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청춘들에게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가

청년 노동문제 활동가 3인 좌담회 구교현 “알바도 또 하나의 직장” 정준영 “블랙기업 지표 개발할 것” 배트맨D “해외처럼 제도적 안전장치 필요”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청년들에게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부당근로를 강요하고 있다. 오늘날의 젊음이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구교현(38) 아르바이트노동조합(이하 알바노조) 위원장, 배트맨D(미상) 패션노조 대표, 정준영(28)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이상 ‘가나다순’)이 ‘더나은미래’를 찾아 ‘젊은 노동자’를 위한 좌담회를 진행했다. 배트맨D 대표는 얼굴과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다. 패션노조 ‘비밀조직원’들도 마찬가지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생계 때문에 함부로 나설 수 없는 젊은이들을 대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회=지난해 말, 여기 모인 세 단체가 패션업계 노동착취 실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화제가 됐다. 이전에도 청년유니온은 ’30분 배달제 폐지’ 등 현장 문제를 적극 해결했고, 알바노조는 ‘최저임금 1만원 운동’으로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세 단체의 정체가 궁금하다. 구교현(이하 구)=한 정당에서 무급 상근직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위해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생, 주부, 투잡(Two-Job) 회사원, 정년퇴직자까지 많은 알바노동자를 만났고 이들의 처우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노조활동에 뛰어들게 됐다. 알바노조는 2013년 8월 설립됐고 조합원 수는 360명 정도 된다. 상근자는 모두 7명이다. 주 업무는 노동 상담으로 공인노무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내방·전화·온라인 상담 등을 진행하고, 노동법 관련 교육도 한다. 정준영(이하 정)=대학시절 청년 주거문제를 다루는 ‘민달팽이 유니온’에서 활동하다가 같은 세대 담론을 나누는 청년유니온에 가입하게 됐다. 청년유니온은 국내 첫 세대별 노조로 2010년 3월 창립됐고 조합원은 대략

“사회공헌 준비생, 다양한 경험·기획력이 중요”

대학생들이 가고싶은 기업의 사회공헌 담당 4명… 그들의 현장 이야기 루게릭 환자에게 안구 마우스 “아들아 사랑을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7년만에 전한 메시지 베트남서 일주일에 141명 수술 수시로 정전돼 문 열어놓고 작업 열악한 환경서도 몰두하던 모습 선해 대학생들 사이에서 기업 사회공헌팀의 인기는 높아지는 데 반해, 담당자의 이야기는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에 ‘더나은미래’는 지난해 대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가고 싶은 기업(‘매출 상위 100대 기업 고용 브랜드 조사’, 잡코리아 좋은일연구소)으로 꼽힌 기업 4곳의 사회공헌 담당자 4명의 입사 과정부터 현장 비하인드까지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봤다. 강성희(28) 삼성전자 사회봉사단사무국 대리, 강세영(30) SK텔레콤 CSV실 CSV운영팀 매니저, 김명호(31) CJ CSV경영실 대리, 양지원(32) 포스코 환경에너지실 사회공헌그룹 매니저(이상 ‘가나다순’) 등이 좌담회에 참석했다. 편집자 주 사회= 기업사회공헌 담당자로 가는 길은 ‘좁은 문’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과정을 통해 사회공헌 파트에 합류하게 됐나. 강성희(이하 강)= 2010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글로벌기술센터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이듬해 임직원 선발 해외봉사단을 통해 잠비아에 갔었다. IT센터 등 봉사단 활동을 통해 변해가는 마을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2013년 사회봉사단사무국에 지원했다. 강세영(이하 세)= 대학에서 CSR 리포트를 쓰던 중 SK 사회공헌 사업을 접했다. 당시 기업 사회공헌이라고 하면 시혜적 성격이 강한 사업을 생각했었는데, 결식 이웃 지원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행복 도시락’이나 대학생 봉사단 ‘써니’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무척 흥미로웠다. 이후 2010년 SK에 입사, 지금까지 6년째 CSV운영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양지원(이하 양)= 제가 써니 1기

