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만 18세 투표권’ 앞장선 당사자 활동가 서한울군
오는 4월 15일 치러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만 18세 청소년이 투표권을 행사한다. 약 53만명의 청소년이 정치권에 ‘페이퍼 스톤(Paper stone)’을 던질 자격을 얻었다.
2017년부터 청소년 참정권 운동을 주도한 시민단체연합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촛불청소년연대)는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 지난달 27일 투표 연령 하향이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한 마중물이자 청소년을 배제하는 정치판을 뒤엎는 지렛대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정당들은 유권자가 된 청소년의 표심을 잡기 위해 전략 수립에 나섰고, ‘뉴권자'(만 18세 청소년 유권자를 가리키는 말)의 의견을 정책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정치인도 나왔다. 투표 연령 하향을 두고 여러 가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지난 5일 강원 원주에서 만난 만 18세 청소년 서한울군은 “청소년은 미래세대가 아닌, 지금을 살아가는 시민”이라며 “시민의 목소리를 최대한 모아내는 것이 대의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길이라면 청소년의 정치 참여는 권장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서군은 촛불청소년연대 강원연대 공동대표를 맡아 지난 2년 동안 투표 연령 하향을 위해 앞장섰다. 지역사회에서 풀뿌리 청소년운동을 꾸준히 한 당사자 활동가이기도 하다. 원주 지역 중·고등학교 두발자유화 운동을 주도했고, ‘세월호’ ‘일본군 위안부’ ‘학생 인권’ 등과 관련한 청소년 행사를 기획했다.
“청소년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20대 국회가 문을 닫기 직전에 극적으로 투표 연령 하향이 이뤄졌다.
“지난해 4월 투표 연령 하향을 포함한 선거법 개정안이 신속 처리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을 때만 해도 다 해결된 것 같았다. 그런데 연말까지 국회가 시끄럽더니 선거법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마음은 절박했지만, 솔직히 이번 국회에서도 통과가 안 될 줄 알았다. 꼭 필요한 법들이 무산되는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정말 많은 사람이 고생해서 일궈낸 일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안 한 수준이다. 무임승차한 거나 마찬가지다.”
―무임승차라니.
“오랫동안 치열하게 고민하고 발로 뛴 활동가가 많은데, 정작 관심은 내가 더 많이 받았다. 열심히 활동해서가 아니라 이 일에 참여하는 청소년 당사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부끄러웠지만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글을 쓰고 마이크 앞에 섰다. 학교와 학교 바깥에서 자기주장을 펴는 당사자 활동가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믿음에서다.”
서군은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 다음 날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썼다. ‘만 18세들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수많은 사람의 헌신이 없었다면 어제의 변화는 없었다. 우리 청소년은 각자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변화가 만들어질 때까지 당신은 뭘 했는가’라고 썼다. 서군은 “이제까지의 청소년 운동은 많은 부분 ‘비당사자’ 활동가들의 헌신에 빚졌다”며 “이제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안이 통과됐을 때 주변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대부분은 환영했지만 투표 연령이 낮아졌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친구도 있다(웃음). 청소년은 하나의 균질한 집단이 아니다. 가치관도 다르고 관심사도 제각각이다. 모를 수도 있다. 다만 청소년들이 민감한 이슈에 대해 담론을 공유하거나 토론하는 문화가 워낙 척박하다는 점이 안타깝다. ‘조국 사태’ 때 절실하게 느꼈다.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은 안다. 그래도 10대 청소년으로서 충분히 ‘내 일’로 받아들이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 청소년들 사이에선 대화의 주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쉬웠다.”
―정치·사회 이슈에 관심이 적은 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바로 그 지점 아닌가.
“청소년의 잘못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청소년들이 정치·사회적인 이슈와 멀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입시 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바쁘게 한다. 생활기록부에 세부능력특기사항 한 줄을 추가하려고 온갖 일을 한다. 청소년단체에서 오래 활동했는데, 고 1 때 열심히 참여하던 친구들이 고 2가 되면 절반이 나간다. 고 3이 되면 싹 빠진다. 대입의 사다리 앞에서 사회에 눈 돌릴 겨를이 없는 거다.”
―투표 연령 하향으로 청소년의 정치·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거라고 보나.
“정치·사회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던 친구들도 선거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다행이다. 청소년들이 투표에 참여하는 것으로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고, 실제로 정책이 만들어지는 경험이 쌓이면 관심이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공교육 안에서 민주시민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교과목으로 사회나 윤리를 배운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오는 4·15 총선이 만 18세 청소년 유권자들의 ‘데뷔 무대’인 셈인데.
“투표율이 정말 높게 나와서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다. 반대로 전체 평균에도 못 미치면 속상할 것 같다. 지금은 구상 단계인데, 소셜미디어로 캠페인을 해볼까 한다. 만 18세 청소년들끼리 투표를 ‘힙(Hip)’한 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투표 인증 사진이 ‘스웨그(Swag)’가 되면 좋겠다.”
