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재난 피해를 더 크게 겪고, 회복도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재난은 자연적으로 일어나지만, 재난 이전과 이후의 상황은 순전히 사회적인 현상”이라고 최근 공개한 ‘국민의 건강수준 제고를 위한 건강형평성 모니터링 및 사업 개발-위험사회에서의 건강불평등’ 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연구원은 지난해 5월 만 19~74세 1837명을 대상으로 재난에 대한 사회계층별 인식과 경험의 차이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을 실시했다. 재난은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분류했다. 자연재난에는 태풍·지진·산불·집중호우 등이, 사회재난에는 화재·교통사고·감염병·다중밀집사고 등이 해당한다. 응답자 중에서는 620명, 939명이 각각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을 경험했다.
재난으로 삶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답한 응답자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많았다. 자연재난으로 큰 타격을 입은 사람은 중졸 이하(71.3%)가 대졸 이상(47.2%)보다, 주관적 계층 인식이 하층(58%)인 사람이 중상층 및 상층(32.3%)인 사람보다 많았다. 사회재난에서도 비슷했다. 중졸 이하(66.2%)가 대졸 이상(55.9%)보다, 주관적 계층인식이 하층(65.7%)인 경우가 중상층 및 상층(52.5%)인 경우보다 많았다.
계층이 낮을수록 재난에서의 회복도 더뎠다. 자연재난 경험자의 10.7%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답했는데, 이 같은 답변 비율은 중졸 이하(21.8%), 하위 계층(21.4%), 비정규직(13.9%)이 대졸이상(8.4%), 중상위 및 상위 계층(10.3%), 정규직(7.9%)보다 높았다. 사회재난 경험자 중에서 회복되지 않았다고 답한 응답자는 24.1%로, 중졸 이하(38.2%), 하위 계층(38.8%), 비정규직(28.4%)에서 특히 높았다.
응답자의 상당수는 재난 상황에서 자원배분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했다. ‘재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자원 배분 과정에 학연, 지연, 혈연 등 연고가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 응답자는 재난 경험자는 77.8%, 미경험자는 72.8%에 달했다. ‘재난 발생 시 모든 국민에게 금전적인 지원과 도움이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 비율은 재난 경험자는 73.2%, 재난 미경험자는 66.2%에 달했다.
재난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적인 네트워크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도움이 필요한 네 가지 상황을 ▲감염병에 확진돼 집안일을 부탁해야 할 경우 ▲재난으로 실직해 돈을 빌려야 할 경우 ▲믿을만한 감염병 관련 정보가 필요한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경우로 가정하고, 이때 조언을 듣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질문했다. 네 가지 경우 중 한 가지 경우에도 연락할 사람이 없거나, 단 한 가지 경우에만 연락할 사람이 있다는 비율은 하층에서 40.6%에 달해 중하층(24.8%), 중간층(14%), 중상층 및 상층(13.1%) 보다 크게 높았다.
연구진은 “재난은 기존의 사회구조적인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며 “같은 재난을 경험하더라도 위험을 회피하거나 대응할 수 있는 자원이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불평등하게 배분돼 있기 때문에 그 여파도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 이번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고 밝혔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