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낡은 고시원이 셰어하우스로 변신… 사회주택으로 주거 공공성 실현”

현승헌 선랩건축사무소 대표는 “청년들이 자신의 생활 방식에 맞는 공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사회주택 내부 공간의 규모와 형태를 다양화했다”고 설명했다. 위 사진은 널찍한 공유 거실이 특징인 2호점(왼쪽)과 독립된 생활이 가능한 원룸 형태 4호점(오른쪽) 모습.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신림동은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에요. 근처 학교에 다니거나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몇 년간 머물렀다가 취직을 하거나 시험에 합격해 형편이 좋아지면 금세 떠나죠. 서울 내 다른 지역보다 월세나 물가가 저렴하지만 그만큼 주거와 생활환경이 열악하고 분위기가 삭막해요. 신림동을 ‘견디는 곳’이 아니라 ‘사는 곳’으로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현승헌(38) 대표는 오래되고 낡은 고시원을 리모델링해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재임대하는 사회적기업 ‘선랩건축사무소’를 운영한다. 신림동에 20~39세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주택 ‘쉐어어스’를 지어 임대 중이다. 쉐어어스는 기숙사형, 원룸형, 주방·거실 공유형 등 다양한 형태의 주거 공간과 루프톱, 회의실 등 공유 공간이 포함된 공유주택(셰어하우스)다. 2015년 쉐어어스 1호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지난달 4호를 탄생시켰다. 지난 2일 만난 현승헌 대표는 “건물은 사유 재산이 아니라 공공재”라며 “공공성 실현을 위해 사회주택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건물이 공공재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우리나라에서는 건축과 주거의 공공성 개념이 부족하다. 건물은 사유 재산이고 주거 환경은 개인이 가진 경제력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건축가로서 그런 생각에 반대한다. 건물은 그 지역 경관이나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개인이 소유하고 있어도 공공재로 봐야 한다. 모든 사람은 경제력에 상관없이 쾌적한 주거 환경을 누릴 권리가 있다. 사회주택은 주거 공공성을 실현하려는 시도다.”

―언제, 어떤 계기로 사회주택에 관심을 갖게 됐나?

“건축학도이던 대학생 때 집 수리 봉사 활동을 하며 주거 환경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건축가로 일하면서 동료들과 주거 공공성 연구소인 선랩건축사무소를 세운 뒤 본격적으로 신림동 고시원 리모델링 사업을 준비했다.”

―왜 고시원인가?

“대학 입학 후 사회 초년생 시절까지 신림동 고시원에 살았다. 지금도 20~30대 청년 대부분이 ‘집’이 아니라 원룸이나 고시원과 같은 ‘방’에 살고 있다. 이런 현실을 당장 바꿀 수 없다면 적어도 그 방을 사람이 살 만한 공간으로는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쉐어어스는 현재 서울시 리모델링형 사회주택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회주택이란 정부·지자체가 자금을 지원하고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 주체가 운영하는 임대주택으로, 시세의 약 80% 수준의 비용으로 입주할 수 있다. 현 대표는 “자체 사업으로 1호점을 짓고 난 뒤 소문이 나서 2016년 초 서울시가 먼저 ‘함께 사회주택을 지어보자’며 연락해 왔다”고 했다.

―현재까지 성과를 평가한다면.

“지난달에 4호점이 문을 열면서 입주 가능 세대수가 늘었고, 입주자가 자신에게 맞는 방을 고를 수 있는 선택지도 늘었다는 점을 가장 큰 성과로 본다. 2015년 문을 연 1호점엔 20명이 입주할 수 있었는데, 4호점까지 생겨나면서 총 92명이 살 수 있게 됐다. 공유 공간의 형태도 다양해져서, 이 공간까지 포함하면 167명이 쉐어어스를 이용할 수 있다. 1호점에는 독서실과 회의실 정도만 있었는데, 2호점에는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루프톱도 생겼다. 3호점에는 예술가들을 위한 공방과 작업실을, 4호점에는 공연장을 만들었다.”

―공유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건물을 새로 짓는 게 아니라 리모델링을 하다 보니 개인실 크기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개인 공간을 획기적으로 늘리기는 어렵더라도 다양한 공유 공간을 제공해 입주자가 사용하는 면적을 넓혀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둘째 이유는 사람들을 모으고 싶어서다. 요가 수업, 독서 모임 등 행사를 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각자의 삶이 바빠 외롭게 살아가는 신림동 사람들이 쉐어어스를 통해 연결되고 교류하면 좋겠다.”

―입주자들은 쉐어어스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일단 시세보다 저렴하고 환경이 좋으니까 대체로 만족하는 것 같다. 재계약률이 높은 편이다(웃음). 다만 남과 함께 사는 것을 낯설어하는 청년들은 초반에 적응을 잘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반대로 커뮤니티가 좋아서 입주하는 청년들도 있고.”

―최근 사회주택 운영사 중에 부실기업이 많다는 논란도 있다.

“사회주택은 운영사가 ‘과도한 임대료를 책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 시작하는 프로젝트다. 일반 임대사업자의 경우 임대료를 확 올리고 저렴한 자재를 쓰는 식으로 이윤을 추구하지만, 사회주택 운영사는 임대료를 낮추고 커뮤니티 공간을 잘 갖추는 조건으로 저리 융자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재무제표만 뜯어보면 부채 비율이 엄청 높게 나온다. 부실기업도 있을 수 있지만, 사업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부채 비율만 보고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쉐어어스의 수익성은 어떤가?

“공공성을 중요시하다 보니 수익을 크게 내기는 어렵다. 공유 공간이라던지 시설에 재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공실률이 거의 없어 내실 있게 굴러가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쉐어어스를 더 많이 짓는 게 단기 목표다. 입주자를 늘리는 것뿐 아니라 ‘낮은 임대료로도 좋은 주거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를 보여주고 싶다. 쉐어어스 1호점을 만드는 데 들어간 돈이 총 2억2500만원 정도다. 임대료를 현재 시세 수준으로 높게 받을 이유가 없다. 건물을 임대해 과도한 이윤을 내려는 행태에 균열을 내고 싶다. 장기적으로는 신림동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주택을 만들 계획이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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