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희망아] 흙탕물 마시고·썩은 쌀 먹고 “굶어 죽지 않는 게 소원이에요”

필리핀 11살 소년 존 폴 공사장으로 대형 트럭 한 대가 들어왔다. 뿌연 모래 바람이 일었다. 황량한 채석장 구석엔 나무 조각과 고철로 지은 집 한 채가 위태롭게 서 있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고작 한 평 남짓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11세 소년 존 폴(John Paul·사진)과 그의 가족이 사는 집이다. 필리핀의 수도 ‘메트로 마닐라’에 불어 닥친 태풍으로 모든 것을 잃고, 쫓기듯 이곳에 온 지 벌써 2년이다. 도심 빈민으로 골치를 앓던 정부는 살림살이를 모두 잃은 사람들을 이곳 산이시드로 로드리게스 리잘(San Isidro, Rodriguez, Rizal)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존의 가족은 인근 채석장 한편에 집을 지었다. 극심한 가슴 통증으로 누워 있는 의붓아버지(60)와 뇌 낭종 제거 수술 이후 심각한 두통을 앓고있는 어머니를 대신해 존이 가장 노릇을 한다. 아침 일찍부터 존은 부산했다. 땔감을 구하고 장작을 팼다. 채석장 한가운데 있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와 밥을 했다. 폐타이어로 만들어진 우물 안을 들여다보니 누런 흙탕물이다. “이 물을 어떻게 먹느냐”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 가족에게는 그나마 유일한 ‘생명수’다. “굶어 죽지 않는 게 유일한 소원”이라는 엄마는 “이 물이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눈물을 훔쳤다. 해가 땅 위로 내려앉을 무렵 존이 집 한편에서 쌀을 들고 나왔다. 사정을 딱하게 여긴 마을 주민이 가져다준 쌀이라고 했다. 형편이 비슷한 이웃이 가져온 쌀에는 벌레가 득실거렸다. “그 가족도 어려운데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흙탕물로 쌀을 씻어가며 가족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던 존이 말했다. 이렇게

[날아라 희망아] “심장병으로 고통받는 내 동생 훌륭한 기술자 돼서 고쳐줄 거예요”

방글라데시 11살 소년 코림 방글라데시 다카의 한 철공소, 매캐한 냄새와 쇳소리가 끊이지 않는 그곳에서 하루 12시간 일하고 있는 소년 코림을 만났다. 5년 전,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후 코림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일해오고 있다. “내 이름은 코림이고, 열한 살입니다. 배를 만들기 위한 부품을 다듬고 붙이는 일을 합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하는 코림에게, 철공소에서 얼마나 일했냐는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는 1년쯤 됐어요. 가끔씩 다치기도 합니다.” 옆에 있던 어른 동료가 “1년 동안 지켜봐 왔는데 아주 열심히 한다”며 “아주 성실한 아이”라고 말을 거든다. 일곱 살이 됐을 때, 코림도 다른 아이들처럼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 적이 있다. 잠시였다.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는 일을 할 수 없었고, 두 누나가 온종일 바느질 일을 했지만 그것으로는 가족이 먹고살 수 없었다. 결국 남자인 코림이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해야만 했다. 코림의 누나는 “코림이 정말 학교에 가고 싶어했다”며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어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현재 코림의 꿈은 ‘기술자’다. 가족의 생계를 든든하게 책임지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코림의 노동은 아침 8시에 시작된다. 철공소로 출근하기 전, 집에서 코림은 늘 열 살 남동생을 꼭 챙기며 인사말을 잊지 않는다. “로힘, 네가 힘들지 않도록 형이 널 위해서 열심히 일할게. 사랑해.” 한 살 아래 동생 로힘은 3년 전 심장판막의 문제가 발견됐다. 지금은 숨이 차오르며 찌르는 듯한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증상을 보이는 게, 거의 매일이다. 코림은 “내가 고생을 하더라도 동생이

[날아라 희망아] “내 눈이 나아 엄마 눈물 멈추면 좋겠어요”

