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변이 사는 法] ‘억울한 이주민 몇 명이라도 구제하자’… 7년째 무료 법률 지원

[공변이 사는 法] 고지운 변호사 무료 봉사로 이주민 현실적 문제 직면 공익법인 설립, 본격적으로 지원 나서 이주노동자에 ‘불법체류자’ 낙인 씁쓸 편견과 일부 사업주 횡포로 ‘이중고’ 우리 사회의 이해와 도움 절실하죠 우연한 사고였다. 사무실을 나서는 길에 양쪽 발목에서 종아리까지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병원에서는 아킬레스건염증이라고 했다. 격렬한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담당 의사는 “증상이 두 발 모두에서 나타나는 건 드물다”며 “몸을 혹사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렇게 생애 첫 휴가를 양발에 깁스한 채 침대에서 보냈다. 사연의 주인공은 올해로 7년째 이주노동자에게 무료 소송을 지원하는 고지운(42) 변호사다. 그는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동행’에서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주 고객은 이주노동자, 가정폭력·성폭력 피해 이주여성, 이주아동 등이다. 평일과 휴일 구분 없이 동분서주하는 고 변호사를 지난 20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교육문화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가정폭력·성폭력 피해 이주여성, 이주아동, 이주노동자가 주고객 “원래는 의료법 전문 변호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로스쿨에서도 ‘생명윤리’를 전공했어요. 그런데 변호사가 되고 이주민 봉사단체에 참여하면서 인생 목표가 달라졌죠.” 고지운 변호사는 이주민을 대상으로 무료 법률 상담을 시작한 2012년만 해도 이주민에게 큰 관심 없었다. 이주민들은 언어 문제만 극복하면 될 것이라는 착각이 머리를 지배할 때다. “현장에 나가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었어요. 법제도상으로 체계는 갖추고 있는데, 사각지대가 너무 많았어요. 법을 몰라서, 사람에게 속아서, 공권력에 의해서 자칫 범법자가 될 사람이었어요. 외면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는 우연히 시작한 무료 봉사를 취업도 마다한 채 1년 넘게 이어갔다. 그러다 지난 2014년

[공변이 사는 法] “폐쇄적 심사가 ‘가짜 난민’ 만들어…난민, 소수자 문제로 바라봐야”

[공변이 사는 法] 김연주 변호사 “정부는 난민 신청자를 ‘가짜 난민’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봅니다. 법률 상담으로 만난 한 난민 신청자는 ‘내가 난민 신청을 했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가 벌을 내리는 것 같다’며 고백하기도 했어요. 아시아 최초 난민법 시행국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김연주(33)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난민 신청자를 억압하는 오랜 관행들과 싸워왔다. 그가 난민 분야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건 2013년. 공교롭게도 한국에 난민법이 도입된 해다. 난민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가 마련됐지만, 정작 난민을 쫓아내는 불합리한 관행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올해로 7년째. 난민 분야 하나에만 집중해온 김연주 변호사는 최근 법조공익모임 나우에서 선정하는 ‘2019 청년 공익변호사 대상’을 받기도 했다. 정부가 만들어 낸 ‘가짜 난민’ “난민 관련 제도의 문제점은 난민 신청자들의 증언으로 발견되는 게 많아요. 이를테면 난민 인정 사유가 명백해 보이는 케이스인데 심사조차 받지 못할 때가 있어요. 이유를 알아보면 법무부 내부 지침이 바뀌었다는 답변만 돌아와요. 당사자들에게 명확히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고요. 내부 지침은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소송을 통해 구제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선제 대응도 못 하죠.”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김연주 변호사는 ‘난민 인정 심사의 투명성 문제’를 가장 먼저 꺼냈다. 지난 6월 난민인권센터는 ‘법무부 난민면접 조작사건 피해자 증언대회’를 열고 폐쇄적인 난민 심사 제도의 문제점을 세상에 알렸다. 김 변호사는 “난민 신청서에 당사자가 직접 쓴 내용과 난민심사관이 작성한 면접 조서가 터무니없이 달랐다”며 “고국의 박해를 피해 한국을 찾았다고 말했지만, 면접 조서에는 ‘한국에서 일하기

