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난민’ ‘아동학대’…사회문제 다룬 영화제 잇달아 개최

국경없는영화제, 23~25일 서울극장서 개최 분쟁, 난민, 기아, 아동학대 등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참혹한 실상을 알리고 인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영화제가 줄지어 개최된다. 올해 2회째를 맞은 ‘국경없는영화제 2018’은 ‘생명을 살리는 외로운 싸움’이라는 주제로 오는 23일부터 25일까지 서울극장에서 열린다. 국경없는의사회(MSF)는 국제 구호 활동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고통을 증언하고, 세계 곳곳의 참혹한 실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지난해부터 영화제를 열고 있다. 올해는 ▲병원 폭격▲결핵▲이주민▲난민▲파괴되는 문화유산 등을 주제로 총 7편의 다큐멘터리를 선보인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최전선을 지키는 의사들: 난민, 그들의 험난한 겨울’ ‘아프가니스탄: 화염에 휩싸인 병원’ 등은 국제 구호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사실적으로 풀어낸 작품들이다. 영화제 기간에는 각 주제 전문가들과 대화하는 기회도 마련된다. ‘국경없는영화제 2018’의 상영작·예매와 관련된 자세한 정보는 국경없는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4회 아동권리영화제, 24~25일 서울 CGV 홍대서 개최 국제구호개발 비영리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권리영화제’를 이달 24일부터 25일까지 서울 CGV 홍대에서 개최한다. 올해로 4회째인 이번 영화제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찾아서’라는 테마로 기획됐다. 학대, 방임, 사회적 편견 등으로 아동권리를 빼앗긴 사례와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그린 영화들이 상영된다. 영화제 첫날인 24일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 사춘기 고등학생들의 성장 과정을 그린 ‘땐뽀걸즈’, 이혼 후 양육권을 둘러싼 분쟁과 이로 인한 아동학대를 다룬 ‘아직 끝나지 않았다’가 관객들을 맞이한다. 25일에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과 ‘빌리 엘리어트’가 상영된다. 영화 상영 후에는 하지현 정신과 전문의,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김혜리 영화 평론가, 영화 땐뽀걸즈의

앤절리나 졸리 “예멘 난민 돕는 한국 정부에 감사”

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유엔난민기구(UNHCR) 특사 자격으로 방한해 난민 지원에 나서고 있는 한국 정부에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지난 4일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는 “지난 2일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앤절리나 졸리가 박상기 법무부 장관, 배우 정우성씨 등을 만나 국내 머물고 있는 예멘 난민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고 밝혔다. 졸리는 4일 오전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제주도에 도착한 500여 명의 예멘인을 지원하는 한국 정부에 감사하다”면서 “난민들이 고국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철저한 심사제도를 구축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과 실향을 극복한 경험이 있는 한국은 난민 보호에 있어 중요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졸리는 2001~2012년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했고, 이후 특사로 임명됐다. 앞서 3일 졸리는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배우 정우성씨를 비롯한 실무 책임자들과 만나 전 세계 난민 현황과 이들의 처우 등에 관한 입장을 교환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최근 난민 옹호 발언 이후 악성 댓글에 시달린 정우성에게 “동료로써 자랑스럽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에 정우성은 “한국 사회에 ‘반난민 정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들의 목소리가 클 뿐 난민을 옹호하는 상당수는 조용히 지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졸리는 전 세계 난민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내전 종식’을 꼽았다. 그는 “내전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도망칠 수밖에 없다”면서 “난민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도와야 하는 공동의 책무에 대한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난민 식탁서 ‘맛있는 수다’ 편견이 사르르 녹아요

