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4일
“장애·인종·나이 상관없이 춤추며 ‘다르게, 함께’ 사는 사회 만들고파”
“장애·인종·나이 상관없이 춤추며 ‘다르게, 함께’ 사는 사회 만들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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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 利주민] 문화예술단체 ‘쿨레칸’ 만든 임마누엘 사누

지난 12일 만난 무용수 임마누엘 사누는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춤을 추며 자신을 표현할 능력이 있다”며 “춤을 통해 나와 타인을 이해하면 피부색, 인종,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넘어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춤은 우리가 가난한지 부자인지, 어떤 피부색을 가졌는지 모른다. 단지 지금 당신이 춤을 춘다는 사실만 안다.”

서울 당산동의 한 건물 지하 1층에 마련된 춤 연습실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이 글을 붙인 사람은 지난 2012년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온 무용수 임마누엘 사누(40)다. 그는 지난 2014년 한국인 동료와 함께 문화예술단체 ‘쿨레칸’을 세우고 부르키나파소 전통 춤 공연과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춤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2일 만난 사누는 쿨레칸을 단순한 ‘무용단’이 아닌 ‘공동체’라고 설명했다. “쿨레칸은 누구나 춤을 출 수 있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전달하는 공동체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수업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요.”

떠나고 싶었지만 떠날 수 없었던 나라 한국

그는 지난 2014년 불거진 ‘아프리카 출신 무용수 착취 사건’의 주인공이다. 그가 일하던 포천 아프리카 박물관이 부르키나파소에서 그를 포함한 무용수 12명을 데려와 착취한 사건이다. 박물관은 매월 월급 50만원을 지급하면서 그들을 매일 무대에 서게 했고, 어린이 체험 활동 강사 일까지 시켰다. 쥐가 나올 정도로 열악한 숙소를 제공하고, 항의하면 “아프리카 사람은 하루 1달러면 살지 않느냐”는 식으로 말하면서 여권까지 압수했다. 결국 언론 보도로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제가 해결됐고, 그의 동료 대부분은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한국에 남았다.

“처음엔 저도 한국을 떠나고 싶었어요. 하지만 한국에 나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저를 도와주는 친구도 많았어요. 한국에 ‘만딩고 춤’을 알리는 사람으로 살아보기로 했죠.”

만딩고는 부르키나파소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서아프리카의 민족 이름이다. 사누는 “만딩고의 특징은 다양성과 공동체성”이라고 설명했다. 부르키나파소는 60여 개 민족이 섞여 사는 나라인 데다가, 만딩고족도 마을이나 가문에 따라 다양한 정체성으로 나뉘어 있다. “부르키나파소는 전통이 잘 이어져오는 게 특징인 나라라서, 개별 민족의 춤이 잘 보존돼 있어요. 농사일할 때 추는 춤, 잔치에서 추는 춤, 장례식에서 추는 춤이 다 다르죠. 모두가 함께 추는 부분도 있지만 개인이 개성을 표현하는 솔로 부분도 있어요. 개인의 다양성과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성까지 모두 담아낸 춤이에요.”

만딩고 춤에선 ‘잘 춘다, 못 춘다’는 없다

사누가 추는 춤의 핵심은 ‘얼굴을 맞대고 서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는 “전통 만딩고 춤 중엔 모두가 동그랗게 마주 앉아 서로 바라보면서 춤을 추다가, 한 명씩 나와서 추는 춤이 있다”면서 “이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자의 경제적 지위, 피부색,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자신과 다르게 보이는 낯선 사람과도 서로 존중하면서 소통해나가자는 의미죠.”

현재는 마을 공동체 활동가, 장애인 단체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2014년 하자센터, 2015년 경기 부천에 있는 청소년문화의집에서 2년간 춤 수업을 진행하면서 이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당시 마을 공동체 구축 프로젝트의 하나로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참여하는 춤 수업을 했어요. 춤을 통해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만딩고 춤이 한국 사람들의 공동체 정신을 깨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는 “우리 모두는 크든 작든 신체적·심리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몸을 움직이며 스스로를 표현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장애인들은 춤을 통해 자유를 느끼고 독립적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힘을 얻을 수 있어요. 비장애인 역시 장애인과 만나며 모든 사람이 그저 ‘다른 몸’을 가졌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체 기획한 무용 공연도 선보이고 있다. 지난 2017년에는 ‘인간 존중’의 의미를 담은 공연 ‘데게베’를 만들었다. 아프리카 박물관에서의 경험을 녹여낸 작품이다. 2018년에는 ‘삶의 지혜와 포용’이라는 뜻을 담은 ‘이리바’라는 공연을 내놨다. 사누는 “이 공연의 핵심도 다양성을 품은 공동체로 나아가자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잘사는 나라가 됐고, 좋은 사람이 참 많은데도 서로 소통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자살률도 높고 외로워하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요. ‘다르게,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한국에서도 만들고 싶어요.”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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