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투명성은 기부의 견인차

메일함을 열어보면 하루에도 수많은 보도자료가 와있습니다. 읽어보고 지우는 보도자료들 가운데, 최근 한 자료가 눈에 띄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미래’가 올해 15년이 되었는데, 2005년 4억원이던 기부금이 지난해 109억원에 달했다는 내용입니다. 2600%나 늘었습니다. 삼성증권, 신한카드, KB국민은행, 삼성카드, 메르세데스-벤츠 등 파트너 기업이50개나 된다고 합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기업 기부금을 이렇게 확대해온 비결은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박두준 상임이사는 “투명성을 바탕으로 쌓아온 신뢰”라고 했습니다. 아이들과미래는 실제 비영리기관 최초로 2001년부터 내부감사 외에 외부감사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투명성은 과연 기부금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는가. 아이들과미래 사례를 보면 분명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아직 비영리단체에선 투명성에 관해 갑론을박이 한창입니다. 올해 6월 말이면 자산 5억원 이상, 수입 3억원 이상 공익법인은 모두 결산서류를 공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공익법인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젠 개인 기부금이 가장 많은곳, 사업비를 가장 많이 쓰는 곳 등 기부자들이 원하는 정보들이 쏟아져나오게 됩니다. 물론 첫 해이기 때문에 공시항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여러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껄끄러워하는 분위기도 상당히 높습니다. 국세청으로부터 공시정보를 받아서 이를 공개하는 역할을 맡은 곳은 한국가이드스타입니다. 미국 가이드스타를 본떠 이를 국내에 도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박두준 사무총장이 그 뒷얘기를 들려줬습니다. “초창기에 근무하던 비영리단체에서 윗분들이 금전적으로 사고를 치는 바람에 단체가 와해됐고, 직원들도 모두 일터를 잃었다. 이후 투명성에 인생을 걸었다. 한국가이드스타가 만들어진 2008년 당시 투명성은 아무도 관심조차 없었다. 송자 이사장은 ‘우리나라 기업이 이만큼 성장한 건 공시 덕분이다. 공시를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정보와 기회의 과잉… 본질에 집중해야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문자를 쓰는 순간, 아이들의 상상력은 확 죽습니다. 미국에선 이 때문에 쓰기 교육을 초등학교 입학 전후로 최대한 늦게 시킵니다. 구석기시대 알타미라 동굴벽화에도 등장하듯, 문자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온 강력한 의사소통 도구는 그림입니다. 요즘 ‘카드뉴스’가 유행하는 걸 보니, 스마트폰 때문에 다시 문자 이전 시대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카드뉴스’란 주요 이슈들을 이미지와 간단한 텍스트로 재구성해 보여주는 것인데, 길고 지루한 뉴스를 읽기 힘들어하는 영상 세대를 위한 맞춤형 뉴스입니다. 기자들이 써온 기사를 고치고 줄이는 게 편집장인 저의 주요 역할인데, 보통 기자들은 자신이 쓰겠다는 원고 수량보다 더 많이 씁니다. 취재한 내용이 아까워서, 빼기에는 너무 중요한 부분이 많아서 기사량이 점점 많아집니다. 하지만 제3자의 눈으로 기사를 읽다 보면, 빼더라도 의미 전달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문장이 상당합니다. “사진 한 장으로, 아니면 제목 한 줄로 기사 내용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자 시절 늘 들어왔고, 기자들에게도 강조하지만 좀처럼 지켜지지 않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에센셜리즘’의 저자 그렉 매커운씨는 “모든 것을 다 하려는 생각, 모든 사람의 요청을 수용하려는 생각을 멈추어야 정말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을 하나 선정한 다음, 그것을 기준으로 0점부터 100점까지 점수를 매기고 만약 90점 미만인 대상이 있다면 0점이라고 판단하고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가장 우선시되는 것’에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는데, 우리는 보통 이 에너지를 분산합니다. 좀 더 많은 분이 ‘더나은미래’ 지면을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사회적금융’ 개념도 없는 한국사회

