든 3%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강원도 입장에선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문제다.

강원도는 이 벽을 깨고자 나름 애를 써왔다. 매년 강원도를 찾는 관광객은 1억명이 넘지만 상주인구는 150여만 명에 불과한 상황이고 그나마도 저출산·고령화로 생산연령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추세를 막아보려고 교통 인프라를 늘리고 온갖 당근을 제시하며 기업 유치 등에 힘을 쏟았다. 10만여 명에 달하는 접경 지역 주둔 군 장병, 매년 수만 명씩 강원도 소재 대학으로 유학 오는 외지 학생들과 귀농·귀촌 관심자 가운데 얼마라도 강원도에 주저앉게 해보려 하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다. 고도성장기에 통하던 해법을 저성장·인구감소기에 적용해보려는 접근법 자체가 낡은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지역 소멸이라는 화두를 우리보다 먼저 고민해 온 일본에서는 수년 전부터 ‘관계인구’라는 징검다리 개념으로 이 문제를 풀어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관계인구’란 여행이나 방문 등을 계기로 그 지역을 좋아하게 된 ‘교류인구’와, 해당 지역으로 이주해 살고있는 ‘정주인구’의 중간쯤에 있는 사람들이다. 지자체가 하는 일을 보면 대개 관광객 유치 같은 교류인구 늘리기 정책과 이주자 유치 정책이 따로 노는데 그럴 게 아니라 관계인구 확대에 집중함으로써 양자의 한계를 넘어서 보자는 취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지역에 좀 관심이 있어 보인다 싶으면 푸짐한 선물 보따리를 덥석 안기며 이주해 오라고 옷소매를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역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거나 직접 일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연결고리들을 치밀하게 배치해서 서서히 빠져들게 만든다는, 참으로 일본인다운 실용주의적 접근법이다.

관계인구 만들기의 효시가 된 프로그램은 2011년 시마네현에서 시작한 ‘시마코토 아카데미’다. 다나카 도루라는 주임급 공무원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도쿄에 사는 시마네 출신자들에게 고향을 알게 해보자는 취지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알아보기’-’체험해보기’-‘계획 세우기’ 등 3단계로 이뤄진 과정을 통해 참가자들은 시마네현 이주를 놓고 스스로 마음을 정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여행자를 위한 관광안내소가 아니라 ‘관계인구를 위한 관계안내소’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도쿄 거주자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도쿄 시내의 공간을 빌려 6개월간 7회의 강좌를 유료(수강료 40만원)로 진행하는데 현재 6기까지 83명이 수료했고 그중 18명이 시마네현으로 이주했다.

소문이 퍼지면서 다른 지자체에서도 관계인구 만들기 사업을 하나둘 도입하고 있다. 일본 총무성은 2016년부터 특별 위원회를 만들어 공식적으로 ‘관계인구’ 확대 정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정책의 배경에는 지역이 소멸 위기를 겪고 있긴 하지만 무작정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해 할 게 아니라 진정으로 그 지역을 잘 이해하고 바꿔갈 수 있는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이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메이지 대학 오다기리 교수의 말처럼 ‘인구는 줄어도 인재는 늘린다’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에서도 최근 몇몇 지자체에서 관계인구 만들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충분한 시간과 체계적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관계인구 만들기는 자칫 또 다른 돈 풀기 사업으로 끝날 수 있다. 일본 관계인구 정책을 연구하고 있는 조희정 더가능연구소 박사는 “단기간에 결과를 도출하기보다는 진행 과정에서 개인의 체험을 소중히 여기고 이주 의무보다 개인의 권리에 기반한 소통을 중시하는 게 핵심”이라며 관계인구 정책의 남발을 경계했다.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