국내 시리아 난민 477명, 지금 어디 있나

허점투성이 난민 지원 실태 인도적 체류자, 기본적 생활 보장 없어 보여주기식 행정… 난민법 보완 필요 시리아 내전을 피해 아델(34·가명)씨와 조카 압둘(32)씨가 한국에 온 것은 2014년 3월. 이들은 난민인정 신청 3개월 뒤 인도적 체류를 허가받았다. 그러나 의료·소송 등을 목적으로 입국한 외국인에게 주는 기타(G-1)비자로는 그의 신분조차 제대로 보장할 수 없었다. 그해 말, 살 곳을 찾아 다시 난민선에 오른 압둘씨는 이탈리아로 가던 중 선박 좌초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5월, 법무부는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난민들에게 최소 인도적 체류를 허가한다’는 방침을 정한 후 477명의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였다. 난민을 이렇게 무더기로 받아들인 적 없는 우리나라에서 극히 이례적인 조치였다. 지난해 4월까지 허가된 전체 인도적 체류자 수(208명)의 2배를 넘는 수치였다. 인도적 체류자는 사유(인종·종교·국적·특정사회집단 구성원·정치적 견해로 인한 박해) 불충분으로 ‘난민인정자’가 될 순 없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국내 체류를 허가받은 난민을 뜻한다. ◇난민신청자보다 못한 인도적 체류자 하지만 우리 정부가 시리아 난민에 대한 인도적 체류 허가만 했을 뿐, 사후 관리는 나 몰라라 하는 바람에 현재 477명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자료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난민구호단체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는 “지난해 인도적 체류자 급증에 따른 국내 거주 시리아 난민 실태조사를 정부 측에 건의했지만, 별다른 대응은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뒤다. 인도적 체류자는 최대 1년 단위로 체류 기간을 갱신해야 한다. 여행증명서 발급 등 인정 난민이 받을 수 있는 별도 권리조차 인정되지

관심만 가진다면… 교통카드·이면지·커피 한 잔으로도 기부가 된다

기부와 함께한 24시 기자의 현장 르포 습관(習慣). 거듭 반복해 버릇이 된 이 행동을 두고 도스토옙스키는 “인생을 바꾸는 힘”이라 말했다. 을미년 첫날, 수많은 새해 결심이 오가는 가운데 기자 역시 ‘일상 속 기부’라는 새로운 습관을 익히기 시작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단지 평소처럼 출근하고, 밥을 먹는 동안 약간 관심을 기울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 습관은 머지않아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작은 힘이 될 예정이다. ◇7:50am~ 일회용 교통카드의 재발견: 550원 새해를 맞아 한산한 금요일 아침, 지하철역에서 일회용 교통카드를 샀다. 회사로 가는 지하철 운임은 1450원, 여기에 카드 보증금 500원을 더하면 1950원이 된다. 뚝섬역에 도착하자 흰색 교통카드 모금함이 기자를 맞았다. “1000원이면 연탄 2장, 5000원이면 우유 10팩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모금함에 쓰인 안내 문구다. 다 쓴 교통카드와 함께 주머니에 있던 잔돈을 집어넣었다. 모금된 카드의 보증금 500원은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기부된다. 운임이 남은 카드와 현금도 기부할 수 있다. 그때 청년 한 명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이거 카드도 되는 거예요?”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청년은 들고 있던 교통카드를 어색하게 모금함에 넣었다. 2010년 첫선을 보인 교통카드 모금함은 수도권 지하철 206개 역사에 비치돼 있다. 기부도 꾸준히 늘어 2012년 3083만원에서 2014년 5349만원으로 1.7배 이상 성장했다. 기부금은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저소득층의 생계·의료비와 서울시내 사회복지시설 지원에 쓰인다. ◇12:30pm~ 기부 복권과 함께 매너 있는 점심식사: 3000원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 점심식사를 위해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의 레스토랑 ‘포포나무’로 이동했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청각장애 아동 무료 재활훈련… 미술·음악·영어 수업까지