‘나’를 둘러싼 부조리 바꾸려 시작한 청소년 인권운동
서군은 감투를 여러 개 썼다. 촛불청소년연대 강원연대 공동대표이면서 원주 지역 중·고등학교 두발자유화를 위한 청소년단체 ‘팔레트 프로젝트’의 대표도 겸하고 있다. 또 다른 청소년단체 ‘행동하는양심’을 설립해 ‘세월호 추모 행사’ ‘DMZ 평화 통일 기행’ ‘일본군위안부 바로 알기 운동’ ‘청소년 인권침해 사례 증언회’ 등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내내 학생회에서 활동하면서 교내의 크고 작은 부조리를 바꾸는 데 앞장섰다. 서군은 “이제 대학생이 되지만, 내 정체성은 앞으로도 청소년인권활동가일 것 같다”고 말했다.
―청소년 인권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셔츠 위에 교복 재킷을 걸치지 않고 바로 패딩 점퍼를 입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청소년 인권운동과 패딩 점퍼가 무슨 연관 있나.
“중 3 때 전교회장 선거에 나가면서 내건 공약이다. 당시 학교 규정이 셔츠 위에 재킷을 입지 않으면 패딩 점퍼를 못 입게 했다. 사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매일 교복을 입는 학생들에게는 사소하지 않은 문제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낡은 규정들이 아직도 많은 학교에 남아 있다.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이 규정도 바꾸고, 학생회에 ‘인권부’도 신설했다. 교내 인권침해 사례를 수집하고 문제가 확인되면 교무실로 가는 거다.”
―학교생활이 순탄치 않았을 것 같다.
“선생님들과 갈등을 빚는 일이 많아졌다. ‘교권 침해’라는 분도 계셨고, ‘네 일도 아닌데 왜 나서느냐’는 분도 계셨다. 나를 아끼는 선생님이 따로 불러 ‘서한울이 블랙리스트가 됐으니 조심하는 게 좋겠다’고 할 정도였다.”
―이후로 몸을 좀 사렸나.
“그렇진 않았고(웃음). 정당한 주장이고 요구라고 생각해서 계속 뾰족하게 나갔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생활규정을 바꾸는 운동을 하면서 머리까지 밀었다.”
서군은 고 1 때 원주 지역 중·고등학교 두발자유화 운동을 시작했다. 관내 36개 중·고등학교를 조사한 결과 모두 염색·파마를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고, 머리카락 길이나 모양까지 제한하는 곳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두발 규제의 부당함을 알리는 한편 지역 시민단체들과 힘을 합쳐 토론회를 열고, 학생들의 목소리를 모아 교육청에 탄원했다.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등교하는 ‘시위’까지 벌였는데, 이 일로 학교에서 징계를 받았다. 서군은 “더 큰 징계를 피하고 싶으면 다시 검은색으로 염색하라”는 학교의 통보에 삭발하는 것으로 항의했다.
―삭발이 효과가 있었나.
“학교생활규정을 바꾸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정작 학생의 목소리를 듣는 절차가 없었다. 교사와 학부모가 결정한다. 이게 부당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반항하려고 삭발한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는 4곳의 학교가 두발 규정을 바꿨고, 규정 개선 논의가 이뤄지는 곳도 많은 것으로 안다. 내가 다닌 학교도 지난해 4월 두발 규제를 없앴다.”
―뿌듯했겠다.
“속 좁아 보일 수도 있는데, 억울했다. 2년 가까이 두발자유화 운동을 하면서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친구들한테도 욕을 많이 먹었다. ‘관심받고 싶은 거냐’ ‘나대지 마라’ 같은 말이다. 그렇게 비난했던 친구들이 두발 규제가 없어지니까 바로 염색하고 파마하더라. 그게 너무 속상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게 민주주의다. 변화를 위해 행동한 소수의 노력으로 얻은 과실을 모두가 공유한다. 누군가는 박탈감을 느낄 수 있지만, 사회 전체는 한발 나아간 것이다. 물론 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행동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기특하다고 하면 실례일까?
“기분이 좋지는 않다. 지겹게 들었고, 지금도 듣는 말이다. 청소년의 의견이 언제까지 ‘기특한’ 발상 정도로 치부돼야 하나. 물론 칭찬하려고 하는 말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싫다. 세대나 성별, 장애의 유무, 성적 지향 등을 근거로 함부로 한 개인을 재단하는 것에 반대한다. 감수성을 예민하게 유지하고 싶어서 일부러 더 발끈하는 부분도 있다.”
서군이 어렸을 때 품었던 장래 희망은 기자였다. 약자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말과 글로 권력에 맞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목표에 대한 궤도 수정이 이뤄진 것은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면서다. 이제 서군은 ‘정치인’의 꿈을 꾼다. 정치가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서군은 “혐오와 불신의 대상이었던 정치의 속살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며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망과 설렘을 줄 수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jangpro@chosun.com]–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