[난민 푸드 페스티벌] “이거 한번 먹어봐요. 카문델레(콩고식 쇠고기 꼬치). 맛있어요.” 지난 22일 서울 홍대 앞 카페, 콩고민주공화국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이 서툰 한국말로 사람들을 불러 세웠다. 그는 자신의 솔 푸드(soul food)를 여러 시민들에게 선보이러 왔다고 소개했다. 셰프 못지않은 요리 실력으로 카문델레를 뚝딱 만들어낸 그는 ‘난민’이다. 난민들이 자신들의 고향 음식을 소개하는 ‘난민 푸드 페스티벌’이 국내에서 처음 개최됐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유엔난민기구는 “지난 2016년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시작된 난민 푸드 페스티벌의 연장선”이라며 “음식을 통해 난민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무너뜨리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5일까지 나흘간 진행된 행사는 사전 신청을 받아 하루 80명씩 제한된 인원을 초대했다. 아직은 대중 앞에 나서기를 어려워하는 난민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이번 행사에는 도르카스(콩고민주공화국), 마싸(수단), 엔젤(코트디부아르), 유스라(이라크), 폴린(케냐) 등 5명의 셰프가 시민들을 맞았다. 도르카스는 콩고식 쇠고기 채소 꼬치 ‘카문델레’를 내놨다. 카문델레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잔치가 열리는 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중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닭꼬치처럼 거리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수단에서 온 마싸는 학창시절 친구와 간식으로 즐겨 먹던 ‘팔라펠’을 준비했다. 아랍 지역 대표 음식인 팔라펠은 다진 병아리콩에 양파, 마늘, 청고추 등을 섞어 동그란 전처럼 빚어낸 뒤 기름에 튀긴 채식 메뉴다. 행사 첫날 여덟 살 아들과 함께 푸드 페스티벌에 참석한 김일회(46)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으면서 친해지듯 난민과도 같이 식사할 기회가 많아진다면 이들에 대한 오해는 쉽게 풀리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먼 타국의 음식이지만 우리나라

[우리 옆집 난민 ②] “고국땅에서 못 이룬 법학 교수 꿈, 한국에서 이루고 싶습니다”

마퓨타 피오피오 프레디(45)는 경계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기자가 악수를 청하자, 잠시 망설이더니 조심스레 손을 잡았다. “그동안 기자들을 여럿 만났는데, 다들 심문하듯 꼬치꼬치 캐물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다니….”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난민이다. 고향땅 콩고민주공화국을 떠나 한국에 온 건 2006년. 콩고 최고 명문인 킨샤사대 법학과 2학년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당시 콩고는 정치적으로 혼란기였어요. 지식인으로서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죠.” 그는 장기 집권 세력에 반대하던 콩고자유운동(MLC)에 가담했다가 쫓기는 신세가 됐다. 법학 교수를 꿈꾸며 착실히 공부하던 모범생이 하루아침에 정치범이 된 것이다. 기약 없이 숨어지내던 그는 결국 고국을 떠나기로 했다. “한국으로 가겠다고 선택한 게 아니었습니다. 주선자가 건네준 비행기표의 목적지가 한국이었을 뿐이죠.” 바다 건너 낯선 땅에 오니,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법학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난민 신청자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그저 하루빨리 난민으로 인정받기를 기도하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당장 먹고사는 것도 문제였다. 어릴 적부터 그냥저냥 연주해온 젬베(아프리카 전통 타악기)가 밥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공연팀을 만들었다. 대학 축제 등을 돌며 젬베 연주를 했다. 난민지원 비영리단체 ‘피난처’는 그에게 큰 힘이 됐다. 그는 “피난처가 없었다면, 버티기가 힘들었을 것”이라며 “난민에게 무엇보다 힘이 되고 필요한 존재가 바로 ‘피난처’ 같은 비영리단체들”이라고 말했다. 12년을 기다린 끝에 그는 지난 2월 13일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난민 인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심정은…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잠시 먼

[우리 옆집 난민 ①] “자유 찾아 한국 온지 3년…태극마크 달고 세계 챔프 되는 게 꿈”