이곳을 칭찬합니다 KT―세브란스 꿈품교실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은 소외계층이 됩니다. 정부와 기업, 민간이 촘촘한 ‘복지그물망’을 갖추고 있으면, 어려움의 터널을 빠져나올 ‘마중물’을 부어줄 수 있습니다. ‘더나은미래’는 올해 ‘칭찬합니다’ 코너를 통해 이런 복지그물망의 혜택을 입은 독자 제보를 받아 직접 취재하는 코너를 마련합니다. 칭찬하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메일(csmedia@chosun.com)로 보내주세요. 첫 번째 사례는 “둘째아이의 청각장애로 재활치료를 받는 데 도움을 받아서 감사하다”는 한 독자의 제보를 듣고 찾아간 ‘KT-세브란스 꿈품교실’입니다. 편집자 주 친구들 앞에 선 다섯 살 예은(가명)양이 서툰 발음으로 입을 열었다. 완벽한 문장은 아니었지만, 고열매 언어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그럴듯한 이야기가 완성됐다. 발표가 끝나자 아이들의 고사리 손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반년 전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예은양과 친구들에게 이곳 ‘꿈품교실’은 ‘소리’라는 세상과 만나기 위한 첫 연습장이다. 세브란스 안·이비인후과병원 2층에 위치한 꿈품교실은 2012년 9월 KT와 연세의료원이 함께 청각장애 아동 및 난청 아동의 재활치료를 위해 만든 공간이다. 국내 청각재활센터 중 유일하게 병원 내부에 설치돼 의사, 코디네이터, 사회복지사, 청각사, 언어치료사의 통합 관리를 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최재영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청각장애 아동에게 수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재활”이라면서 “꿈품교실을 거친 아동의 언어발달 경과가 그렇지 않은 아동보다 더 좋았다”고 말했다. 인공와우 수술 후 언어치료는 소리 인식부터 일상적인 대화 기술 습득까지 최소 2년 이상 계속된다. 청각재활센터가 발음 교정에 치중한 일반 언어치료시설과 달리 장애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이유다. “외부 기관에서 청각장애 아동과 일반

[숨은 영웅을 찾아서] ③ 내 인생을 바꾼 건 아이들… 그들이 또다른 삶 돌보길

숨은 영웅을 찾아서(3) 최연수 한빛청소년대안센터장 “중·고등학생 여덟 명이 본드와 가스를 마신 채 뒹굴고 있더군요. 개수대에는 먹다 남은 라면 냄비가 가득 쌓여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이혼 후 집을 나갔고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장기간 지방 출장이 잦다보니 동네 형들이 그 애의 집을 아지트로 삼은 것이었죠.” 최연수(52) 한빛청소년대안센터 센터장이 처음 이 길에 들어선 건 20여년 전 맞닥뜨린 충격적인 현장 때문이다. 중간·기말고사만 되면 극성 엄마들이 돈봉투를 들고 와서 “문제 좀 찍어달라”고 하던 학원 강사 일에 회의를 느낄 무렵이었다. 최 센터장은 YMCA 송파청소년독서실에서 영어·수학을 가르치는 야간 교육봉사를 시작했다. 아이들의 얼굴을 다 익혀갈 즈음, 한 학생이 3일 나오다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학생을 찾아나선 거여동 판자촌, 그곳은 ‘별세계’였다. 이후 그는 매주 청소년 아지트 예닐곱 군데를 찾아가 아이들에게 빵과 우유를 먹였다. 아이들은 그를 ‘빵아저씨’라고 불렀다. 생업이던 학원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등교를 거부하는 ‘동네 짱’들을 모아 축구팀도 만들었다. 그러기를 2년, 1995년 아예 5평짜리 방 한 칸을 빌려 ‘한빛길거리상담소’라고 이름붙였다. “처음에는 통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에 3번 과외를 하면서 운영비를 충당했는데, 과외를 갔다 오면 난리가 나 있었어요.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책 사이에 꽁초를 끼워 버리고, 음식물 쓰레기는 한가득 쌓였죠. 주민들 항의가 거세져 문단속을 하자 유리창까지 깨고 들어오더군요. 기름보일러 안에 석유가 떨어져서 안 넣으니까 테이블 위에 이불을 깔고 자기도 했어요. 그렇게 몇 년을 먹이고 재우니까 처음 돌보던 그룹이 성인이 된 이후에는 본드며

[숨은 영웅을 찾아서] ② “아이들, 탈북민 잇는 다리 되길”

