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화)

[Cover Story] 기부’로 웃기는 사람들

[Cover Story] 국내 최초 기부 팟캐스트 ‘기부스’ 1년 가게·음반 등 홍보해주고 현금·물품·재능 기부받아 출연진 6명 입담에 웃음 ‘빵빵’ 기부 방송은 무겁다는 편견 지워 작가·출연진 100% 재능기부 320여명 참여, 약 14억 모아

“본 방송은 방송 심의 규정을 전혀 준수하지 않습니다. 기부 첫 경험, 기부 강요 방송, 기부 선도 방송, 기부 팟캐스트. 우리는 찬우션이에요!” 컬투 정찬우의 멘트가 끝나자마자, 6평 남짓한 스튜디오 안이 이내 시끌벅적해진다. “한 주간 어떻게 지냈느냐”는 안부 인사에 가수 션이 먼저 입을 연다. “얼마 전에 루게릭병 요양병원 건립을 위해 승일희망재단과 희망콘서트를 열었는데, 힙합하는 친구들이 100% 재능기부로 무대를 꾸몄어요. 2000명이 스탠딩 공연장을 가득 메워 분위기가 뜨거웠습니다.” “힙합과 기부? 다소 안 어울리는 조합인데 괜찮았나요?” 다른 출연진의 질문에 션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내가 하면 다 기부가 된다”는 뼈 있는 농담을 던진다. 짤막한 안부가 오가고, 본격적인 입담 경쟁이 시작된다. 방송 대본은 굵은 글자로 듬성듬성 채워진 A4 네 장뿐. 1시간 동안 진행되는 방송 분량은 오롯이 출연진 6명의 재치와 유머로 채워진다. 지난 24일 밤 9시 서울 마포구 웰빙센터. 국내 최초 기부 팟캐스트(다운로드 방송) ‘기부스(즐겁게 기부하는 사람들)’의 녹음 현장이다.