[우리 옆집 난민 ①] 카메룬서 온 ‘난민 복서’ 길태산 855명. 난민법이 마련된 2013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획득한 사람의 숫자다. ‘난민’이라고 불리는 이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고향이 있다. 다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을 뿐이다. 더나은미래는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은 난민들을 만나 보는 ‘우리 옆집 난민’ 시리즈를 연재한다. 다를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보통 사람들, 바로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총 5회 연재하며 1회는 지면에, 나머지는 더나은미래 홈페이지에 싣는다. -편집자 주 한국 프로 복싱 수퍼미들급 챔피언 길태산(31). 본명은 장 두란델 에투빌, 카메룬 출신이다. 그는 지난달 29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복싱매니지먼트코리아 주관 수퍼미들급(76.19㎏ 이하) 한국 타이틀 매치에서 이준용(27) 선수를 6라운드 TKO로 꺾고 챔프 자리에 올랐다. 올해로 한국 생활 4년 차인 길태산 선수를 지난 16일 천안 돌주먹복싱체육관에서 만났다. 서툰 한국어 탓에 인터뷰는 프랑스어로 진행됐다. ◇한국에서 얻은 것은 ‘자유’ 그리고 새로운 ‘가족’ “자유(la liberté)! 난 이제 자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평온합니다.” 길태산 선수가 두 팔을 양옆으로 펼치며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고국인 카메룬에서는 군 소속 복싱 선수로 활동했다. 카메룬은 폴 비야(85)가 36년째 장기 집권하는 독재국가다. “카메룬에서의 생활은 폭력과 가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대회를 준비할 때면 군 당국의 가혹 행위가 이어졌어요. 다쳐도 자비로 치료해야 했고, 월급도 받지 못했습니다. 관리자들이 중간에서 가로챘죠. 반항하면 주먹이 날아왔습니다. 운동과 장사를 병행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죠.”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국내 난민 어린이 차별 많이 받고 우울감 심해…난민아동 181명 대상 실태조사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난민아동 181명 난민부모 118명 대상 ‘국내 난민아동 한국사회 적응 실태조사’ 실시 ‘난민 이유’로 차별 무시당한 경험 다문화아동 보다 많고, 우울불안 증세 또한 일반아동보다 심각   국내 거주 난민 아동이 다문화아동(9.4%,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 2015) 보다 차별이나 무시당한 경험이 두 배(27.4%)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공부의 어려움 또한 다문화아동보다 난민아동이 더 많이 느꼈다(3.40>2.43, 5점 척도). 문화적응 스트레스도 다문화아동(다문화청소년패널조사, 2016)에 비해 난민아동이 훨씬 많이 받고 있었다(2.05>1.40, 4점 척도). 우울불안 증세는 국내 일반아동(아동종합실태조사, 2013)보다도 난민아동이 심각한 상황(1.48>1.25, 3점 척도)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18세 미만 난민아동의 수가 전체 난민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가운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국내 난민아동 한국사회 적응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국내 거주 난민아동의 열악한 상황을 밝혔다.  이번 실태조사는 국내 거주 난민아동 총 1422명(법무부, 2016년 기준) 중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 21개국 181명을 대상으로 진행했으며, 4개월 이상 72개월(6세) 미만 영유아에게는 한국영유아 발달선별검사를, 72개월 이상 18세 미만의 아동은 설문조사를 수행했다. 질적조사를 위해 개별심층면접에는 난민부모 및 아동 10명, 초점집단면접에는 20명이 참여했다. 난민아동 중에서는 중도 입국한 난민아동이 대한민국 출생 난민아동 보다 자아존중감, 한국어 수준, 삶의 만족도가 더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4점 척도로 측정한 중도 입국 여부에 따른 적응 조사에서 6세 이상 18세 미만 난민아동 중 태국, 예맨, 이집트, 시리아 등에서 중도 입국한 난민아동(81.3%)이 대한민국 출생 아동(19.1%)보다 자아존중감(3.38>3.08), 한국어 수준(3.60>3.00), 삶의 만족도(3.69>3.32)가 더 낮았다. 이번 조사에 응답한 라이베리아 출신의

