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4일(화)
‘보통의 삶’ 찾아 시설 밖으로 나온 장애인들

[2022 탈시설 보고서]
<상> 나의 고군분투 자립기

첫 크리스마스 파티였다. 이용수(38)씨는 전동휠체어 위에 앉아 빙그레 웃기만 했다. 친구들과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났다. 그는 뇌병변과 지적장애를 가진 중복장애인이다. 뇌병변은 뇌의 기질적 손상으로 보행 등 기본적인 동작에 제약을 받는 중추 신경장애다. 지난달 15일 서울 영등포구 자립생활주택에 용수씨를 비롯해 6명의 친구가 한자리에 모였다. 장애인 시설을 나와 자립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사들이다. 마음껏 수다 떨고, 음식을 나누는 것. 이처럼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 이들은 시설 밖 세상으로 나왔다.

뇌병변과 지적장애를 가진 중복장애인 이용수씨가 헤드포인터에 붓을 연결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뇌병변과 지적장애를 가진 중복장애인 이용수씨가 헤드포인터에 붓을 연결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제공

포기할 수 없었던 ‘자립의 꿈’

용수씨의 손목은 90도 가까이 꺾여 있다. 손가락도 이리저리 휘어 있다. 단어 하나를 내뱉는 데도 얼굴 근육을 총동원해야 했지만, 그는 할 말이 많았다.

그는 1988년부터 2019년까지 30년 넘게 장애인 시설에서 살았다. 서른이 될 때까지 탈시설이 무엇인지 몰랐다고 했다. 시설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연이 닿으면서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2014년부터 교육프로그램, 자립생활주택 체험 등을 거치면서 홀로 설 준비에만 5년을 쏟았다.

용수씨는 새 보금자리를 지난해 5월 서울 구로구에 마련했다. 자립 이후 뭐가 좋으냐는 질문에 그는 “동네 미용실이 머리를 잘 잘라서 좋다”고 말했다.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다 늦게 자도 되는 것이 좋다”고도 했다.

왼손 약지에 낀 반지를 가리키자 “커플링”이라고 했다. 그는 “여자친구가 강동구 암사동에 살아서 자주 보진 못하고 전화로 아쉬움을 달랜다”며 “그래도 며칠 전에 데이트했다”며 웃었다.

피플퍼스트서울센터에서 탈시설활동가이자 상담가로 일하는 박혜영(28)씨는 두 번째 자립 생활에 도전 중이다. 경증발달장애인인 혜영씨는 여러 시설을 전전하다 스물셋에 처음으로 시설을 나왔다.

처음에는 모든 게 순탄했다. 탈시설 할 날만을 기다리며 학생 시절부터 차곡차곡 모은 4000만원으로 작은 자취방도 마련했다. 집 근처 김포공항 내 카페에서 바리스타 일도 구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커피 만드는 게 좋아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은 우울증으로 번졌다. 그는 4년간의 자립생활을 정리하고 정신병원에 1년간 입원했다.

퇴원 후에는 시설로 돌아가지 않았다. 혜영씨는 서울 영등포구에서 두 번째 자립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퇴근 후 활동지원사와 함께 요리하고, 산책하고, 쇼핑도 한다. 지난달 11일 만난 혜영씨는 “시설에 있는 친구들과 한동네에서 같이 살고 싶다”면서 “가고 싶은 곳에도 마음껏 가고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려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애인 시설을 떠나 지난해 7월 서울 영등포구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박혜영씨가 가장 좋아하는 책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를 소리 내 읽고있다.
장애인 시설을 떠나 지난해 7월 서울 영등포구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박혜영씨가 가장 좋아하는 책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를 소리 내 읽고있다. /임화승 C영상미디어 기자

두려운 세상에서 따뜻한 세상으로

가족의 우려와 반대를 이겨내고 자립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뇌병변장애와 언어장애를 가진 중복장애인 김희선(46)씨는 지난해 3월 자립 이후 공부를 시작했다. 시설에서 23년을 살았지만 공부가 재미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했다.

희선씨는 “초등검정고시 6과목 중 4과목은 통과했는데 가장 어려운 국어와 수학은 야학에서 더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짬을 내 경기도 중증장애인 맞춤형 일자리로 권익옹호활동도 하고 있다.

희선씨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허리를 아예 쓰지 못해 누워서 생활해야 한다. 이 때문에 활동지원사 3명이 교대로 희선씨를 24시간 동안 지원한다. 희선씨는 탈시설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이제 제가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어요. 극장도 다니고 레스토랑도 다녀요. 코로나 전에는 센터의 도움으로 홍콩으로 여행도 다녀왔어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아들을 장애인 시설에 보낸 임현주(58)씨에게도 탈시설은 모험이었다.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임씨는 지난달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 지원이가 시설에서 나오면 죽을 줄 알았다”고 했다. 서지원(31)씨는 중증발달장애인이다.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간신히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다. 지원씨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시설에 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낮에 돌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원이를 온종일 보고 있으면 저는 화장실 한 번 편하게 못 가고, 밥도 제대로 못 먹어요. 아무리 아들이라지만 제 인생은 무너지는 거예요.”

임씨 가족이 탈시설을 결심하게 된 건 지원씨 건강이 악화하면서다. 시설에서는 식탐이 강하다는 이유로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고, 소변관리가 힘들다는 이유로 정수기를 숨겨놓고 물도 최소한으로 줬다. 키 160㎝의 지원씨의 한때 몸무게는 35㎏이었다. 임씨는 “탈시설한 지 2주 만에 늘 숙이고 다니던 고개를 들었고 굽었던 허리도 폈다”며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면서 보고 들을 수 있는 게 많아지니까 그걸 보기 위해 아이가 기를 쓰고 허리를 펴더라”고 했다.

지원씨는 지난 2020년부터 자립지원주택에서 살고 있다. 낮에는 활동지원사들과 생활하고, 저녁에는 입주 장애인을 돌보는 코디네이터들과 시간을 보낸다. 임씨는 “탈시설 초기엔 엄마만 찾았는데 이제는 활동지원사 선생님들에게 어리광도 부린다”며 웃었다.

“탈시설을 반대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이해해요. 두렵고 막막하죠. 불과 2년 전만 해도 저 역시 같은 마음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탈시설이 좋다, 나쁘다로 말하긴 어려울 거 같아요. 하지만 우리의 자녀가 행복해합니다. 무조건 반대하기보단 고민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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