올해 공익변호 어떤 성과 있었나…법조공익모임 나우, ‘2019 공익변호 활동 보고회’ 개최

국내 공익변호사의 공익소송 실무 경험을 공유하는 활동 보고회가 열렸다. 지난 10일 법조공익모임 나우는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공익변호 활동 보고회’를 개최하고, 올 한 해 사회 각 분야에서 이뤄진 주요 공익 활동을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특히 공익단체 40곳의 올해 성과를 담은 첫 보고서도 발간했다. 나우는 지난 2013년 12월 설립 이후 공익변호사의 역량강화와 연구 지원, 자립 지원, 공익입법 지원 등을 수행하는 전관 출신 변호사 모임이다. 이날 보고회에는 6명의 공익변호사가 연단에 올랐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지난 11월 대법원 파기 환송을 이끈 ‘국정원 여성 직원 정년 차별 소송’에 대해 발표했다. 이 사건은 여성이 주로 근무하는 직군의 정년을 남성보다 짧게 정한 국가정보원 내부규정의 부당함에 대한 소송으로, 최근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윤 변호사는 “국가공무원에 대한 성별에 따른 정년 차별을 인정한 첫 판결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공익사단법인 두루의 최초록 변호사는 과거 지뢰 사고를 당했지만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피해자와 유족을 대리해 위로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한 ‘지뢰 피해자 위로금 등 지급신청 기각결정 취소사건’을 소개했다. 이 밖에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미혼부 가정 아동 출생신고 소송 대리’, 김재왕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시각장애인 놀이기구 탑승거부 사건’, 서유진 나눔과이음 변호사는 ‘학교 밖 청소년 공익변호 활동’, 이진혜 이주민센터친구 변호사는 ‘이주민 공익변호 활동’ 등에 대한 사례를 공유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는 ‘제2회 청년 공익변호사 대상’도 함께 진행됐다. 수상자로

[공변이 사는 法] “해외선 사문화된 모욕죄, 효과없고 부작용 크다”

[공변이 사는 法] 김가연 변호사 최근 잇따른 연예인 사망 사건으로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실명제 도입과 더불어 처벌 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여론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 다만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를 지적하는 주장도 강하다. 지난 5일 만난 김가연(39) 오픈넷 변호사는 “온라인상 표현의 자유는 사회적 이슈에 따라 찬반 여론이 극명히 갈리지만, 비판 의견이나 공익 목적의 고발을 하기 위해서는 ‘익명 표현의 자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픈넷은 ‘정보인권’ 분야를 전문으로 활동하는 시민단체. 김 변호사는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공익소송과 입법 지원 활동을 전담하는 공익변호사다. 표현의자유 억압하는 ‘모욕죄’ 폐지해야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유명 연예인이 사망하면 오해 아닌 오해를 사게 됩니다. 악성 댓글이 이렇게 심각한데 그냥 두자는 거냐고 비난받는 식이죠. 그런데 악플의 심각성과 이를 국가가 나서서 처벌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예요.” 김가연 변호사는 모욕죄 폐지를 꾸준히 주장해왔다. 모욕의 기준이 모호해 악용의 소지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현행 모욕죄는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 걸리는 건데, 모욕이라는 것 자체가 판단하기 어렵다”며 “명예훼손과 달리 욕먹어서 기분 나쁘다고 하면 모욕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모욕죄는 형법 311조에 명시돼 있다. 타인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지난 2017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모욕죄 판결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모욕죄 관련 판례의 약 62%가 유죄로 결론났고 이 가운데 89%는 벌금형에 처해졌다. 김 변호사는 “국가가 사람의 감정을

[공변이 사는 法] 광주에 터 잡은 최초의 공익변호사…”지역 주민 사회권 보장 위해 고군분투”

[공변이 사는 法] 이소아 변호사 “지방에는 공변(공익변호사)이 거의 없어요. 사건은 많고 변호사는 턱없이 부족하니 광주·전남 지역에서 일어나는 공익 사건은 저희가 거의 다 다루고 있습니다.” 이소아(40) 변호사가 최근 새로 단장한 사무실을 정리하며 말했다. 그는 광주에서 공익 활동을 전업으로 삼은 최초의 공익변호사다. 지난 2015년 5월 비영리단체 ‘공익변호사와함께하는동행’(이하 동행)을 설립해 지역에서 발생하는 공익 사건을 무료로 수임해왔다. 그가 맡은 사건은 다양하다. 장애인이동권, 지적장애인 노동 착취,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사건, 아동 학대, 성매매 피해 여성 보호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나 홀로 사무실을 꾸린 지 올해로 5년째. 최근 후원 회원 500명을 넘겼고, 식구도 4명으로 늘었다. 지난달 20일 만난 이소아 변호사는 “공익변호사로 산다는 건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라면 분야를 가리지 않는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전남 지역 첫 공익변호사 ‘깃발’ 이소아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수료 이후 줄곧 서울에서 활동했다.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다시함께상담센터, 민변 등 여러 비영리단체에서 상근으로 일하며 공익변호사로서 근육을 단련했다. 그러다 2013년 별안간 귀향을 택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광주로 내려가 공익변호사 활동을 하겠다는 그를 주변에서는 만류했다. “언젠가 광주로 활동 무대를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지역에서도 법률 조력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지만 공익변호사는 없으니까요. 심지어 법적인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결심이 안 서던 차에 부모님 건강이 나빠져 고향으로 오게 됐죠.” 이 변호사는 광주로 내려와 지역 내 인권 단체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요청하라는 메모를 남겼다. 사무실을