“각국 인권 상황 문제 있다” 국제앰네스티, 인권현황 보고서 통해 집중 비판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이하 앰네스티)가 ‘2017-2018 인권 연례 보고서’를 통해 미얀마의 로힝야 사태부터 미국을 비롯 강대국들의 난민 접근법까지 각국별 인권 문제에 대한 대처를 강하게 비판했다.  앰네스티는 지난 22일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59개 국가의 2017년 인권 상황을 정리한 ‘2017/18 연례 인권보고서’(이하 보고서)를 전 세계에 발표했다. 보고서를 통해 앰네스티는 2017년을 “악마화 정치의 쓰라린 결과를 경험한 한 해”라고 정리했다. 그 중에서도 최악의 결과는 미얀마가 로힝야 사람들을 상대로 벌인 끔찍한 인종학살 군사작전이었다. 유럽에 1년 동안 유입되는 난민의 수만큼 로힝야 난민의 숫자가 불어나는 데에는 불과 3주 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약 62만 명의 사람들이 인접국 방글라데시로 피난했고 세계에서 가장 급속도로 확대된 난민 문제가 되었다. 로힝야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미얀마에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 악마 취급을 받아왔다. 특히 앰네스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민 정책이 “증오로 가득한 수사학의 한 해”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앰네스티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인구 다수가 무슬림인 몇몇 국가의 국적자를 모두 입국 금지시킨 조치는 명백한 혐오의 정치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독일·네덜란드·오스트리아 등에서 잇달아 열린 선거에서도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 반(反)이민, 반(反)무슬림 전략이 악용되었다. 일부 후보자들이 사회경제적 불안감을 이주민·난민·소수종교 등에 대한 공포와 비난으로 돌려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했다. 정치 지도자들이 정체성을 근거로 특정 집단을 악마화하는 경향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던 것이다. 앰네스티는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도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앰네스티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무죄를 선고하는 하급심

“홀로서기를 꿈꿉니다” 인도적 체류, 예멘 난민가정 인터뷰

“안녕하세요!” 취재차 방문했다는 전화가 채 끊기기도 전에 태권도복을 입은 소년이 환한 인사를 건네왔다. 소년이 안내한 곳은 하얀색 벽지만큼이나 단출한 살림살이의 반지하 집. 큰 눈망울로 선물을 뜯어본 아이는 이내 태권도 갈 시간이라며 집을 나섰다. 아이의 이름은 오마르(10∙가명), 2년전 예멘을 떠나온 파티마(37∙가명)씨의 둘째 아들이다. 식탁에 마주 앉자마자 엄마의 아들 자랑이 이어졌다. “오마르가 한국어 받아쓰기 시험을 힘들어하더니, 얼마 전 100점을 맞았어요. 대견하죠.(웃음)”   ◇전쟁을 피해 한국으로… “난민 인정은 하늘의 별따기”   파티마네 가족은 예멘을 떠난 수십만의 가족 중 하나다. 2015년 수니파 정부군과 시아파 알 후티 반군 대립으로 시작된 예멘 내전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리전으로 확정됐다. 계속되는 전쟁에 기아와 콜레라 등의 전염병까지 겹치며, 국민 2700만명 중 320만 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여전히 1900만 명 이상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한다. 유엔에서 예멘 내전 사태를 두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라고 했을 정도. 예멘의 항구도시 아덴 출신인 두 부부 역시 이 사태를 피해 한국까지 오게 됐다.  “수도 사나에 이어 아덴까지 반군에 점령당하면서, 남편도 반군에 참여하라는 압박을 받았어요. 그럴 순 없다고 거절한 뒤에 박해를 피해 요르단으로 이주했는데, 그곳에서도 비자를 요구했어요. 1년 후 한국행을 택하게 됐죠.” 생명의 위협을 피해 나고 자란 땅을 떠나 한국까지 왔지만, 이곳에 정착하는 것 역시 ‘하늘의 별따기’ 였다. 예멘 출신 난민들은 반군으로부터 박해를 받았다는 실질적인 증거가 없어 난민인정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 필요한 요건을 갖춘다고 해도