“최근 수지 휴대폰 케이스가 유행인데, 이게 사회적기업 제품이잖아요. 한번 노출된 걸로 엄청난 이슈가 되는 걸 보면서, 기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한 사회적기업 중간 지원기관 사무국장이 한 말입니다. 미쓰에이 멤버 수지가 들고 있던 휴대폰 케이스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위안부 역사관 건립을 위해 수익금을 사용하는 사회적기업 ‘마리몬드’ 제품입니다. 고(故) 심달연 할머니가 직접 디자인한 것인데, 하루 만에 품절됐고 다른 디자인도 주문이 폭주했다고 합니다. 이 사무국장이 안타깝다고 한 부분은 “수지 사례로 기뻐하기엔 사회적기업 현장의 분위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한국사회투자를 그만둔 페이스북 친구가 쓴 장문의 글을 읽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사회적금융, 사회투자기금 참 어렵더군요.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소셜벤처 등 소셜 비즈니스를 육성시키겠다는 정책은 많은데 정작 비즈니스에 필요한 자금 조달 인프라가 너무 빈약했습니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민간기금을 왜 조성 못 하느냐’였습니다. 서울시에서 500억원을 기금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500억원을 민간에서 매칭해야 할 것 아니냐는 겁니다. 문제는 행정자치부에서 ‘기부금 유치를 위한 모금활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한쪽에선 손발을 묶어놓고, 한쪽에선 왜 빨리 안 움직이냐고 한 셈이지요. 이뿐만 아니라 마치 예산을 운용하듯 ‘집행률’로 금융 사업을 평가한다는 것이 두 번째 스트레스였다고 합니다. 1년 동안 사업비 예산을 쓰고 없애는 개념이 아니라, 계속 순환해야 하는데 ‘사회적금융’에 대한 기본 개념이 없다 보니 서울시나 서울시의회도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회적금융 담당자는 “10년 정도 저소득층의 자립을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가장 조심해야 하는 건 약자에 대한 교만

“세상 모든 사람이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갖고 있는 대표적인 성격 장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지난 일요일, 목사님 설교 말씀에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만’입니다. 무릎을 쳤습니다. 남을 비판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신앙이 자라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것은 곧 자신을 의롭게 여기기 때문이지요. 언론사 기자 생활을 오래 하면 자신도 모르게 남을 평하고 잣대를 매기는 습관이 몸에 배기 마련입니다. 일간지 기자는 매일, 주간지 기자는 일주일마다, ‘더나은미래’는 2주에 한 번씩 교만의 벽을 쌓아가는 셈입니다. 일상생활에도 은근슬쩍 그게 드러납니다. 지난주 지하철역에서 파는 6000원짜리 휴대폰 케이스 때문에 아르바이트 점원과 엄청 다퉜습니다. 그 청년은 제 휴대폰을 보면서 “아줌마. 이거 사가면 딱 맞아요”라고 건네줬고, 저는 확인도 하지 않고 사왔습니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제 휴대폰보다 더 작은 케이스였고, 며칠 후 저는 “교환해달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영수증도 없는데, 이 가게에서 사 갔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 하루에 손님이 100명도 넘는데 당신 같은 사람 많다. 뭘 믿고 바꿔주느냐”고 했습니다. 화가 나서 “내가 거짓말할 사람으로 보이느냐. 왜 사람을 못 믿느냐”고 다그쳤습니다. 결국 감정 싸움이 심해져 경찰서 문턱까지 갔다 왔습니다. 누구의 잘잘못인지를 따지기에 앞서, 그날 밤 이성이 되돌아오니 제 안의 교만을 들킨 것 같아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 청년의 눈에 저는 그저 지나가는 평범한 아줌마일 뿐이고, 제가 바라본 저는 남다른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편집장님이었으니까요. ‘내가 너보다는 낫지’라는 이 은근한 마음속의 알력은 곳곳에 있습니다. 겉으로는 서로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새로운 변화’는 현장에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딸아이는 요즘 미니어처를 만드는 데 푹 빠져있습니다. 