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시기획자들 주최 ‘괜찮아마을은 괜찮은 걸까?’ 토론회 현장
“지난 8월 ‘괜찮아마을‘은 행정안전부와 ‘삶기술학교‘로부터 기획안 일부 자료를 부정하게 활용 당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수많은 기획자는 괜찮아마을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고 또 격분했습니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로컬스티치 소공점에서 ‘괜찮아마을은 정말 괜찮은 걸까?’라는 제목으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기획자 50여명은 “비슷한 피해 사례가 또 나오지 않도록 우리가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시·공간·문화 기획자 네트워크 ‘작은도시기획자들’이 주최한 이날 토론회는행정안전부가 지난해 문화기획사 ‘공장공장’과 진행했던 ‘괜찮아마을’ 프로젝트 기획안을 올해 신규 프로젝트에 동의 없이 무단 사용한 사건을 계기로 마련됐다. 작은도시기획자들 이장을 맡은 문승규 블랭크 공동대표는 “그동안 공공과 일하며 수많은 기획자가 괜찮아마을 사건과 비슷한 일을 겪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획자들 사이에서 ‘더 이상 참아서는 안 된다, 기획자 스스로 우리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했다.
“행안부, 기획안 도용 사실 인정하고도 공식 사과 안 해”
괜찮아마을은 일상에 지친 청년들이 6주 동안 휴식을 취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재충전할 수 있도록 공장공장이 전남 목포 원도심에 조성한 커뮤니티다. 공장공장은 지난해 행정안전부의 ‘시민 주도 공간 활성화 프로젝트’ 용역 업체로 선정돼 6억원가량의 사업비를 지원받고 연말까지 괜찮아마을 1·2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문제는 행안부가 올해 신규 사업인 ‘청년들이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최종 선정된 ‘삶기술학교’ 사업 설명 자료에 공장공장의 괜찮아마을 사업 계획표가 들어 있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박명호 공장공장 공동대표는 “지난해 행안부 사업에 지원할 때 제출했던 것과 단어부터 형식까지 너무나 비슷한 표가 (삶기술학교) 사업 설명 자료에 들어 있었다”면서 “심지어 이 표를 지난 8월 3일 받은 (삶기술학교) 설명회 참석 요청 메일의 첨부 문서 안에서 발견했다”고 했다.
공장공장은 행안부와 삶기술학교 운영사인 ‘자이엔트’에 공식 해명과 사과를 요청했지만 양쪽 모두 미온한 반응을 보였다. 박 대표는 “행안부 담당자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원한다고 명확하게 전달했는데도 ‘좀 지켜보자’는 대답만 돌아왔다”며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 사건 정황을 알리는 별도 웹페이지를 개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공장공장·행안부·자이엔트가 대면하는 자리가 마련됐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는 게 공장공장의 설명이다. 박 대표는 “삼자대면 자리에서 행안부와 자이엔트가 도용 사실을 인정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상처를 준 점 또한 사과한다고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그 어떤 사과문이나 해명 글도 발표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여러 분야 기획자들은 공공기관·지자체 등과 일하며 겪었던 어려움과 제도·정책적 한계점을 쏟아냈다. A씨는 “내가 낸 기획을 담당 주무관·팀장·과장이 조금씩 고쳐 전혀 다른 기획으로 만들어놨다”며 “그런데도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렸다”고 분개했다. B씨는 “총 5년짜리 도시재생 사업이었는데 서울시가 사업 용역을 1년 단위로 내면서 중간에 사업비가 끊기는 공백기가 수개월씩 발생했다”며 “공백기에도 현장에 남아 사업을 이어가야 해서 서울시에 최소한의 활동비라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계획에 없던 사항이라 어렵다’며 거절했다”고 했다.
공공으로부터 사업비를 사업 종료 후에 받기 때문에 기획자들은 자금난을 겪기도 한다. C씨는 “선금 지급 요청 절차는 서류 준비에만 수개월이 걸릴 정도로 복잡했고, 신용보증기금 등으로부터 자금을 조달받는 것도 스타트업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며 “결국 개인적으로 빚을 내 어렵게 자금을 마련했다”고 토로했다.
“기획자 권리 지키기 위해 기획자들이 행동에 나설 것”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 작은도시기획자들은 공동성명서를 발표하며 앞으로 ‘기획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성명서에는 ▲기획에 대한 정당한 대가 기준 마련 ▲지식 재산권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 마련 ▲용역·민간위탁 등 기존 민관협력 업무 방식 개선 ▲나이·성별·지위에 따른 차별과 폭언, 희롱 근절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공평한 파트너십 관계와 원활한 소통을 위한 업무 커뮤니케이션 가이드라인 마련 등이 주요 과제로 담겼다. 이날 토론회 진행을 맡은 정수현 앤스페이스 대표는 “작은도시기획자들은 성명서에서 지적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기획자들이 아이디어를 등록·저장해 저작권을 관리할 수 있는 플랫폼 개발, 기획자의 지식 재산권 보호를 위한 계약서 양식 작성 등 기획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들을 진행해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heeh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