실명 위기 처한 8살 소녀 카디자 아프리카 대륙 중앙부에 위치한 나라 차드(Chad)의 다사마을은 수도 은자메나에서 동남쪽으로 17㎞가량 비포장도로 위를 한참 달려 들어가야 하는 열악한 지역이다. 여덟 살 카디자가 홀어머니 그리고 세 명의 어린 동생과 함께 이곳에 살고 있다. 벌판 한쪽 편에 있는 작고 허름한 카디자네 흙집으로 들어서자 가정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살림살이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바닥에는 아이들이 헝겊 조각조차 깔지 않은 채 개미떼와 엉켜 그대로 누워 있었다. 카디자의 어머니 니이타(26)는 갓 태어난 동생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그 곁에 카디자가 고개를 비스듬히 옆으로 돌린 채 멍하니 어딘가를 주시하고 앉아 있었다. 카디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가려진 쪽의 눈을 자세히 살펴보니 알사탕만한 혹이 붙어 있다. 카디자가 한 살쯤 됐을 때, 눈에 이물질이 들어갔고 가려워서 눈을 자꾸 비비다 보니 티눈 같은 상처가 생겼다고 한다. 가까운 곳에 병원이 없는 데다 치료비도 없어 적당한 치료를 받지 못했고, 상처는 점점 자라 눈 속에서 혹으로 자리 잡았다. 비위생적인 환경에 상처가 방치 된 지도 벌써 7년째다. 상처 때문에 앞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튀어나온 안구에서는 고름이 계속 흐르고 있었고, 카디자는 계속해서 통증과 가려움증을 호소했다. “저렇게 심해질 줄은 전혀 몰랐다”며, 카디자의 어머니는 “카디자를 위해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병으로 남편을 잃고 어린 나이에 세 명의 아이들을 돌보게 된 그녀는 “카디자의 고통이 모두 내 탓”이라고 말하며

[날아라 희망아] 아홉식구 집안일 도맡는 백만이… 또래처럼 뛰놀고 배울 수 있게 도움의 손길을

집안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바닥에는 흙먼지가 가득하고, 벽지는 누렇게 찌들어 군데군데 흉한 얼룩이 생겼다. 좁은 방을 가로질러 널린 옷가지들과 화장실 한가득 쌓인 빨래가 번잡함을 더했다. 전라도 두메산골, 인적 드문 허허벌판에 자리 잡은 낡고 허름한 이 집이 백만(가명·남·13세)이네 아홉 식구의 보금자리다. 이 집도 사정을 딱하게 여긴 이웃이 이사를 가면서 무상으로 빌려줘 겨우 얻었다. 올해 6학년인 백만이의 오후 일과는 여느 초등학생과 다르다. 또래 친구들이 뛰어놀 때, 백만이는 동생들을 위한 저녁 준비를 위해 팔을 걷어붙인다. 남은 찬밥에 김치를 넣고, 프라이팬에 슥슥 비벼 볶음밥을 만드는 손놀림이 제법 익숙하다. 반찬 하나 없는 밥상에 ‘백만이 표’ 볶음밥을 내놓자 동생들이 우르르 모여앉아 순식간에 해치운다. 백만이는 동생들이 다 먹고 난 뒤, 막내가 남긴 몇 숟가락으로 허기를 채운다. “하루는 백만이가 냉장고를 열어보더니 먹을 게 하나도 없냐고 묻는데, 아무 말도 못했어요. 반찬이 없어 김치 하나만 놓고 밥 먹일 때도 많아요.”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우울증을 겪었다는 엄마는 아이들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내 눈물을 보였다. 백만이네 가족은 뱃속 아이까지 포함해 총 9명이다. 임신 7개월 차에 접어든 어머니까지 농사일에 힘을 보태지만 벌이가 시원찮다. 아버지도 오래 전부터 앓고 있는 늑막염 결핵과 갑상선암 수술 후유증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잠잘 시간도 부족한 고등학생 형들을 대신해, 또 병약한 부모님을 대신해 셋째 백만이가 5살 막내와 7살, 10살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