손가락 한 마디만 한 크기로 떡볶이, 오므라이스, 스파게티 등 온갖 음식을 만듭니다. 친구들한테 쇼핑몰 정보를 알아와서 각종 재료를 산 후, 유튜브를 통해 만드는 방법을 하나씩 배웁니다. 수학 문제를 풀라고 하면 30분만 지나도 피곤해하는데, 미니어처를 만들 땐 2시간이 넘도록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유튜브가 딸아이한테는 교과서요, 선생님입니다. 자신도 떡볶이 만드는 방법을 공유하기 위해 유튜브에 올리겠다며, 한 시간 넘게 제 휴대폰을 갖고 낑낑댔습니다. 그 모습이 저한테는 새로운 문화 충격입니다. ‘배움’이 더 이상 학교에만 있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지만, 아이의 행동을 통해 실제로 목격하니 더 생생합니다. 기존의 방식, 즉 위에서 아래로 정보나 지식이 하달되는 틀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최근의 사회 흐름을 지켜봐도 그렇습니다. 땅콩 회항, 디자이너 이상봉씨 열정 페이, 연말정산 세금 폭탄 등 모든 이슈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그 이슈가 유통되는 과정에는 페이스북의 공유, 그리고 유튜브 동영상 등 SNS가 반드시 존재합니다. 5년 전쯤 한 NGO 사무총장이 “아~ 이제 NGO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이야.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으던 NGO의 역할을 이제 SNS가 다 하게 될 텐데”라고 한 말이 떠오릅니다. 새로운 것과 낡은 것, 그 사이에는 반드시 격차(갭)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그 격차가 작아야 불행하지 않습니다. 모든 시민이 새로운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데, ‘부시맨 정부’ ‘부시맨 학교’ ‘부시맨 기업’만 홀로 존재하는 모습을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사회공헌 초고속 성장의 덫

“이제 기업 사회공헌은 다 죽은 거 아니에요? 몇 년 동안 반짝 붐을 이루더니, 요새 경기가 안 좋아서 다시 죽었네요. 솔직히 사회공헌팀은 조직에서 한직(閑職)이잖아요.” 한 기업 재단 담당자의 솔직한 얘기입니다. 경기 불황과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 이후 기업들의 이슈는 리스크 관리가 된 모양입니다. 기업마다 국회나 시민단체 등을 담당하며 기업의 리스크에 해당하는 사안을 모니터링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대외협력팀을 운영하는데, 여기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입니다. 최근 한 대학생으로부터 황당한 얘기도 들었습니다. 대학생을 학습 멘토로 운영하는 한 기업 사례인데, “이 프로그램을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 대학생에게 그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가 “우리 기업에 나쁜 사건이 터졌을 때, 이걸로 막으려고 하는 거야”라고 답했다는 겁니다. 이뿐 아닙니다. 겉으로는 자사의 사회공헌 사례를 적극 홍보하는 한 기업 CEO가 “솔직히 이런 사업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내부 회의에서 대놓고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파트너십에 관해서라면, 비영리 단체들로부터 ‘기업의 갑질 사례에 관한 익명의 제보’를 수집하면 아마 책 한 권을 써도 될 만큼 나올 것 같습니다. 다만 기업의 후원이 끊어질까 봐 절대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기업의 사회공헌이 양적으로 확대되는 것이 반가웠는데, 요즘은 ‘모래성 쌓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연산도 못 푸는 초등학생이 미분·적분을 푸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싶은 것이지요. ‘더나은미래’는 과연 기업 사회공헌의 질적 성숙에 기여했을까, 기업 사회공헌의 초고속 성장 속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없을까, 반성도 하게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혁신의 시작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서

