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디지털미디어가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 옥스퍼드 대학의 마틴스쿨 칼 베네딕트 프레이·마이클 오스본 교수는 향후 20년 안에 텔레마케터, 부동산 공인중계사, 택시기사, 판사 등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고용의 미래’, 2013). 올해 개최된 다보스포럼에서는 “2020년까지 인공지능과 로봇의 영향으로 510만 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는 기술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비영리는 어떤 형태로 생존할 수 있을까. 다음세대재단이 주최하고 카카오가 후원하는 ‘2016 비영리 미디어 콘퍼런스 체인지온(Change On) 광주’가 11월 11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정보원에서 개최됐다. 올해로 9회를 맞은 콘퍼런스의 주제는 ‘디지털 세상, 비영리의 생존법’이다. 지난해 IT 기술의 발전에 대응해 비영리에 ‘중심잡기’를 제안했던 것과 비교하면 한층 더 비장해진 주제다.
◇ ‘비영리, 디지털미디어 왜 못쓸까?’…성취 경험·변화 동력 부족
“실태조사에 참여한 비영리단체의 92%가 ‘디지털미디어는 업무에 꼭 필요하며(51.2%), 도움이 된다(41.27%)’고 응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도 잘 쓰고 있을까요? 종이소식지 같은 전통미디어의 활용(3.58점, 5점 만점)은 기대(3.68점)에 비교적 부응한 반면,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소통미디어의 활용(3.14점)은 기대치(3.6점)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구글드라이브·잔디 같은 협업미디어의 활용(2.45점) 역시 기대(2.96점)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디지털미디어의 필요성을 느끼고 효과에 대한 기대도 있는데, 정작 활용은 잘 못한단 얘기죠. 이 간극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주은수 울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날 콘퍼런스에서 ‘우리나라 비영리단체의 디지털미디어 활용 실태(2016)’를 발표한 주은수 교수는 비영리의 ‘소극적 디지털미디어 활용’ 이유로 ▲성취 경험의 부족과 ▲변화에 대한 동력 부족을 꼽았다.
“15개 비영리단체 29명의 종사자를 대상으로 FGI(표적집단면접)를 실시한 결과, 상당수가 ‘가장 효과적인 매체는 종이 소식지’라고 말했습니다. ‘복지관 홈페이지 접속자가 늘어나도 이용자는 늘어나지 않았다’며 효과성 자체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이 이렇다보니 ‘비영리도 디지털미디어를 써야한다’고 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새로운 자원(기부자)를 발굴할 의지가 적고 기존 자원관리에 더 신경쓰는 조직이라면 전통 미디어가 효과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죠.”
[2016 체인지온] NPO Media 2016: 한국 비영리 조직의 디지털 미디어 이해 및 활용도 조사 발표_주은수 from daumfoundation
디지털미디어를 잘 사용해서 업무 효과성을 높이더라도, 개인에게 주어지는 보상(동력)이 없으면 활용은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과업 하나하나에 드는 시간이 줄어들고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개인 업무의 총량은 늘어난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실태 조사 결과에서도 ‘전체적인 업무량 증가(32.6%)’와 ‘휴일 또는 퇴근 후 업무요청 증가(21.6%)’가 ‘디지털미디어의 부작용’ 1~2위로 선정됐다.
주 교수는 “비영리조직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보상체계를 갖추기 어려운 것은 알지만,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리더십”이라면서 “동력이 없다면 디지털미디어 담당자 개인의 역량이 성장해도, 이것이 조직의 성장으로 이어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미디어 시대에 비영리의 생존 전략은 뭘까요. 가능한 많이 쓰기? 최대한 적게 쓰기? 조직이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선택이 있겠지만, 적어도 비영리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라면 늘 가능성을 열어두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할 겁니다.”
인공지능시대의 비영리 생존전략은 [2016 체인지온 현장을 가다] ② 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