현장 활동가들이 들려주는 난민 이야기…제2회 Moving stories 현장

지난 11월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올레스퀘어 드림홀. 무대에 선 유엔국제이주기구(IOM) 한국대표부의 박미형 소장이 난민 관련 퀴즈를 내자, 180여 명의 청중이 저마다 답을 유추했다. 박 소장이 “정답은 국제이주기구 페이스북에서 공개하겠다”고 하자, 곳곳에서 아쉬움 섞인 탄식이 나왔다. 스마트폰으로 ‘난민’을 검색하며 답을 찾아보는 이들도 있었다.  이날 행사는 ‘잊혀진 발걸음을 따라 Moving Stories – 삶의 희망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하 무빙스토리즈). 유엔국제이주기구(IOM) 한국대표부가 전 세계 난민캠프 활동가들을 초청해 현장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지난 6월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제2회 무빙스토리즈는 장기화된 남수단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들과 방글라데시의 로힝야족, 고국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난민은 특정한 상태에 있을 뿐,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진행을 맡은 박미형 소장이 난민에 대해 소개했다. 난민은 재난 또는 장기화된 분쟁 등으로 오랫동안 집을 떠나 사는 이들을 말한다. 전 세계 32곳 난민캠프에 거주하는 난민의 경우, 평균 10년 이상씩 캠프에 머물기도 한다. 박 소장은 “난민들이 우리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며 “연민이나 동정보다는 공감을 하고, 아울러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 자리를 통해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3개월만에 100만명…방글라데시·남수단·아프가니스탄 난민 현주소   “콕스바자르는 언덕이 많고 과거에 산림이 있었던 지역입니다. 강이 있긴 하지만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은 적기 때문에 캠프를 어떻게 운영해야할지 딜레마입니다. 그런 곳에 3개월 만에 100만명이 난민으로 들어왔습니다.” 첫번째 연사로는 IOM 방글라데시 사무소의 페피 시딕 프로젝트 매니저가 무대에 섰다. 그는 방글라데시

난민들을 언어교사로 고용하는 사회적기업 ‘채터박스’를 아십니까

[더나은미래x영국문화원]글로벌 사회적기업 트렌드 읽기     수십년 경력을 가진 검증된 엔지니어 파투니(Patuni)는 1994년 아프가니스탄 카불(Kabul)을 떠났다. 그녀는 카불 대학교에서 토목 공학을 공부하는 100명의 수강생들 중 5명 뿐인 여학생 중 하나로, 아프가니스탄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아프간의 희망세대이기도 했다. 아프간 전쟁이 발발한 90년대, 그녀가 살던 카불은 탈레반으로부터 점점 더 많은 위협을 받고 있었다. 1994년, 탈레반 세력이 카불의 한 결혼식장에서 일으킨 폭탄테러로 70명의 사상자가 나오자, 파투니는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프간을 떠난 그녀는 대륙 바깥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마침내 정착한 곳이 영국 런던이었다. 이후 10년간 그녀는 계속해서 청소부 같은 저숙련 직업을 전전했다. 파투니의 딸인 무르샬은 그런 경험이 난민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것이라 말한다. “아무리 다른 소수 그룹에 비해 평균 이상의 교육 및 훈련 수준을 갖춰도 난민들의 고용률은 현저하게 낮아요. 대부분의 일이 사람들을 잘 마주치지 않는데다 매우 불완전한 고용상태인 경우가 많죠. 더 숙련되고 보상이 높은 다른 직업으로 옮겨갈 기회도 많지 않아요. 보수는 무척이나 낮고요.” 무르샬은 현실을 이렇게 설명한다. “잘못된 직업소개소에 들어가 외국 이름이 적힌 이력서를 내민다고 생각해보세요. 게다가 업무 공백도 긴 이력서를 보여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겁니다.” 무르샬은 어머니인 파투니의 경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2016년 사회적기업 ‘채터박스(Chatterbox)’를 설립했다. 난민들이 가진 가능성을 더 나은 방법으로 활용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그녀는 난민들을 개인과 단체를 대상으로 한 언어 교사로 고용해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으로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1:1 수업을 제공하도록 했다.  “난민들은 서너

[시니어, 공익을 만나다]①“구호 활동가로 제2의 인생 맞이했어요”