2012년 구글의 슈퍼컴퓨터 중 하나가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유튜브 영상에 있는 섬네일 1000만개를 훑어본 후 75%의 정확도로 고양이를 구분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처럼 보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인간의 경우 네 살짜리 꼬마들조차 완벽하게 해내는 일이지요. “우리는 컴퓨터 혼자서 해낸, 별것 아닌 일들에는 감동하면서도 인간이 컴퓨터의 똑똑하지 못한 부분을 채워주며 이뤄낸 커다란 업적들은 무시한다”는 말을 한 이는 바로 피터틸입니다. 전자결제시스템 회사 페이팔 CEO이자,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파워 그룹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이지요. 페이스북 친구 중 몇몇이 하도 칭찬을 많이 해서, 연말에 읽어본 책 ‘제로투원(Zero to One)’의 저자입니다. 그는 ‘빅데이터’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쏟아냅니다. “빅데이터는 보통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데이터다. 오직 인간만이 쓸모 있는 통찰 결과를 찾아낼 수 있다.” 재밌는 내용은 또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경쟁을 건강하다고 믿는 걸까.’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기초로 ‘게이츠(MS)와 슈미트(구글)’ 연극을 이야기합니다. 신생기업일 때 각자 번영하던 이들 가문은 점차 성장하면서 서로 경쟁에 집착했고, 그 결과 홀연히 애플이 나타나 두 가문을 모두 제쳤습니다. 그는 “경쟁하지 말고 (창조적) 독점을 하라”고 주장합니다. 경쟁에서 이겨봤자 1에서 n이 될 뿐이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0에서 1이 된다는 것입니다. 숙박공유기업 에어비엔비처럼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아무도 발견 못한 비밀을 발견해야 위대한 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공익 분야가 시장이 얕다 보니 경쟁자가 없는 게 내심 불안했고, 컴퓨터도 기사를 쓰는 시대에 ‘인사이트(insight)가 있는 매체를 만들자’며 구닥다리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찾습니다

‘수송보국(輸送報國·수송업을 통해 나라에 보답한다).’ 대한항공 창업주인 고(故) 조중훈 회장이 가졌던 신념입니다. 칼럼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 있는데, 문득 딸에게 읽어보라고 선물한 ‘대한민국을 바꾼 경제거인 시리즈'(FKI미디어)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금은 재벌이 된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 창업주들 이야기를 엮은 청소년 도서입니다. 9권(조중훈처럼)을 열어보니, 1945년 11월 인천시 해안동에서 트럭 한 대를 가진 청년이 ‘한진상사’라는 간판을 내걸고 장사를 시작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8남매의 둘째로 태어난 후 가세가 기울어, 열일곱 나이에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선박 기술을 배운 식민지 청년이 바로 조중훈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당장 필요한 물품을 들여오는 무역업에만 신경 쓸 때, 그는 물자를 원하는 곳까지 가져다줄 ‘수송’에 눈을 돌렸습니다. 책의 감수를 맡은 유재천 전 서강대 사회과학대학장은 “(당시 경영이 어려워 아무도 인수를 원치 않던) 대한항공공사, 대한선주, 인하공대 등을 인수한 조중훈 회장님은 기업의 이윤에 앞서 나라의 부름에 응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를 보여준 기업인”이라며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한 뼈아픈 경험에 대한 회한으로 직원들의 자녀가 학비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배려했고, 사재를 쏟아부어 인하대와 항공대를 있게 했다”고 적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사내 대학까지 만들어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직원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었다고 합니다. 조중훈 회장이 살아 있었다면,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을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나눔이나 배려, 사회에 대한 기여 등과 같은 ‘가치 있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아무나 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직접 어려움을 겪어보았기에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영수증 없이 연 5000만원 지원하는 ‘아쇼카’ 이야기

