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아이들 일상에서 찾은 이상적인 놀이 환경 조건은?

아이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놀이환경은 어떤 모습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15개월에 걸쳐 어린이 100여명의 놀이 행태를 분석한 사람들이 있다. 수년간 어린이의 놀이터를 설계하고 놀이환경을 연구해 온 김연금 소장(조경작업소 울)과 최이명 박사(도시계획학)가 그 주인공이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놀이환경의 기준을 찾아보겠다는 두 연구자의 포부는든든한 후원자를 만나 결실을 맺었다. 벤처 필란트로피(venture philanthropy·벤처 기부) 펀드 ‘C프로그램이 후원자로 나서 힘을 보탠 것. 최근 동네 놀이환경 진단 도구 개발 연구라는 제목의 결과물을 내놓은 두 연구자와 C프로그램의 김정민·신혜미 매니저를 만났다.

‘동네 놀이환경 진단 도구’ 개발 연구의 주역들. 왼쪽부터 신혜미 C프로그램 매니저, 최이명 박사, 김연금 소장, 김정민 매니저. ⓒ더나은미래.

 ◇아이들의일상에서 답을 찾다

최근 놀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자체들이 아이들의 놀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창의어린이놀이터(서울), 기적의놀이터(순천) 등 다양한 형태의 놀이터가 전국적으로 생겨나고 있죠. 하지만 놀이터만 삐까뻔쩍하게 짓는다고 아이들의 놀이환경이 나아질까요?

김연금 소장과 최이명 박사는 아이들이 실제로 어떻게 놀고 있는지, 잘 못 놀고 있다면 이유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아이들에게 이상적인 놀이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그게 이번 연구를 시작하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아이들의 일상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주거 형태(아파트/저층주거지)와 지형(경사지/평지)이 각각 다른 서울의 동네 4곳을 고른 뒤, 바깥 놀이 시간이 가장 많은 초등 1~4학년 아이들에게 GPS를 주고 어떻게 노는지 추적해보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섭외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무작정 동네로 가서 녹색 어머니들을 붙잡고 자녀를 연구에 참여시켜 달라고 부탁했죠. 열에 아홉은 거절하시던데요(웃음).”(최이명 박사)

우여곡절 끝에 처음 목표였던 100명보다 약간 모자란 95명을 끌어모았다. 추적 기간은 일주일.

아이들에게 몇시부터 몇시까지 누구와 무엇을 하며 놀았는지 기록하는놀이 일지를 쓰게 했어요. 부모님께도 자녀의 놀이에 대해 기록하고 사진도 찍어달라고 요청했죠. 인터뷰와 간담회도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어요. 어린이 한명의 놀이 행태를 분석하는 데만 4일 정도 걸렸죠.”(김연금 소장)

GPS 등을 동원해 수집한 아이들의 일상 놀이 동선 데이터 ⓒ김연금, 최이명, C프로그램

 놀세권이 주거지 선택의 기준 되는 날이 오길

분석 결과 흥미로운 사실들이 여럿 발견됐다. 최 박사는 “흔히 요즘 아이들은 학원 다니느라 시간이 없어서 못 논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은 놀 공간만 있으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열심히 논다는 걸 알아냈다고 말했다. 학원 오가는 길에 놀이터가 보이면 잠깐이라도 들러 놀고 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놀이터가 골고루 분포된 A 동네 아이들의 평일 바깥 놀이 시간은 평균 51.5분이었지만, 비교적 놀이터 수가 적은 B 동네 아이들의 놀이 시간은 34.3분에 그쳤다. 최 박사는 동네 차원의 놀이환경 조성이 중요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놀이터의 시설이나 규모 못지않게 입지가 중요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크기와 시설이 비슷한 D동네 놀이터 두 곳을 비교한 결과다. 길에서 잘 보이고 평지에 위치한 놀이터는 항상 아이들로 붐볐지만, 경사지에 있는 놀이터는 늘 한적했다.

각 동네의 놀이환경을 평가해볼 수 있는 동네 놀이환경 진단 도구를 완성한 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다. ▲동네에 여러 유형의 놀이 장소가 골고루 분포돼 있는지 ▲놀이터의 재미와 효용, 위생, 안전은 어떤지 ▲아이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이동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한 세부 항목을 정해 1~5점까지 점수를 매길 수 있게 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신혜미 C프로그램 매니저는 “새로 개발된 놀이환경 진단도구를 지자체, 민간의 도시개발업체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며 “진단도구를 활용해 아이들의 놀이환경이 조성되는 사례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정민 C프로그램 매니저는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시민, 특히 부모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면서 “6월 말 부모들이 직접 진단도구로 동네 놀이환경을 평가하는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아이들 관점으로 동네를 다시 보게 됐다’ ‘동네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등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했다.

이날 모인 네 사람은 이번 연구를 통해 어린이의 놀이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산되길 바란다면서 역세권·몰세권처럼 아이들이 놀기 좋은 동네를 가리키는놀세권이란 말이 주거지 선택의 기준이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진행한 ‘우리 동네 놀세권 진단 워크숍’ ⓒC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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