‘시니어, 공익을 만나다’ 시리즈 첫 번째 편, 공익 활동가로 변신한 시니어들 유통 전문가에서 구호 활동가로 제2의 인생 맞은 김승수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인터뷰     다국적 물류 회사에서 은퇴한 뒤, 국제의료봉사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가로 아프리카 파푸아뉴기니, 남수단, 우간다 등 해외 이곳저곳을 누비는 김승수(61)씨.  지난 4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서울 사무소에서 만난 그는 햇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로 기자를 맞이했다. “지난달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됐는데, 곧 에티오피아 사무소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올해 예순을 맞이한 그였지만, 열정만큼은 20대 청년 못지않았다.   ◇은퇴 후 신세계와 조우… 청년시절 꿈 되찾아줘   “다국적 유통회사인 TNT에서 영업, 마케팅 전문가로 20여년간 일했습니다. 규모도 크고 글로벌 기업이라 연봉도 높고 복지도 좋았는데, 나이가 드니 은근한 퇴직 압박은 물론 쳇바퀴처럼 도는 내 인생이 지루해서 2011년 퇴사했죠.”  정년 퇴직을 몇 년이나 남기고 내린 결정이었다. 가족과 지인들은 은퇴를 만류했지만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고, 문득 모험을 즐겼던 그의 청년시절이 떠올랐단다.  “동창들은 저 보고 성공했다고 해요. 좋은 직장에 화목한 가정… 그런데 스스로 만족이 안됐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경험하는 일을 즐겨 했어요. 대학에 입학하고 취업을 하면서 꿈을 한 켠으로 밀어두고 현실과 타협해야 했죠. 이제는 자식도 어느 정도 다 컸고, 큰 돈 들어갈 일이 많지 않으니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싶었어요. 바로 ‘새로운 세상을 향한 모험’이요.” 퇴직 후

지금 우리가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 제5회 디아스포라영화제 프로그래머 이혁상 감독

제5회 디아스포라 영화제 기획하는 이혁상 프로그래머 인터뷰 이민자, 난민을 넘어 사회적 소수자 껴안는 ‘디아스포라 영화제’ “‘제 존재 자체가 디아스포라(Diaspora∙이주민) 아니겠느냐’면서 ‘당신의 시각으로 영화제를 꾸려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받았어요. 우리 사회에서 ‘유랑하는 존재’들을 안아주는 영화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맡게 됐어요. 다음 영화 준비하려면 아르바이트도 필요했고요(웃음).” 제 5회 디아스포라 영화제 기획을 총괄한 이혁상<사진> 프로그래머의 말이다. 그를 만난 건, 지난 19일 인천영상위원회 사무실에서였다. 5회를 맞이하는 ‘디아스포라 영화제’는 올해를 기점으로 한층 풍성해졌다. 3일이었던 영화제는 5일로 늘어났고, 상영작도 3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 4년간 ‘영화제 평이 좋았던’ 까닭에 올해부터 인천시 지원 예산이 훌쩍 뛰었기 때문이다. 올해, 영화제 전반을 기획하는 프로그래머로 새롭게 참여하게 된 이혁상 감독은 “‘디아스포라’ 라는 주제로 상영작 50편을 다 채울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규모도 커지고, 새롭게 시작하는 만큼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디아스포라’라고 하면 망명했거나 이주한 난민, 재외 동포만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실은 머물던 공간에서 밀려난 이들, 차별이나 혐오로 인해 주변부에서 떠도는 이들 모두가 우리 시대의 ‘디아스포라’인 셈이거든요. ‘디아스포라’가 생소해 보여도 실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살던 곳을 떠나 온 난민∙탈북민, 재개발이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뿌리내렸던 ‘공간’에서 떠나야 했던 이들. 그 외에도, 혐오와 차별 시선으로 사회 ‘비주류’로 떠밀리는 이들 모두가 우리 시대의 디아스포라였다. “‘디아스포라’가 우리와 아주 먼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난민 문제만 해도, 아직은 다른 나라 일 같이 들리겠지만 우리 이야기가 될 날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제3국에서 한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