제가 매달 한 번씩 참여하는 ‘사회적경제언론인포럼’이라는 공부모임이 있습니다. 시작은 작년 초쯤 사회적기업을 취재해온 ‘이로운넷’ 선배와 통화하면서 “출입처도 없는 외로운 기자들끼리 한번 모여보자”며 뭉친 게 계기였습니다. 매달 한 분씩 모셔서 사회적기업·협동조합 분야 이야기도 듣고, 토론도 합니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한겨레경제연구소가 함께하는 따뜻한 모습에 참석자 몇몇은 놀라기도 합니다. 이번 달에 만난 인물은 아쇼카의 이혜영 대표였습니다. 아쇼카는 사회 혁신 기업가(소셜 앙터프리너)를 지원하는 비영리 조직인데, 30여년 동안 88개국에서 아쇼카펠로 3000여명을 선정해 지원해왔습니다. 올해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아동 인권 운동가 카일라시 사티아르티(Kailash Satyarthi)씨는 무려 21년 전에 아쇼카펠로로 선정됐다고 합니다. 아쇼카펠로로 선정되면, 아쇼카는 생계비(1년 평균 5000만원)를 3년 동안 지원하는데, 3개월에 한 번씩 생활비만 입금할 뿐 영수증을 전혀 요구하지 않습니다.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혜영 대표는 “3000명 중 96%가 자기 조직을 성장시켰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한국 같으면 영수증 붙이느라 정신없거나, 누구 ‘백그라운드’로 이 사람 지원했느냐는 식의 공격이 들어올 것”이라고 씁쓸히 웃었습니다. 신뢰 자산이 참 무섭습니다. 아쇼카를 본뜬 재단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에코잉그린(Echoing Green) 재단은 창립한 지 3년 이내의 스타트업 사회적기업가를 지원하고, 스콜(Skoll) 재단은 사회적기업가들을 발굴할 뿐 아니라 네트워크 확산에 주력합니다. 인터내셔널 브릿지스 투 저스티스(International Bridges to Justice)라는 비영리단체는 커가는 단계별로 에코잉그린-아쇼카-스콜의 지원을 모두 받았습니다. 이혜영 대표는 “한국에선 마치 사회적기업가가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거나, 비즈니스 모델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게 안타깝다”며 “사회적기업가들은 영리와 비영리에 상관없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라는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나눔의 시너지 내려면 ‘룰’부터 정해야죠

“싸움과 권투의 차이가 뭔지 아세요? 룰(Rule)이 있느냐 없느냐죠. 저는 상담할 때 딱 두 가지 룰만 줍니다. 상대방의 얘기를 끊지 않을 것, 상대방이 한 말을 재확인할 것.” “부모가 자녀를 존중하면, 자녀는 집중력과 자신감을 갖게 되고, 리더십을 발휘하죠. 반면, 부모가 자녀를 간섭하면, 자녀는 한계를 정해 수동적이 됩니다.” 지난 19일 더나은미래가 이지웰가족복지재단과 함께 세 번째 부모교육포럼을 열었는데, 미국에서 10년 동안 가족 상담을 해온 남동우 한국가족상담센터 상담소장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룰과 존중. ‘왜 우리나라는 협력과 공유가 잘 안 될까’라는 제 오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단초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한 좋은 모델을 분석해보면, 한 단체나 개인이 해낸 게 아니라 파트너십을 통한 결과물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돈을 주는 기업이나 정부, 현장에서 일을 하는 비영리단체·사회적기업과의 파트너십이 삐걱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습고 창피한 일이지만, 최근 몇 년간 협동조합 붐이 일면서 지자체·정부기관·민간단체 할 것 없이 너도나도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하러 간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이탈리아의 한 기관에서는 ‘한국 해외연수단 더 이상 안 받겠다’고 공언했다고 합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느라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며 “너희 나라는 왜 정보 공유를 안 하느냐”고 물었다는 후문입니다. 지난해 더나은미래가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민관협력사업 3년을 분석하는 좌담회를 열었을 때도, 한결같은 목소리는 “기업·정부·비영리단체 간 파트너십을 잘하는 게 가장 어렵다”였습니다. 해결의 열쇠는 바로 ‘룰(Rule)을 정하는 것’입니다. 파트너끼리 우선 목표와 성과에 대한 합의를 한 후, 서로의 역할을 어디까지로 할지 명확히 룰을 정해야 합니다. 기부금액이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한국도 비영리에 대한 신뢰자산 쌓아야