[더나은미래·더퍼스트 공동기획] [숨은 영웅을 찾아서] (2) 셋넷학교 박상영 교장 10년전 탈북청소년 10명과 함께 시작… 자격증 취득·문화교육·현장학습 수업 대학 진학보다 친구 찾기 중심 시간표·행사 등 전 과정 지역과 소통… 늘 “떳떳하게 출신 밝혀라” 강조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스쳐간 사람을 3년 뒤 다시 만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탈북 청소년 박상영(52) 셋넷학교 교장 이야기다. 1999년 중국 용정으로 봉사활동을 떠났던 박 교장은 난생처음 북한 아이들을 만났다. 가진 돈을 다 털어주고 “잘 살아야 한다”며 작별인사를 건넸는데, 3년 만에 자신이 다니는 교회 앞마당에서 그들과 재회했다. 고생 끝에 남한에 온 만큼 잘 지낼 줄 알았던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좀체 행복을 읽을 수 없었다. 그는 10여 명의 탈북 청소년을 데리고 주말마다 온 동네를 쏘다녔다.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예술도 배우게 했다. 그렇게 시작된 대안교육이 장소를 갖추고 커리큘럼을 만들면서 ‘셋넷학교’가 됐다. 올해로 딱 10년이다. ◇탈북 청소년 생존 위한 ‘선택 교육’ 여의도의 유명 증권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박 교장은 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곳을 떠났다. ‘한 번뿐인 인생을 돈보다 가치 있는 일에 쓰자’는 결심 때문이었다. 6개월간 가족을 설득한 끝에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문화교육운동을 시작했고, 1995년에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 배움터 ‘따또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2004년, 중국 용정에서 만난 탈북 청소년들과의 인연으로 셋넷학교를 시작했다. “우리는 선택의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결혼이나 학업, 직장에 대한 고민을 하죠. 그러나 북한에서는 당이 모든 걸 결정합니다. 탈북 청소년들은 언어가 통하니

[숨은 영웅을 찾아서] ① 복지가의 마음과 경영인의 머리로… “30년 외길, 장애인 복지 기반 닦았죠”

[더나은미래·더퍼스트 공동기획] [숨은 영웅을 찾아서] (1) 이동한 사회복지법인 춘강 이사장 장애인 110명 일하는 복지관 설립… 새벽 6시부터 작업장서 일 가르치고 체크리스트 만들어 작업 과정 점검 장애인센터 최초 4대보험 도입… 지적·지체장애인 근로시간도 단축 “퇴역 군인(Veterans) 일어나주십시오.” 미국에선 중요한 행사에 앞서 이들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걸 당연시한다. 우리나라 행사장에선 정치인, 경제인 등의 순으로 박수 행렬이 이어진다. 오피니언 리더로 불리는 이들이 진짜 영웅일까.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하지만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하는 일, 그 일을 오랫동안 해온 진짜 영웅을 만날 수는 없을까. 더나은미래는 공익 전문 온라인매체 ‘더퍼스트’와 함께 ‘영웅의 재발견’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아버지의 모습으로 기억하겠습니다.’ 이동한(63) 사회복지법인 ‘춘강(春江)’ 이사장이 지난 1월 12일 제주도 사회복지협의회장직에서 물러날 때 받은 기념 액자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장애인의 아버지’라는 수식이 고유명사처럼 따라다닌다. 하루 이용자(중복 집계)만 1000명이 넘는 제주장애인종합복지기관과 서귀포시장애인종합복지관, 제주 최초의 재활의학 병원인 춘강의원이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춘강은 오는 28일, 법인 인가 27주년을 맞는다. 제주도지체장애인복지회에서 장갑 기계 두 대로 직업 재활 사업을 시작하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이 이사장이 장애인 복지에 몸담은 지는 햇수로 30년째다. ◇밥 퍼주던 부둣가집 막내아들, 복지사업가 되다 이 이사장은 두 살 때 앓은 소아마비로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열네 살 때부터 3년간 병원에 누워 16차례 수술을 거쳤다. 하지만 그는 일찌감치 사업가의 길을 선택, 성공 궤도에 올랐다. 20대에 한국상호신용금고를 운영했고, 제주공항의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