즐겁고 유쾌한 기부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6명의 ‘기부 용사’가 뭉쳤다. 국내 최초 기부 팟캐스트 ‘기부스’ 녹음 현장에서 만난 가수 션, 박지훈 변호사, 이용수씨, 이재국 작가, 컬투 정찬우, 천경희씨(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임영근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즐겁고 유쾌한 기부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6명의 ‘기부 용사’가 뭉쳤다. 국내 최초 기부 팟캐스트 ‘기부스’ 녹음 현장에서 만난 가수 션, 박지훈 변호사, 이용수씨, 이재국 작가, 컬투 정찬우, 천경희씨(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임영근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기부스’는 출연자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홍보하고, 홍보비 대신 현금·현물·재능 등을 기부하는 방송이다. 가게 홍보, 음반 홍보, 제품 홍보, 재능 홍보, 구인구직, 애인 구함, 프러포즈, 기념일, 다이어트, 시험 합격 등 무엇이든 홍보할 수 있다. 다만 그에 상응하는 기부가 이뤄져야 한다. 현금일 경우 최소 10만원 이상, 어떤 물품이든 재능 기부든 상관없다. 지난해 10월 첫 방송 이후, 1년간 약 320명이 참여했고 이들이 낸 기부금 총액만 약 14억원에 달한다. ◇쉴 틈 없이 웃기는 ‘기부 용사’ 6인의 입담 경쟁 “역시 이번 방송도 최고의 입담들로 더위를 꾸욱 눌러주시네요. 만담인지, 취담인지, 꼬리인지, 머리인지…. 하고 싶은 대로 이리저리 쳐내는 정신없는 진행! 기부스 사랑합니다.” 청취자 사연을 읽어내려가던 출연진들 눈빛 교환이 시작된다. 누가 더 재미난 멘트를 날릴까 눈치 싸움을 한다. 6명의 독특하고 재미난 캐릭터가 한자리에 모인 덕분이다. 기부 팟캐스트를 기획하고 방송 전반을 개그로 이끄는 정찬우, 힙합 전사이자 ‘기부 아이콘’으로 통하는 가수 션이 메인 MC. 여기에 재판보다 방송 스케줄이 더 많은 종편의 단골 패널 박지훈 법무법인 디딤돌 변호사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깨알 정보를 덧입힌다. 마포에서 고갈비 식당을 운영하는 19년차 사업가 ‘고갈비 누나(천경희씨)’는 기부스에서 ‘욕’을 담당한다.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향해 청취자 대신 시원스레 ‘쌍욕’을 날린다. SBS 라디오 ‘김창렬의 올드스쿨’, MBC ‘컬투의 베란다쇼’ 등을 집필해온 이재국 작가는 매끄러운 진행으로 단 1초의 침묵도 허락하지 않는다. 격투기 코치 출신으로 여성 화장품·세제 등을 개발한 9년차 사업가 이용수씨는 기부스에 ‘웃음 기부’를 위해 합류했다. 스튜디오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호탕한 그의 웃음 소리 덕분에 기부스엔 별도의 효과음이 필요치 않다. 이들 모두 기부스를 기획한 정찬우가 3년 전부터 공들여 섭외한 출연진이다. “기부 방송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3년 전부터 들었는데, 작년에 갑자기 찬우가 전화를 걸더니 ‘누나, 매니저 보낼 테니 차 타고 이쪽으로 와’라며 뚝 끊더라고. 뭐가 뭔지도 모르고 스튜디오에 앉았어. 그냥 욕만 해주면 된다는데 처음엔 마냥 어리둥절했지. 난 기부도 모르고 방송도 모르는데 말이야(웃음).” 고갈비 누나가 칼칼한 목소리로 기부스에 합류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이들 모두 출연료 없이 100% 재능기부로 방송한다. 대본을 쓰고 패널을 섭외하는 작가도 그렇고, ‘모아이사운드’는 스튜디오를 무료로 제공한다. 아무리 바빠도 기부스 녹음 일정만큼은 반드시 사수한다. 이러한 열정 덕분일까. 기부스는 방송 초반 ‘팟빵(팟캐스트 포털서비스)’ 인기순위 100위권에 진입했다. ◇마음껏 홍보하고 마음껏 기부하라 미상_그래픽_기부_기부스_2015 기부스에선 매주 ‘오늘의 기부천사’가 소개된다. 이날도 스튜디어 뒤편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던 두 사람이 마이크 앞에 앉았다. 젬베와 멜로디언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당차게 자신을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그룹 사운드박스입니다.” 정규앨범 홍보를 한창하던 이들은 젬베를 두드리며 타이틀곡을 불렀다. “기부스의 팬으로서 나눔에 동참하고 싶었다”던 그룹 사운드박스는 현금 10만원과 사운드박스 티켓 10장(장당 3만원), 사운드박스 앨범 30장을 기부했다. 이어서 ㈜주선 씨푸드의 김정갑 대표가 회사 홍보에 나섰다. 가락시장 내 도매상인을 대상으로 물품을 납품한다는 김 대표는 현금 10만원과 함께 노르웨이 자반 고등어 100마리, 베트남산 새우 500마리를 선뜻 나눴다. 평범한 이들의 범상치 않은 기부는 지난 1년간 기부스에서 계속돼왔다. 회사 설립 연도에 맞춰 2011만4220원과 4억원 상당의 학교 건축 비용을 기부한 IT제품 개발 및 교육컨설팅 회사 ‘아이카이스트(i-KAIST)’의 김성진 대표처럼 고액을 기부하는 사업가도 있었고, 20대 취업준비생을 응원하며 사회복지 공무원을 꿈꾸는 자신을 홍보하고 현금 10만원을 나누는 청년도 있었다. 기부스에선 특히 물품 기부가 많다. 계란 1만개, 애완동물 유기농 시리얼 80통, 스마트폰 케이스 216개, 100가구 페인트, 명품 의류 50벌 등 종류도 다양하다. 스튜디오에 살아있는 문어를 들고 와 그 자리에서 직접 요리해준 사장님도 있었고, 칼 1만 자루를 컨테이너 박스에 담아 기부해준 이도 있었다. 이렇게 기부된 물품들은 마포구 사회복지협의회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사회복지시설·푸드뱅크·장애인복지관 등에 전달되거나, 바자회를 통해 판매 수익금이 기부되기도 한다. 방송에 출연한 모든 이들은 기부스 공식 ‘기부천사’로 임명돼, 네이버밴드에서 소통한다. 김진희 마포구 사회복지협의회 과장은 “독거노인 분들의 이사 날 기부천사 밴드에 글을 올렸는데, 인천의 격투기 노바 MMA팀 선수 15명이 하루 종일 맨몸으로 힘 기부를 해주셨다”고 설명했다. 기부받은 물품의 성격에 따라 필요한 곳에 직접 연락을 돌리고, 매달 기부자들을 직접 찾아가 감사 인사와 피드백을 전하는 것도 그의 일. ◇한 번의 기부가 지속적인 나눔의 선순환으로 기부스에 한 번 참여했다가 나눔에 중독된 이들도 많다. 정찬우는 “조치원에서 하우스 재배를 하는 분은 격주로 토마토, 오이, 호박을 직접 따서 보내주신다”면서 “사실 야채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신선한 상태로 배달되다보니 한 부모 가정이나 독거노인 분들이 너무 좋아하신다”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다. 움직이는 추러스 트럭 ‘헐츄1호’는 매달 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가 추러스 기부를 하고 있고, 내추럴 오가닉 아기물티슈 회사 ‘아보브네이처’ 대표는 논산 공장에서 두 달에 한 번씩 지속적으로 물티슈 5톤 물량을 나누고 있다. 기부스의 홈페이지, 출연진 캐리커처 역시 기부천사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졌다. 덕분에 팟캐스트 방송과 기부스 홈페이지·블로그·페이스북·트위터·카페가 연동되면서 기부 문의 메일도 빗발치고 있다. 기부자들의 꾸준한 나눔에 기부스 출연진 역시 일일호프·기부콘서트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하는 등 적극 동참하고 있다. 이재국 작가는 “특히 고갈비 누나는 홍대에서 사업하는 지인들을 기부자로 끊임없이 섭외해 올 정도로 열심”이라면서 “나도 분발해야겠다”며 웃었다. 방송이 끝날 무렵, 기부스 출연진이 한목소리를 냈다. “여러분들이 기부스를 들어주시는 게 바로 나눔입니다. 귀로 ‘듣는 기부’를 해주셔야 주변의 많은 분들이 방송을 알게 되고, 팟캐스트 순위도 올라가고, 광고하려는 기업도 많아지니까요. 홍보하려는 곳이 많아질수록 기부금도 늘고, 나눔 문화도 확산됩니다. 나눔이 지속될 수 있도록 기부스 방송을 꼭 들어주세요!” ※기부스 팟캐스트를 듣고 싶다면? 아이폰 사용자는 ‘아이튠즈’에서, 안드로이드폰 사용자는 ‘팟빵’ 어플에서 ‘기부스’를 검색하면 됩니다. ※’기부스’ 참여하려면? 홈페이지(http://www.gi boos.com ) 또는 이메일(giboos@naver.com)로 신청하면 개별 연락 드립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