[공변이 사는 法] “소규모 NPO들이 ‘행복한 고민’ 하는 날까지 법률 지원할 것”

[공변이 사는 法] 송시현 변호사 송시현(34)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비영리단체(NPO)에 대한 법률 조력을 전문으로 한다. 법률 분쟁보다는 단체의 설립과 운영 전반을 전문적으로 자문해주는 게 주 업무다. 송 변호사는 법무법인 태평양이 설립한 공익재단법인 동천에 2016년 합류했다. 이후 4년째 공익전업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지난 6일 서울 역삼동에 있는 동천 사무실에서 만난 송 변호사는 “NPO들의 법률 역량을 늘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느라 하루가 짧다”고 말했다. NPO 설립·운영 관련 법, 필수 체크리스트만 200개 넘어 “비영리단체 안에서도 사단법인, 재단법인, 사회복지법인 등에 따라 적용받는 법률이 달라요. 활동가들이 잘 챙기지 못하는 세세한 부분이 대부분이죠. 그래서 단체에서 자가진단할 수 있게 법률 체크리스트를 만들었어요. 꼭 챙겨야 할 부분만 가려낸다고 한 건데도 항목이 200개가 넘더라고요.” 송시현 변호사가 전담하고 있는 ‘동천NPO법센터’에서는 비영리단체에서 법률 관련 이슈를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NPO 운영 셀프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단체 운영에 관련한 법률을 크게 ▲운영 ▲세무 ▲노무 ▲기부금품모집 ▲저작권 ▲개인정보 등 여섯 가지로 분류하고, 단체의 형태에 따라 세부 항목을 나눠 총 201개 항목으로 구성했다. 각 항목별로 위반시 처해지는 벌금이나 과태료 등 제재사항도 함께 정리했다. 송시현 변호사는 요즘 정관 변경에 대한 자문 요청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그는 “일례로 사단법인의 경우 회원이 참석하는 총회를 열어야 하는데, 회원 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면 정회원과 후원회원으로 나누는 작업을 정관 변경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며 “정관 변경은 단체 운영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서울변회, ‘공익전업변호사’ 양성에 나선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제1회 공익전업변호사 양성사업’을 실시한다. 12일 서울변회는 “공익활동 지원의 일환으로 비영리기구를 비롯한 공인단체 소속으로 공익활동을 본업으로 하는 ‘공익전업변호사’를 지원하는 사업을 벌인다”고 밝혔다. 변호사 법정단체에서 공익변호사 양성사업을 실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사업은 공익단체에서 근무할 전담 변호사를 1~2명 선발하고, 이들 공익변호사가 안정적으로 공익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2년간 월 250만원을 지원한다. 서울변회는 “법호사법 제1조에 명시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변호사의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 이번 사업을 마련했다”며 “공익 분야로 진출을 희망하는 변호사들과 재정적 어려움으로 쉽게 변호사를 채용하지 못하는 단체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공변이 사는 法] ‘로힝야 학살 보고서’ 만드는 김기남 변호사…”훗날 국제재판 자료로 쓰이길”