지난 5일 ‘국제 나눔문화 선진화 콘퍼런스’에 참석했다가, 예정에 없이 티모시 제이 매클리몬 아멕스재단 이사장, 도요타재단 디렉터 등과 함께 점심을 먹게 됐습니다. 이야기 주제가 기업과 비영리의 파트너십으로 흘러갔습니다. 도요타재단은 1974년에 만들어졌으니, 생긴 지 올해가 꼭 40년이 됩니다. 재단은 시민사회 및 NPO(비영리단체)를 지원하는 다양한 연구 및 공모·배분 사업을 하는데, 200억원이 넘는 돈을 씁니다. 아멕스재단은 NPO의 역량 강화를 위한 리더십 프로그램에 지금까지 약 326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한국의 젊은 층은 NPO분야로 진출하려는 관심이 높은가” “한국에선 대학이나 대학원에 NPO 리더십 과정을 들을 수 있는 곳이 있는가” “한국의 기업과 NPO의 파트너십 관계는 어떤가” …. 어느 질문 하나에도 속 시원하고 자랑스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갈 길은 멀지만 그렇기에 더나은미래 같은 매체의 존재 이유가 있다”며 농담 섞인 진담으로 얼버무렸습니다. 다만 두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요타재단은 만들어지고 나서 10년 동안 무조건 직접 사업을 벌였지만, 이후부터는 NPO를 간접 지원하는 형태로 방향을 틀었다고 합니다. 아멕스재단 또한 NPO의 역량이 높아지고 NPO에 좋은 인재가 많이 뿌리 내려야만 실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깨닫고 리더십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몇 달 전 한 대기업 CSR 담당 임원이 “함께 사업을 하는 비영리단체의 역량이 부족해서, 우리 직원들의 글로벌 사회공헌 사업 투입량이 너무 많아 고민”이라며 “비영리단체는 왜 이렇게 자주 사람이 바뀌는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비영리단체의 사정이 왜 열악한지 사정을 설명하자, 그 임원은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귀 열고 들어보세요… 변화의 ‘신세계’ 열릴 겁니다

최근 며칠 동안 카카오톡을 만든 김범수 의장 이야기를 쓴 책을 이북으로 읽었는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6개월 이론’입니다. 프로그래밍을 할 줄 모른 채 삼성SDS에 입사했던 그는 입사 이후 막막했다고 합니다. 그때 던진 질문이 “6개월 후에 남들보다 뛰어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게 뭘까”였습니다. “윈도가 뜰 것이다”라는 데 힌트를 얻어, 당시 유행하는 코볼·포트 대신 6개월 동안 C++와 윈도만 했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윈도 기반의 프로젝트 수주를 하게 됐고, 그걸 잘하는 사람이 없어 갑자기 그가 전문가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는 “6개월 정도만 고민해서 답을 낼 수만 있으면, 남들보다 한 발자국은 아니더라도 반 발자국 앞서갈 수 있다”는 걸 터득했습니다. 인터넷 시대가 됐을 때 ‘6개월 이론’을 적용해 한게임을 창업하고,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시대가 열렸을 때 카카오톡을 만든 것도 같은 원칙에서입니다. 더나은미래에 있다 보면, 새로운 해외 소식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해외에서는 비영리,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CSR(기업의 사회적책임) 등의 역할과 중요성이 큰 데 반해, 국내는 이 분야에 대한 인지도가 낮다 보니 늘 해외 콘퍼런스 연사는 ‘더나은미래’에 인터뷰 요청을 해옵니다. 이번에도 ISO 26000의 최고 전문가 마틴 노이라이트 교수, 미국 사회적기업협회 의장 케빈 린치, 독일 위기청소년 교육전문가 리햐드 권더 도르트문트대 명예교수 등 수많은 전문가의 인터뷰를 지면에 실었습니다. 정보가 쌓이니, 마치 ‘6개월 이론’처럼 자연스레 세상 돌아가는 흐름이 읽힙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런 ‘신세계’를 저희와 애독자들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민간이나 젊은 층일수록 이 분야에 대한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