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1일(일)

“‘사회적 약자’ 대신 ‘사회적 소수자’로 불러주세요”

[인터뷰]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김예원 변호사는 비영리 법률사무소 ‘장애인권법센터’를 2017년에 설립한 뒤 지금까지 나홀로 운영하고 있다. /정준호 청년기자

누구나 꽃처럼 존귀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김예원(38) 변호사의 말은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과 맞닿아 있다. 비영리 1인 법률사무소 장애인권법센터를 운영하는 그는 스스로 변호할 능력이 없는 사회적 소수자의 소송을 돕는다. 수임료는 받지 않는다. 소송뿐 아니라 장애인 등 소수자를 위한 정책 연구와 제도 개선 운동도 벌인다. 지난 7일 김예원 변호사를 만나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태어날 때 의료사고를 당해 한쪽 눈을 잃었어요. 하지만 제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니었어요. 학창시절 내내 공부도 잘했고 주변에서 장애인을 볼 기회도 별로 없어서 그때는 차별을 체감하지 못했거든요. 사법고시 합격 후 변호사로 일하면서 알게 됐어요. 우리 사회에 얼마나 거대한 차별이 존재하는지를요.”  

변호가가 돼서 맡은 첫 사건이 2012년 발생한 원주 귀래 사랑의집 사건이었다. 정부 지원금을 타기 위해 스무명이 넘는 지적장애인을 입양한 한 남성이 이들을 폭행하고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하고 시신까지 유기한 사건이다. 이듬해 홍천 실로암 연못의집 사건도 맡았다. 원장이 원생들의 장애인 연금과 기초생활수급비 등을 가로채 유흥비로 사용한 사건이다. “장애인 사건 변호를 맡으면서 슬픔보다는 황당함을 느꼈습니다. 피해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수록 더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장애인, 여성, 노인 등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 침해 문제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습니다.”

김 변호사가 변호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피해 사실을 말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면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동원해 진술을 받아낸다고 했다. “최근에도 뇌병변장애로 인해 언어 표현이 전혀 되지 않는 피해자를 만났어요. 뇌병변장애가 심하면 내가 이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어서 쳐다보려고 해도 고개가 반대로 가요. 근육 강직 때문에요. 보통 대답하기 어려운 사람과는 OX 카드를 두고 O X를 찍으라고 하는데 그것조차 어렵죠. 이번에는 홍채 인식을 이용했어요. 노트북에 홍채 인식 기기를 연결해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진술을 하게 했어요. 장애가 너무 심해서 수사관님이 진술받을 생각을 안하시길래, 그렇게라도 받아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소수자에 대한 착취와 감금, 학대와 같은 직접적인 폭력을 없애는 것만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적 시선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일상생활에서의 차별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평등한 의사소통이라고 했다.

장애인이라고 무조건 배려하는 태도부터 경계해야 합니다.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데도 상대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모든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을 인도할 때 내 팔을 만지는 게 싫다면 참지 말고 말해야 합니다. 팔을 직접 잡지 말고 막대기를 잡아달라는 식으로요. 이러한 요구는 장애인 차별이 아니라 평등한 의사소통이에요. 소수자에 대한 지나친 배려가 원활한 소통을 방해합니다.”

김 변호사는 특정 주류가 이끄는 사회가 아니라 개개인의 목소리가 잘 들리는 사회를 꿈꾼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가 사회적 소수성을 가지고 있어요. 사회적 소수자를 사회적 약자로 표현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부터 차별이라고 생각해요. 개개인이 가진 영향력을 각자의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강태연 청년기자(청세담1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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