[공변이 사는 法] 김기남 변호사 “로힝야 학살 사건이 벌어진 지 벌써 2년이 됐습니다. 문제 해결은커녕 난민을 향한 또 다른 갈등만 생겼죠. 더 늦기 전에 학살 사건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피해 생존자 320명 정도 만났어요. 1년에 네 번 정도 방글라데시 난민캠프를 오가면서 증언과 자료를 모았죠. 생존자 증언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합니다. 가끔 그분들 말씀이 머릿속을 스칠 때면 굉장히 고통스러워요. 전해 들은 이야기인데 말이에요.” 김기남(42) 변호사는 ‘로힝야 학살 기록사업’의 선봉에 있다. 지난 2017년 미얀마 정부군에 의한 로힝야 학살 사건 이후 9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UN은 사망자만 1000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지난 3년간 국제분쟁 전문 비영리단체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이하 아디) 소속으로 활동하며 피해 생존자 증언과 자료를 모아 마을 단위의 학살 보고서를 만들고 있다. 로힝야 사건에 대해 마을별로 기록사업을 벌이는 건 세계적으로도 처음 이뤄지는 작업이다. 지금까지 8개 마을에 대한 학살 보고서를 완성했고, 올해 20개 마을을 목표로 추가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17년 8월’ 로힝야 비극의 시작…”증거 소멸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 김기남 변호사에 따르면, 2017년 8월말 로힝야 집단학살은 마치 군사작전 펼치듯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미얀마 라카인주 북부의 로힝야 집단 거주마을에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한 건 25일. 시작은 인딘과 쿠텐콱 마을이었다. 군인을 태운 트럭이 마을에 몰려왔고, 무차별 학살이 벌어졌다. 다음 날인 26일에는 돈팩, 27일에는 춧핀에 총알이 쏟아졌다. 사흘 뒤 뚤라똘리에서는 단 하루 만에 약 400명의 주민이 학살됐다. 김

모두를 위한 소송, 세상을 바꾸다…’임팩트소송’의 세계

공익 실현 위해 전략·기획된 ‘임팩트 소송’ 승패 떠나 재판 과정서 문제 해결되기도 긴 싸움 이어갈 원고 드문 게 ‘한계’ 공익 저변 확장…여러 분야와 접목 기대 지난 2016년 2월 시청각장애인 4명이 “장애인도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영화를 볼 수 있게 해달라”며 CJ CGV, 롯데쇼핑, 메가박스를 상대로 차별구제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음성으로 화면 해설을, 청각장애인에게는 자막을 제공하라는 게 이들의 청구 취지였다. 지난한 공방이 이어졌고, 22개월 만인 이듬해 12월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이 내려졌다. 결과는 원고 승소. 법원이 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피고는 1심 판결에 불복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번 사건에서 원고가 최종 승소할 경우 영화관 운영사들은 장애인의 영화관람권을 보장하는 시설과 설비를 갖춰야 한다. ‘모두의 영화관 소송’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소송은 일반적인 민사 소송과는 큰 차이가 있다. 개인 간의 권리관계를 다투기 위한 소송이 아니라, 피해 그룹의 문제를 해결하고 법제도 개선을 이끌어 내기 위한 공익 소송이다. 이처럼 소송을 통해 긍정적인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임팩트 소송(impact litigation)’이라 부른다.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기획된 소송이라는 점에서 ‘공익기획소송’이라고도 한다. “시청각장애인도 개봉일에 영화 보고 싶다” 임팩트 소송은 소외계층의 숙원 사업 해결을 위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재판에서 승소하면 시정명령을 통해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모두의 영화관 소송 역시 장애인 단체에서 지난 10여년간 꾸준히 문제 제기해오던 장애인 영화관람권을 얻어내기 위해 시작된 싸움이다. 소송은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맨

[공변이 사는 法] “장애인 인권 보호, 거창한 법보다 사회 인식 전환이 우선이죠”

[공변이 사는 法] 김예원 변호사 김예원(37) 변호사의 하루는 짧다. 그는 비영리 1인 법률사무소인 ‘장애인권법센터’를 운영하며 부당한 일을 당한 장애인들을 무료로 대리하는 일을 한다. 지난 2~3월에는 혼자서 18건의 장애인 인권침해 소송을 지원했다. 경찰 단계의 사건부터 검찰 불기소에 대한 항고, 행정소송이나 민사소송 등 장애인 인권 문제라면 가리지 않는다. 소송뿐 아니라 제도 개선을 위한 여러 프로젝트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학대 피해 장애인 법률 지원 매뉴얼 작업, 아동·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활동, 장애인체육회 인권 신장을 위한 규정 개정 활동 등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지난 19일 김예원 변호사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장애인 인권, 느린 걸음이지만 조금씩 전진 “장애인 인권 침해 사건의 경우 피해 당사자를 만나 어떤 일을 당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직접 들어보면 대부분 충분히 이길 수 있어요. 발화(發話)가 안 되는 중증 장애라 해도 비언어적 의사소통으로 상황을 추단해낼 수 있거든요. 소송으로 잘 이어지지 않을 뿐이지, 피해자들의 승소 가능성은 무척 큰 사건이 많아요. 그만큼 장애인들이 부당한 일을 많이 당한다는 얘기겠죠.” 지난 2017년 그가 맡았던 항고 사건의 경우도 그랬다. 집시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은 한 장애인이 벌금 대신 사회봉사를 하는 ‘대체형벌’을 신청하자 법원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기각한 사건이다. “기각 사유가 없었어요. 한마디로 ‘장애인이 무슨 사회봉사를 하겠다는 거냐’라는 뜻이었죠. 만약 벌금을 내지 않아 검거되면 유치장 노역을 선고받는데 그건 또 가능하다는 거예요. 명백한 장애인 차별이죠.” 특별한 이유

[공변이 사는 法] “환경 소송과 함께 한 15년…세상이 조금씩 바뀌더라”

[공변이 사는 法] 정남순 변호사 환경 전문 변호사에게 늘 따라붙는 꼬리표가 있다. ‘지는 소송을 하는 사람’. 실제 환경 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환경법률센터의 정남순(49) 변호사는 15년째 지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매번 패소해도 그게 익숙해지지는 않는다”는 그의 목소리는 쾌활했다. 지난 12일 정 변호사가 일하는 환경법률센터를 찾았다. 한적한 골목길에 위치한 사무실 앞 잔디밭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를 배경 삼아 정 변호사와 마주 앉았다. ◇피해 입증 어려운 ‘환경 소송’…”쉬운 사건 없지만 놓을 수도 없다” “입증 책임은 문제를 제기한 원고에게 있습니다. 특히 환경 소송에서는 원고가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하죠. 문제는 환경 영향으로 입은 피해는 증상이 즉각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또 과학적인 연구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에요.” 정남순 변호사가 환경 소송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피고가 자료를 내놓지 않으면 피해를 입증할 방법이 마땅찮은 경우도 많다”면서 “건건이 쉽지 않은 사건이지만 그럼에도 놓아버릴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시멘트 공장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건을 맡고 있다. 원고는 시멘트 공장에만 40년 근무했다. 폐암이 발병하자 산업재해 신청을 했고,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거부했다. 정 변호사는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지난해까지 4년이라는 긴 싸움을 이어갔다. “결국 졌습니다. 그분은 산재 인정을 못 받은 채 사망했고요. 지금은 아버지의 싸움을 유훈처럼 이어받은 유족들을 대리해서 다시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에서는 질병과 원인의 인과관계에서 ‘특이적 질환’과 ‘비특이적 질환’을 구분한다. 특이적 질환은 질병 발생 원인으로 특정 요소를

[진실의방] ‘공변’이 사는 세상

변호사들을 부를 때 ‘김변’ ‘최변’ ‘박변’ 등으로 성씨를 붙여 줄여 부르는 모습을 흔히 봤을 겁니다. 최근 법조계에서는 ‘공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고 하는데요. 공씨 성을 가진 변호사가 아니라 ‘공익 활동 전담 변호사’를 뜻하는 공변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공변들의 활동은 변호사들의 일반적인 프로보노(공익을 위한 무료 봉사) 활동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한국 변호사들의 의무 공익 활동 시간은 연간 20시간. 물론 현장에서는 그조차 제대로 지키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합니다. 반면 공변들은 아동, 장애인, 난민, 이주 노동자, 성 소수자 등 법률 서비스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일에 ‘풀 타임’을 씁니다. 월급은 적고 하는 일은 어마어마하게 많죠. 만나는 사람이 대부분 어려운 사람들이라 오히려 보태주고 오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공변들의 활동은 2004년 국내 최초의 비영리 공익 변호사 단체인 ‘공감(共感)’이 탄생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공감의 변호사들은 모금을 통해 형성된 기금에서 최소한의 월급을 받으며 어려운 사람들을 변론했습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2005년 공감에 합류해 지금까지 활동 중인 황필규 변호사(34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공감에 합격한 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해 달라고 했더니 ‘물론 축하해주겠다. 하지만 나는 위로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아내의 말은 농담이었지만 그만큼 공익 변호사들의 환경이 열악했습니다.” ‘괴짜 기수’로 유명한 사법연수원 41기부터는 공변이 확 늘었습니다. 41기는 연수생 시절이던 2011년 공변들을 지원하기 위한 ‘공익법률기금’을 처음으로 만들었는데요. 이름하여 ‘감성펀드’입니다. 41기 졸업생 1000명이 한 사람당 매월 1만원씩 내면 1000만원이 되고, 그 돈이면 공변 3명의 인건비가 나온다는 계산이었죠. 감성펀드를 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